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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Sep 23. 2022

눈길을 떼지 못했던 걸 왜일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유기견을 볼 때


 SNS 동영상에서 귀엽고 예쁜 강아지들이 주인에게 애교를 떨거나 곤히 잠자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안기고, 배를 뒤집는 강아지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떤 이들은(과거의 나를 포함해서) '나도 한 번 애완동물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뜩일 것이다. 


SNS 속 동물들은 한없이 착하고 예쁘다. 사고를 쳐도 귀여운 얼굴로 날 한번 쳐다보면 어떤 사고든 다 받아줄 자신이 생길 것 같다. 항상 그런 영상 말미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건 만만치 않아요"라며 뼈 있는 조언을 해주지만, 이미 강아지에게 홀린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는 그저 훈수나 잔소리일 뿐이다.


실제로 강아지를 키워보면서 느낀 점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지만 그 행복만큼의 책임은 항상 뒤따른다는 거다. 밥 먹이는 것, 씻기는 것, 대소변 치우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들부터 시작해 반려견의 건강 이슈, 갑작스러운 사고 등의 일들도 언제든 대비해야 한다.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반려동물을 기르려면 일단 돈 많고 시간 많고 책임감도 많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입양했다가 길거리로 나가게 된 아이들의 운명은 어떨지 생각은 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모든 일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

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내가 약 한 달 전 겪은 일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기에 하고 싶은 말들을 일단 쏟아내고 싶었다.


한 달 전. 가을이가 미용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못생긴 가을이~" "말 안 듣는 가을이~" 등 등 가을이의 짧게 자른 털을 보면서 난 신나게 놀리기 바빴다. 운율을 넣어 "가을이는 못생겼뒈여"라고 하면 꼭 자기도 알아듣는다는 듯이 가을이는 씩씩 거리며 콧방퀴를 '췻' 내뱉었다. 


꽤 즐거운 하루였다. 가을이의 몸상태 때문에 직접 걷는 산책을 지양했었는데 오랜만에 하네스를 꺼내 가을이의 목에 감겨주었다. 총총 거리며 걷는 가을이와 산뜻한 바람, 좀 덥긴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으니 모든 게 즐거웠다.


날뛰며 뛰어가는 가을이에게 딱밤을 날리며, 겨우 품에 안아 온 몸에 뽀뽀를 했다.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애정행각을 이어졌다. 그때, 가을이가 어딘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평소 다른 강아지를 보면 흥분하거나 잘 짖는 아이 었는데, 이번에는 그저 멀뚱히 무언가를 응시하기 바빴다. 나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이 있거나 신기한 물건이 있게거니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있던 것은, 회색 강아지였다. 과거에는 흰색이었을 털 색은 길거리의 매연과 먼지, 쓰레기와 함께 지내면서 탁한 회색이 되어 보였다. 털은 군데군데 엉켜 있고 너무 길게 자라 있어 눈앞을 다 가렸다. 지친 몰골에 가을이와 나를 바라보는 듯한 그 모습에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들었다.


내 품 안에 있는 가을이는 방금 전 미용을 하고 와 더욱 깔끔한 외양을 갖추고 있었고, 그 강아지는 제대로 목욕조차 하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가을이는 나와 함께 있었지만 그 회색 강아지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가을이는 집이 있지만, 회색에 눈앞이 가려진 강아지는 집이 없었다.


평소 다른 강아지를 보며 짖던 가을이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 강아지도 우리를 멀찍이 지켜보았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부러움과 외로움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꽤 서로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119에 신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근처 편의점에라도 뛰어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야 할지 등의 고민들이 마구 들었다. 하지만, 8월의 오후는 너무 더웠고 나와 가을이는 즐거웠지만 이미 지친 상태였다. 일단 집에 들어와 가을이를 내려놓고 다시 나갔지만 그 강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 저녁에 다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들고나갔지만 회색 강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가을이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맞고 가을이와 내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였지만 그냥 부끄러웠다. 마음이 아팠다. 그 강아지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

가끔 집 앞을 나서며 회색 강아지를 찾아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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