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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Oct 11.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29

페인트로 꽃을 그리다 2

아침 일찍 박사장 앞마당에 도착하면, 깡통 밴 옆에 

늙은 조랑말 같은 내차를 세웠다.

차고 앞엔 물방개를 닮은 빨간색 폭스바겐이, 그리고 차고 안에는

갈기를 세우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듯한 캐딜락이 서있었다.


각종 페인트 도구를 가득 실은 밴은 태어날 때는 흰색이었을 것 같은데

거친 세월에 호되게 맞았는지 이곳저곳이 푸른색으로 멍들고,

군데군데 뿌려진 노란색 페인트를  붉은색이 감싸 안고 엎드린 형국이어서

마치 붉은 동백이 핀 것처럼 보였다.


박사장은 훤칠한 키에 어색한 눈웃음, 늘 잔잔한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집사님 하고 부르면 "집사는 무슨 집사 그냥 이름 불러"

"아이 그럴 수 있나요? 그럼 사장님이라고 부를게요?" 하면

"야 인마 내가 사장이면 사장 아닌 놈이 워딨니?"라고 하며 싱글싱글 웃는다.


엘에이 코리아타운 인근 베렌도 침례교회라고 불렸던 지금은

엘에이 한인 침례교회에 다녔는데 김동명 목사와 

안이숙 사모가 그렇게 예뻐했단다.

안이숙 사모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책을 써서 유명하신 분이다.

독립유공자이기도하다.


두 분의 연애 스토리도 재미있는데 열여섯 살 연상인 사모님은

늘 건강관리에 힘쓰셨는데 그중 하나가 물구나무서기였단다.

심방을 마친 후 귀가하면 사모님이 잠옷 차림으로 머리는 풀어헤치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니 목사님 심장이 쿵쿵했다는 일화도 있더랬다.


이제는 두 분 모두 천국으로 이사를 가셨으니 거기서는

물구나무로 서 계실 일은 없으시겠지.


박 집사는 술과 담배도 즐겼는데 워낙 성품이 좋아 하나님도

술 담배 하는 것을 책망하지 않았으리라.

말수가 적고 느긋하여 작업지시는 눈빛으로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실수라도 하면 "아 그렇게 하면 워 티기 혀 "하면 끝이다.

박사장 와이프는 덕스러움이 오가는 눈빛에서도 느껴져

여간 고마운 게 아니더라.


아침을 굶고 오는 나를 위해 가끔씩 특별식을 만들어 주었는데

충청도식 돼지찌개 맛은 장금이가 살아온대도 못 만들 맛이리라.

검지 손가락 굵기로  썬 앞다리살을

돼지비계로 기름을 내어 볶다가 

새우젓과 거칠게 빻은 고춧가루를 넣고 

빨갛게 고춧물이 들게 달달 볶는다.

초벌 쌀뜨물은 버리고 두 번째 쌀뜨물을 받아 조금씩 부으며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불을 줄였다가 고기가 익었다 싶으면, 

중지와 약지를 합한 넓이로 두부를 썰고  

양송이버섯을 도톰하게 썰어 넣어주면 된다.

칼등으로 톡톡 으깬 마늘과 어슷 썬 파를 넣으면 되는데

기호에 따라 신맛이 혀를 뻣뻣하게 할 잘 익은 배추김치를 넣어주면

오장육부가 꽹과리 치며 펄쩍펄쩍 뛸 맛이 나오리라.

지름이 잘잘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 한 숟갈

오물오물 씹다가 고기와 두부를 한 수저 가득 담아 입에 넣어 깨물면

밥알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짭조름한 새우젓국은 목젖을 요동치게 

하는데 먹어보지 못한 자 말 못 하리. 

하얀 밥에 찌개를 퍼 넣고 밥알을 툭툭 쳐서 후후 불어가며 먹으면 

이성계도 맛보지 못한 성찬이리라.

그렇게 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볼록볼록 새끼 포도송이처럼 열리는데,

주먹으로 쓱 훔치면 불끈거리는 힘은 오둥이도 낳을 수 있으리 어흠.

더 먹으라며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고 국자로 떠주던 박사장 사모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리라.

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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