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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Jul 25. 2022

가을에 온 천사, 넌 도대체 뭐니?

가을이를 처음 만난 날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내가 초등학생일 시절 강아지 두 마리가 할머니 집으로 찾아왔다.


본래 이모가 키우던 강아지들이었지만 사정이 생겨 몇 달간 할머니의 동거인으로 들어오게 된 아이들이었다. 앵두와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두 천사가 할머니 집에 왔을 때 난 뛸 듯이 좋아했다. 깜찍한 앵두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귀염성이 많던 우리 앵두와 시크하고 도도 그 자체였던 우리 가을이. 이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난 애정 했고 사랑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으로서 그들에게 주는 사랑은 무척이나 어설펐고 부족했다. 강아지들이 나한테 오지 않자 억지로 안아서 마구마구 쓰다듬는가 하며 같이 왈왈... 짖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특히, 그 당시 가을이는 할머니나 이모 외의 사람들은 다가오기만 해도 으르렁 거려 불쌍한 앵두가 나의 희생양이 되었다. 앵두는 원체 사람을 따르는 늙은 강아지(그 당시로 7~8살)어서, 내가 옆에서 귀찮게 굴어도 쉽게 배를 보여주며 부비부비 거려줬으나... 가을이(그 당시로 1~2살)는 멋지게 미용한 털만 만지작 거린 채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으르렁거렸다. 나에게 쉽게 오지 않는 가을이에게 어린 마음에


"흥, 나도 너 싫거든. 오지 마라! 난 앵두랑만 놀 거다"

"붸에 약 오르지. 에베베벱"


거리며 유치한 행동을 했지만 가을이는 입을 쩍쩍 벌린 채 하품만을 할 뿐이었다. 결국 짧은 동거 기간 동안 가을이와 난 친해지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며 헤어졌다

앵두의 어린 시절

이제야 깨닫지만 그 당시의 나는 강아지 보호자로서 점수를 매기자면 0점이었다.

강아지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줄지 몰라 무작정 사랑 아닌 사랑을 퍼주는 꼬맹이.

그런 꼬맹이를 앵두와 가을이가 사랑해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헤어진 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신없이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건너 건너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앵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12살의 나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다고 했다. 어렸을 적 추억 하나가 떠났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긴 했으나 금세 앵두를 잊고 현실의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앵두는 세상을 떠났고 난 대학에 합격했다. 가을이는 감감무소식이었기에 만날 수 없을 거라 단정 지었다.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겠구나 생각을 했다.


***

대학에 합격한 후 처음으로 이모네 집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이모네 가족들을 보는 거라 설레는 기분을 안고 초인종을 누르며 기다리길 몇 초. 그런데,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들리는 왈왈왈왈 개 짖는 소리가 내 귀청을 때렸다. 순간 놀라 얼음이 된 후 열리는 문에서 빼꼼히 보이는 갈색과 회색의 털 뭉텅이.


"이모 쟤는 누구예요?"

"쟤 가을이잖아."


과거의 도도한 행색은 온데간데없고 털 뭉텅이 귀염둥이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에게 달려들며 핥기 바쁜 녀석을 떼내며 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얘가 가을 일리가 없어!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갑작스러운 환대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기 무섭게 이 아이가 가을이라는 소리를 듣고 내 심장은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모 얘가 가을이라고요?"

"걔가 가을이라니까."


나에게 항상 쌀쌀맞았던 가을이가 이제는 나에게 먼저 달려와 안기다니. 이게 꿈인가 생신인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입가를 핥으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가을이를 보니 얼떨떨해지기까지 했다. 미친 듯이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녀석을 가까스로 막고 잠시 숨을 골랐다.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가을이가 이토록 달라졌을까 궁금증이 마구 들었다. 그리고 9년 만에 가을이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용으로 화려한 털을 뽐내며 기강을 드러냈던 과거와 달리 솜 뭉텅이인 채로 체면도 생각지 않고 헥헥거리는 늙은 개가 내 눈앞에 앉아있었다.


긴 긴 시간 동안 난 어른이 되었고 가을이는 노견이 되었다. 우리 둘 사이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시간의 간극이 존재했다. 나는 이제 제법 옛날의 가을이처럼 젊음을 뽐낼 줄 알게 됐으나 가을이는 소파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그 간격이 갑자기 너무나도 서글퍼져  나에게 달려오는 가을이를 막지 않고 토닥이며 위로를 보냈다.


가을이는 알까. 과거든 현재든 가을이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 강아지인지를. 또 내가 먼발치에서 자신을 쳐다보며 얼마나 부러워했고 동경했는지를. 이젠 다 늙어서 털도 희끄무레진 옛 친구에게 난 너무나 쉽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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