페인트로 꽃을 그리다
차콜에 불을 붙인 지 얼마쯤 지나자
시커먼 석탄 위로 무엇이든 다 삼킬 것처럼 빨간 혀를 날름거리더니
이내 허옇게 죽어갔다.
죽었는가 싶어 뒤적거리자 이내 시퍼런 혀가 잡아먹을 듯 솟구쳤다.
듬성듬성 칼집을 낸 닭다리가 석쇠에 올려지고
달궈진 쇠에서 쉬익 하는 바람소리와 더불어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가라며 박사장은 뒤뜰에 바비큐를 준비하더라.
고향이 홍성이라고 하였는데 큰아버지가 대법원의 고위직을 지냈다 하더라.
딸 아들 남매를 둔 박사장의 부인은 이리 보고 조리 보아도 부잣집 맏며느리감이었다.
부티가 얼굴에 그득하고 종아리엔 기품이 매끈하다.
손도커서 무엇이든 푸짐하게 내어놓는다.
풍성한 웃음은 목화솜같이 포근하다.
박사장의 조수가 되어 페인트를 칠하러 다닌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갔다.
한 달 전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집에 들어가니 누가 손을 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 후 공권사가 껄껄 거리며 한다는 말이
"미스타 킴 나이 들면 어쩔 수없나 봐" 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며느리한테 생활비로 1000불을 주렸는데 그게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거였다.
도둑은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용의 선상에 첫 번째로 후디가 올랐다.
후디는 돈을 받으면 곧바로 멕시코에 보냈다.
그래야 친정어머니와 맡겨놓은 자식이 먹고살 테니 말이다.
며칠 전 돈 보내는 곳에 데려다주었는데,
그것이 수상하였고 그래서 청소하러 간 틈을 이용해 며느리가 후디방을 압수수색하듯 뒤졌단다.
그러고 보니 물건들이 손을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럼 그때 내방도 뒤짐을 당했겠구나 생각하니 피가 솟구치더라.
가뜩이나 생김생김이 임꺽정이라고 놀림을 받았는데, 드디어 대도의 머리띠를 두르는가 싶더라.
암팡진 큰며느리가 내 속옷이며 양말이며 일기며 노트를 봤을 걸 생각하니
후들후들 떨리더라.
아무것도 모르는 후디는 도둑년으로 몰렸을 걸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왔다.
그렇게 찾던 돈은 엉뚱하게도 공권사가 쓰는 가계부 책갈피에서 나왔단다.
그러면서 나이 들면 죽어야 한단다.
"제발 그러셔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뻔하였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세"를 손뼉 치며 힘차게 부르고 싶더라.
그런 모욕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 돈이 없다고 흔히 말하는 가오도 없을까?
나의 체면과 자존감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나?
가끔 보면 자기 기준에 미달된다 싶으면 짓밟고 누르고 낄낄거리는
인종들이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
그래서 바이하고 공권사 집을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