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 줄 거예요?
“뭐 먹으려고?”
“그럼 아무것도 안 먹고 놀아요?”
날씨는 덥고 가스레인지 앞에는 더더욱 가기 싫은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아침엔 시원한 헬스장에 가서 놀이기구 타듯 운동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운동하다가 자전거에 앉는 순간 다리는 페달을 돌리지만 내 의식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는 행동을 한다.
같이 간 다이어터딸이 엄청난 속도로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다.
“물 좀 마시면서 해.”
엄마라는 사람이라 걱정돼서 물 좀 마시라 권해봤다.
“지금 물 마시면 토해요.”
“어? 어.. 그럼 안되지..”
제자리로 돌아가 땀을 식히는지 자전거를 타는지 알 수 없는 무의식 행동을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리다가 다이어터딸을 학원으로 보냈다. 오후 1시에 간 딸은 다음날 새벽 1시나 되어야 집에 온다.
그렇게 학원으로 작은딸을 보내고 나는 자취하는 딸이 방학이라고 집으로 와서 둘이 놀았다.
“엄마, 더워요 에어컨 좀 낮춰봐요. “
“26도면 시원한데 또 낮춰?”
“엄마, 밥 뭐 줄 거예요?”
“방금 떡볶이 먹어 놓고 밥 또 줘?”
“엄마, 복숭아 좀 잘라줘요”
“음…”
날은 더운데 시어머님한테도 안 당해본 시집살이를 시킨다.
난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말이다.
“너무 덥다. 짐 쌀래?”
“무슨 짐을 싸요?”
“너의 자취방으로 놀러 가자. 너의 집 근처 망고주스 맛집도 가고, 짬뽕 맛집도 가면서 피서 가는 거야!”
맛집에 솔깃한 딸이 냉큼 오케이를 바로 해버렸다.
이젠 본인이 시집살이가 되는 줄도 모르고.
나는 옷 몇 가지를 챙겨서 바로 딸과 출발했다.
“여보, 내가 소고기두부찌개 얼큰하게 잔뜩 끓여놨어. 그 거랑 해서 아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난 떠날게.”
“그래? 잘 쉬다와”
난 남편에게 대충 설명하고 짐 싸서 출발하려는데 매일 새벽에나 집에 오는 딸이 문자가 왔다.
“엄마, 오늘은 좀 일찍 집에 가고 싶어요.”
“고3이라 힘들지. 매일 늦게까지 했으니 오늘 하루는 일찍 와도 돼. 너도 언니자취방 갈래?”
“그래요? 좋아요.”
“그래 우리 거기서 만나.”
나는 그렇게 딸 둘과 함께 큰딸 자취방으로 피서를 갔다. 아니 왔다.
도착한 딸의 자취방은 그냥 버려진 방 느낌으로다가 모든 물건들이 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내 눈은 편하지 않다.
깔끔한 딸이라 잘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몇 번 와봐서 기대하지 않았다. 깔끔은 내다 버렸다.
가자마자 난 방바닥 물건을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더워. 에어컨 좀 켜줘.”
“네. 네 켜드려야지요.”
“냉장고에 마실 거 없어? 좀 꺼내봐.”
전세역전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 엄마가 손님이 되어 딸이 챙겨주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언니, 수건 어딨 어?”
“응 그건 여깄 어.”
“언니, 컵었어? “
우리 둘째 딸이 나보다 더한다.
큰딸은 그렇게 집안을 치우고 엄마와 동생을 챙기느라 땀을 뺐다.
“엄마, 뭐 줄 거예요?”
“뭐 먹으려고?”
“그럼 아무것도 안 먹고 놀아요?”
둘째 딸이 앞으로 17일 안에 4킬로를 더 빼야 하는 상황이다.
학원에서는 입시를 앞두고 무용을 하는 딸에게 4킬로를 더 빼라고 숙제를 내줬다.
그래서 여기 오기 전에 큰 딸과 우리 아무것도 먹지 말자고 몰래 약속했는데..
먹자고 도전장을 내건 건 둘째 딸이었다.
그래 오늘 하루 먹자!
우린 동네 마트로 달려갔다.
속전속결.
“너네 이거 알아?”
“이게 뭔데요? 튀김우동과 열라면 두 개 섞어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
“아 sns에서 봤어요.”
“그렇지? 우리 이 두 개 사다가 셋이 나눠먹을까?”
“좋아요”
우리는 그렇게 아주 소소하게 먹겠다 약속하고 튀김우동과 열라면 하나씩 딱 두 개를 샀다.
열튀김우동 먹는법
1. 각자 컵라면에 물을 붓고
2. 수프를 넣고 덮어
3. 3분을 기다린다.
4. 한 군데에 와르르 모아 붓는다.
찰랑찰랑 넘칠까 말까. 두 개가 합쳐져서 그릇 꼭대기까지 차오른 모습이 맛있어 보이기만 하다. 군침이 돌아 꿀꺽 소리가 난다
튀김우동의 오동통한면, 그리고 열라면의 매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기대된다”
“이 밤에 재밌다”
그렇게 이 시간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그런 시간 밤 9시다.
“너 내일 후회하는 거 아냐?”
난 다이어터딸에게 물었다.
큰딸은 매우 말라서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작은딸은 무용을 입시로 하고 있어 억지로 다이어터가 됐다.
“내일 헬스장 가서 열심히 달릴게요”
“그래 그럼 우리 조금만 먹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 라면을 끓이고 기다리는 이 시간이 재미가 있다.
남편은 방에 혼자 있으니 심심하다고 톡이 온다.
가끔 혼자 있는 것도 남자들에게 필요하다고 하니 혼자 잘 놀아보라 했다.
아들은 학원에서 늦게나 돌아왔다고 한다.
조용해진 집이 어색할 테지.
그러게 매일 퇴근해서 온 당신에게 헛소리라도 떠들 때 좀 들어주고 웃어주지.
폰만 보더니 괜스레 쌤통이다.
나는 잠깐 남편을 걱정 아닌 걱정을 하다 잘 익은 라면을 바라봤다.
딸들이 엄청 기대를 하고 있다.
최근에 라면을 못 먹었다.
야식이 오랜만이다.
기대에 부풀어 말하는 건 물론 무용을 하는 딸이다.
“자, 다 된 것 같아 앞접시에 잘 먹어봐”
우리는 경건하게 튀김우동과 열라면이 섞인 튀김열라면을 시식했다.
“느끼한 튀김우동을 열라면이 잡았고요. 매운맛의 열라면을 튀김우동이 잡았네요.”
뭔가 서로가 서로의 보완해야 할 점을 서포트해 준 맛.
서로가 서로의 손을 붙잡고 강강술래하는 맛.
우리는 그렇게 아주 조심스럽게 열튀김우동으로 야식을 먹었다.
두 개 끓여서 세 명이서..
예전 같으면 돈이 없어 두 개를 세 명이서 먹었다고 하지.
지금은 살찔까 봐 아주 조심히 절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그렇게 열튀김우동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밤새 이야기 하고 놀 줄 알았지만 모두 하루가 피곤했다.
아침이 되어 서로를 마주한 우리 셋은..
모두가 튕튕 부었다.
당장 입시 학원으로 출근 아닌 출근을 해야 하는 둘째는 원래의 우리 집으로 달려가겠다고 했다.
헬스장으로 가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응. 엄마는 며칠 더 피서를 즐기다 갈 테니 너 먼저 가.”
“엄마, 같이 안 가요?”
“응. 너 학원 끝나면 또 와.”
“알았어요. 엄마, 언니랑 잘 놀고 있어요.”
그렇게 둘째 딸은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다.
그 후 큰딸은 엄마 시중드느라 시집살이하고 있다.
“딸, 비누 어딨어? “
“딸, 화장지 어딨어?”
“딸, 창문 좀 열까?”
“딸..”
“그만 불러!”
엄마, 엄마, 불러가며 자꾸 엄마를 시켜 먹을 땐 언제고 이제 자기가 귀찮아지니 피서가 아니라는걸 느낀듯하다.
“엄마 이제 집에 갈게..."
눈치 보듯 말하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우리는 그렇게 시원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점심도 사 먹으며 피서를 즐겼다.
이 여름이 다 가고 한 해 두 해가 가면 추억이 될 만한 그런 여름피하기 놀이를 하면서~
열튀김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