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자취방에 그거 가져갔어?”
“아닌데요? 처음 듣는데요? “
“그럼 고3딸 혹시 네가 먹었어? “
“아닌데요, 저 다이어트 중인데요?”
“그럼 중2 네가 숙제할 때마다 매번 과자 먹잖아 네가 가져가서 먹었어?”
“최근에 코코볼에 빠져서 그거 먹느라 못 먹었는데요?”
내가 마트에서 마음대로 사고 싶은걸 못 사게 된 지는 6개월쯤 된다.
고3딸이 입시학원에 다니면서 다이어트가 시작됐고 딸을 위해 과자니 빵은 잘 안 샀다.
사더라도 미안하지만 숨겨두고 중2 아들만 먹었다.
항상 짱구 그려져 있는 과자를 사다가 TV 볼 때 남편과 아들이 같이 몇 개 먹고는 매번 남겨놓고 잠들었었다.
어느 날 남겨졌던 짱구 과자가 아침만 되면 봉지째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고3딸이 그걸 다 먹고 치워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시 준비 하는 과정에 무용과목이 있는 딸이 키도 크고 말랐는데 더 많은 다이어트를 요구한다.
새벽 1시나 되어 오는 딸은 저녁 5시에나 샐러드정도밖에 못 먹고 8시간 넘는 연습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허기가 지고 가끔 눈도 도나보다.
그래서 먹었던 반찬들이나 간식을 모두 치워주는 게 우리 가족의 최선의 배려였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짱구를 잊고 모두 잠자러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달고 달았던 짱구는 고3딸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엄마 탓이다. 더 조심했어야지.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다짐한다.
그렇다고 큰딸이 그랬다고 의심할 수는 없다. 큰 딸은 다른 곳에서 자취를 해서 주말에나 집에 온다. 그래서 짱구의 행방은 고3딸로 지목이 된 것이다.
사건은 기억력이 감퇴해서 도대체 언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게 소리소문 없이 터졌다.
내가 장 보다가 사온 마카로니 뻥튀기 때문이다.
호프집에 가면 우선 기본으로 조그마한 그릇에 나오는 바로 그 뻥튀기다.
손가락에 끼려 해도 구멍이 작다. 짱구랑 비슷하지만 맛도 크기도 다르다.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엄청나게 큰 그 마카로니뻥튀기를 하나 집었다.
우와 정말 크다. 3살짜리 아이들 키만 하다.
끌어안으면 내 두 팔에 포옥 안기는 양이다.
밥을 먹고 마트에 갔어야 했다. 공복유지한다고 빈속으로 갔더니 그 어마무시 큰 뻥튀기를 냉큼 집어온 것이다.
집에 와서 숨겨놓으려고 여기저기 열어봐도 그것이 들어갈 만한 마땅한 자리가 없다.
‘어쩌지…’
나는 그 큰 뻥튀기를 소파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내가 안 까면 아무도 안 깐다 걱정말자’
그렇게 생각한 것과 다르게 TV를 보던 내가 바로 부우욱 하고 찢어 개봉을 해버렸다.
한 개 두 개.. 손이 간다 손이 가. 다 아는 맛인데도 또 간다.
하지만 몇 개 먹다가 느끼해져서 난 다시 집안 청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까지다. 내 기억의 마카로니뻥튀기의 행방말이다.
일주일 뒤에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 마카로니뻥튀기가 떠오른 것은 TV에서 그 마카로니를 먹는 주인공 때문이었다.
“앗! 내 마카로니뻥튀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열어 찾았다.
내가 분명히 개봉을 했고 잘 숨겨두었나 보다.
하지만 여기저기 열 수록 내가 그때 둘 곳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급해졌다. 이것이 어디 갔을까? 누구에게든 물어봐야 한다.
첫째 자취딸에게 톡으로 짧게 물었다.
“딸 자취방에 마카로니 가져갔어?”
“아닌데요? 처음 듣는데요?”
모처럼 학원이 없던 둘째 딸 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고3딸 혹시 네가 먹었어?”
“아닌데요, 저 다이어트 중인데요?”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럼 아들인가 보다.
“중2 네가 숙제할 때마다 매번 과자 먹잖아 네가 가져가서 먹었어?”
“최근에 코코볼에 빠져서 그거 먹느라 못 먹었는데요?”
자취딸은 안 가져갔는데 왜 의심하냐 삐지겠다 선포하고.
둘째 고3은 다이어트로 예민한데 왜 이상한 거 물어보냐 화를 내고
중2 아들은 지금 수학숙제 하는데 그거 먹으며 하겠다고 당장 내놓으라고 난리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미안하다 그래 미안해!
이런.. 다 아니랜다. 그럼 누구? 나겠지.
그래서 여기저기 온갖 수납공간은 다 뒤져서 찾아봤다.
없다. 그 큰 게 안보일리 없는 크기이기 때문에 눈에 확 띄어야 한다. 하지만 없다.
맞다. 없어도 되긴 하다.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중요하다. 혹시 다이어트하는 고3 이가 그걸 다 먹었다면 칼로리가 어떻게 될까?
검색에 들어간다.
100g당 480kcal
총 무게 2.4kg 총 칼로리 = 1,152 kcal
어마무시하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가끔 그 뻥튀기가 생각나면 여기저기 또 열고 닫고를 반복한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마카로니뻥튀기.
그러다 얼마 전 주말에 남편과 둘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아주 평화로운 날이었다.
“여보, 내가 맥주집에서 주는 기본안주로 나오는 그 뻥튀기 알지? 그거 통째로 없어진 거 알아? “
“그.. 근데?”
“그걸 내가 까고 한 5개쯤 먹었어. 근데 그 뒤로 안 보여.”
“…”
무슨 이야기하는 거냐 라며 듣던 남편에게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게 아이들한테 물어봤는데 진짜 아이들은 아니더라고. 그게 어디 갔을까?”
“…”
아무 말이 없이 듣는 남편의 표정이 이상하다.
“뭐야? 당신이 어디에 치웠어?”
“아니”
“그럼 가져가서 먹었어?”
“아니”
“그럼? 보긴 했어?”
“그게… 청소기 하다가 온 거실에 흩날려졌어.”
“오잉? 그게 가능해? “
“응 내가 청소기를 하다가 그게 개봉 안된 것인 줄 알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끝부분을 잡았는데 그만 다 쏟아지지 뭐야. “
“그래서? 남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없어 다 쏟아서 내가 다 버렸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카로니의 마지막은 화려한 눈꽃이 되어 우리 집 거실에서 흩날리다가 결국엔 뱃속이 아닌 종량제봉투에 담겨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결론은… 진작에 남편부터 의심해 볼걸.
잘 가. 내 마카로니~ 마지막은 아름다웠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