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겠어
아무리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엄마는 종종 나와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집이 참 셌다'라고 말씀하셨다.
명절처럼 가족들과 어딘가 나서는 일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곧잘 빠지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입을 굳게 잠갔다. 가족들은 답답해했다. 왜 싫은지 말이라도 해라, 안 가면 혼자 어떻게 지낼 거냐, 대답 좀 해봐라. 방 한 구석에 벽처럼 앉은 채 아무 말 않는 나를 두고 가족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떠나거나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데리고 나갔다.
왜 싫었을까? 이유는 많았다. 어른들과의 인사치레도 싫어, 사람 붐비는 것도 싫어, 불편한 남의 집도 싫어, 등등. 혼자서 어떻게 지낼 건가? 난 어릴 적부터 혼자 있을수록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벽처럼 앉아서 벽이 되어버린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내키지 않는 마음에 조금 굼뜨게 채비를 하다가 그대로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리곤 한 것이다. 멍 때리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멍 때리고 있음을 자각한 순간 의식의 세계로 돌아오지만, 나는 그 사실조차 강줄기처럼 흘러가는 생각의 줄기에 쓸려 잃어버리곤 했다. 손에 모래를 쥐고 빠른 물살에 담그면 아무리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모래는 물살을 따라 쓸려가 버린다. 가기 싫은 마음은 그 손가락의 힘을 조금 더 풀게 만들었으니 옆에서 엄마가 천장 떠나가라 화를 낼 동안 나는 벽지 무늬나 바닥에 떨어진 먼지 조각들이나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생각 줄기는 의식이 따라잡을 수도 없는 속도로 흘러 흘러 어느새 '가기 싫음'에서 '그저께 들은 노래의 원곡을 부른 가수의 성장 환경' 같은 의미 없는 정보들에 도달하곤 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하는 말에 필요한 대답과, 가족들과 평화롭게 합의를 보고 싶은 의지마저 생각 줄기를 따라 흘려보내고 나면 엄마의 목소리는 배경음에 불과했다.
엄마는 내가 몇 살이고 더 먹을 동안 항상 가기 싫은 곳엔 절대 안 가려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 하려 하던 나를 회상하셨다. 느닷없이 학교에 가기 싫다며 드러눕는가 하면 하기 싫은 과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백지만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그럼에도 무단결석 한 번 없고 그럭저럭 의무 교육 과정을 끝낸 것은 어렸을 때는 개근상 못 타면 하늘이 두 쪽 나는 듯 자식을 키우던 엄마의 힘이요, 머리가 큰 후에는 선생님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듯 줄타기를 해대던 내 불안의 힘이었다.
학교에 다니며 특히나 내가 싫어했던 것은 수학이었다. 중학교 어느 학년부터인가 수학 성적은 하향선을 그리며 괜찮은 점수의 다른 과목들과 격차를 벌렸다. 공부하기 싫어서 성적이 낮고 성적이 낮아서 공부하기 싫은 악순환이 몇 년이고 계속되었다. 자잘한 계산 실수는 당연하고 복잡한 문제를 마주하면 논리가 길을 잃었다. 방금까지 써 내려가던 식으로 구한 값이 무엇이며 그것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나의 성적 구멍을 매우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수학 성적에 조금씩 빛이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수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등급을 받으며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고 말았다.
또한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또는 그 안에 몇 줄 더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은 내가 지새운 수많은 밤의 원인이었다. 활동이 나에게 도움된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번지르르한 문장 만들기에 질리고 나면 한 글자도 더 적을 수 없었다. 공부는커녕 핸드폰을 만지거나 빈 문서를 열어놓고 하얀 바탕색만 노려보다가 밤을 새우고 나면 남는 것은 다음날의 졸음과 어쭙잖은 핑계뿐이었다. 밤새 아무런 생각도 해내지 못하고 빈 손으로 가서는 무슨 과제가 있으며 파일이 날아갔다는 둥 우스운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아 한 글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은 지금도 의미를 못 느끼거나 스스로 보기에 내용 준비가 미흡한 무언가를 빈말로 작성해야 할 때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싫은 것은 절대 하기 싫고 좋은 것은 꼭 해야만 했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낼 때는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존재할 때, 특히나 일을 마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 류의 보상이 존재할 때였다. '숙제를 다 하면 게임을 할 수 있다' 식의 보상은 그냥 숙제를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는 식으로 해결해 버렸고, 생각의 급류에 떠내려가는 집중력을 붙잡을 동기가 되어주지 못했다. 학창 시절 가장 큰 문제였던 공부를 그나마 계속하게 해 주었던 것은 나의 성적이 남들에 비해 좋은 편이라는 '우월감'이었다. 그야말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보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만족감을 얻으라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오랫동안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열등해 보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고 남은 것은 각종 정신적 애로사항뿐이었다. 병인 줄도 모르는 채 부족한 점을 감추느라 급급하던 내가 언제나 달고 다니던 단어는 '자격지심'이었다.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보다는 더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꼈고 그들이 나의 성적을 뛰어넘을 때면 좌절했다. 좌절은 곧 무기력이 되고 나는 끝내 우월감 얻기를 완전히 포기해버린 '원래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법은 '생각하지 않기'였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싫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몸부터 움직여야만 했다. 내가 주어진 시간을 적절히 나눈 계획을 지키리라 믿지 않았다. 시작한 자리에서 끝을 보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미뤄졌다. ADHD의 충동적이고 한 번 시작한 것을 쉽게 끊지 못하는 성향을 이용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의욕을 증진시키는 처방 약과 상담치료의 도움 없이 이런 방식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약물 치료를 받기 전에는 '해야 하는 걸 아는데 하지 않는 나'를 두고 자책하는 생각의 흐름을 끊어 내는 것이 그리도 어렵더라.
아직도 하기 싫은 일을 '까짓 거 해보죠' 라며 시작하긴 쉽지 않다. 대학원에 다시 지원하기 위한 준비도, 어딘가에 내놓을 만한 이력을 만들기 위한 공부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의욕이 생기겠거니 하고 넘기다 보면 생각의 흐름은 나를 또 다른 흥밋거리로 데려다 놓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