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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Jul 26. 2022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가을이에게 한 걸음



영영 못 볼 것 같았던 옛 친구를 만나 감격과 과격이 혼합된 인사를 받았다. 그 후 약 2시간 동안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우리는 변화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가을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고 안아주기도 하며 행복한 교감의 시간을 보냈다.


못 본 시간에 비해 만남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을이의 가족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가을이를 본다는 명목으로 이모집에 매번 찾아가는 건 실례였다.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우리는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했다.


가을이와 헤어진 뒤 난 정신없이 대학 생활을 보냈다. 몰아닥치는 과제와 시험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밤을 새 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를 완수하려 애썼다. 그 힘든 순간에도 가끔씩 가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 주변을 산책하는 강아지들의 모습도 가을이와 겹쳐 보였다. '계속 눈에 아른거리다'란 표현이 적절한 순간들이었다. 가을이만 머릿속에서 둥둥 떠올라, 하고 있는 일에 집중을 못할 정도였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가을이가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게.

가을이의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가을이를 만나러 이모집에 다시 한번 가볼까 생각하던 찰나 이모께서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여보세요"

"어 재원아. 너 요즘에 뭐하니?"

"아 이모, 저 이제 곧 방학이라 집에서 빈둥빈둥거리려고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집 와서 동생 돌보는 알바 해보지 않을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곧장 대답한 나는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 찬 것을 느꼈다. 가을이를,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

끔찍하던 과제와 시험을 다 마무리지으니 방학이 곧장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 학교에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갈 때처럼, 방학 중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사촌 동생을 돌봐주러 가야 했다.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몸이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귀여운 동생과 우리 가을이를 본다는 기대감이 나의 힘듦을 풀어주었다.


이모집에 출근도장을 찍을 때마다 사촌동생과 가을이는 나를 열렬히 환대해주었다. 가을이는 나에게 달려들어 뽀뽀를 하려 애썼고, 사촌동생은 그 장면을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우리 셋은 각자 꽤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사촌동생과 나, 가을이와 나 이런 식으로 같이 놀았다. 보통 사촌동생과 내가 젠가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가을이는 옆에 쫄래쫄래 다가와 자신을 만져달라고 발을 들이밀었다. 가을이에게 푹 빠져버린 나는 그녀께서 시키시는 대로 쓰다듬거나 안아주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을이


하지만, 내가 가을이에게 관심을 줄 때마다 사촌동생은 자기와 함께하는 놀이에 집중하길 바랬다. 당연한 일이었으나 조금의 아쉬움은 존재했다. 셋이서 함께 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사촌동생은 사촌동생대로, 가을이는 가을 이대로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항상 사촌동생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촌동생과 가을이의 관계성은 애매했다. 가족이라는 유대감은 있지만 동생은 가을이에게 엄청난 애정을 가지지 않았다. 가을이의 행동을 관찰하며 가끔 "가을이는 맨날 혀를 날름거리니까. 전생에 뱀이었을 거예요." 같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맘속에서는 이기심인지 바람일지도 모를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어쩌면 이 늙은 강아지에게 좀 더 나은 안식처를 제공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더 큰 사랑과 돌봄을 줄 수 있으니 나와 가을이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


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꿈을 꿨다. 가을이가 내 품속에서 잠에 들고 잠에서 깨 아침이 되면 다시 내 품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꿈들. 간절한 꿈이었지만 독단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정할 수 없는 일이기에 방학 기간 동안 가을이의 애꿎은 털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나와 사촌동생이 개학을 맞아 다시 가을이와는 이별을 해야했다. 그때의 헤어짐은 그리 슬프지 않았다. 헤어질 걸 알기에 열심히 사랑을 주었고, 다음 방학 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행복했다. 정말로 행복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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