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중년의 생 바라보기 10
삶의 인연은 어느 곳으로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 십여 년 전 아내와의 추억을 일기처럼 쌓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다 우연히 한 형님을 알게 되었다. 무형의 세계에서 만나 인사하던 그 형님을 십 년 만에 유형의 세계에서 만났었다. 그때, 그는 나에게 직장 은퇴 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올 거라고 제주의 올레 길에서 선언했다. 나는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그는 나에게 스페인으로 떠났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 후 그가 순례길에서 보내온 글과 사진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의 동경과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함께 주었다.
올레 길에 있는 나와 순례길의 그를 생각하면 멀지만 같은 길 위에 있다는 동지의식도 가지게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총 800킬로미터를 프랑스 남부의 생장피드포르 ( 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Cath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걷는 것을 의미한다. 대략 한 달이나 한 달 반 동안 스페인의 성인이기도 한,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까지 걷는 길을 말한다. 그 길을 걷는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이삼십 킬로마다 나오는 숙소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만나 매일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곳에서 때로는 자신이 주방장이 되어 음식을 만들고, 때론 음식을 대접받는 선행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순례길이 달리 순례길이 아닌 모양이다. 스페인의 길이지만, 속칭 ‘프랑스 사람들의 길’이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이름 따위는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속죄를 위한 끊임없는 뉘우침의 길이기도 하다. 그 길에서 평야, 고산과 안개를 만나며, 때로는 비와 그 비를 타고 오르는 흙과 함께 걷기도 한다. 길 옆에는 십자가, 고행자의 동상 그리고 순례길이 얼마나 남았다는 표지석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장장 800킬로미터의 길을 온전히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두 다리로만 걷다 보니, 그 끝에 우뚝 서 있는 야고보의 성당에 도착하면 그들은 해냈다는 기쁨의 눈물을 짓기도 한다.
반면, 올레 길은 소박하다. 총 470킬로미터로 이루어진 27개의 코스는 순례길보다 짧지만 그래도 꼬박 한 달이 걸린다. 거기에 가파도, 우도, 추자도에까지 가려하면, 신이 도와주어야 완주가 가능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그래서인지, 내국인들은 수시로 제주에 내려와 올레 길을 테트리스게임을 하듯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 둘 격파하듯 걷고 간다. 제주의 올레 길은 언제나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트인 망망대해를 보며, 등 뒤로는 제주의 뒷배인 한라산을 지게 된다. 그 풍경에 비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풍경에 취한 듯 인사 없이 지나간다. 어쩌다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올레 길에 오래 머문 사람들이다. 인사를 하는 것이 마치 연예의 수작이라도 거는 듯 어려운 일이 된 이유는 아마도 험난했던 근 현대사를 넘어오며 친절만으론 살아 날수 없었던 생존의식에 무뚝뚝함이 몸에 배었을 것이다. 짠한 마음마저 든다. 올레 길에서는 수선화, 번앵초, 복수초 등 수많은 들에 핀 피사물과 함께 길 옆에 무덤을 만나게 된다. 그 무덤엔 누구의 것이라는 표시도 없다. 그저 들짐승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돌담만이 그 무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자주 출몰하는 둔덕들을 보다 보면 죽음조차 삶이라는 아득한 생각이 든다.
그 수많은 무덤 중엔 제주의 큰 아픔인 4.3 사건으로 인한 주검들이 두서없이 섞여 있다. 이념의 대립이 많은 선량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고, 그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이념은 없다. 독일이 자신들이 자행한 유대인 희생자의 이름을 슈톨퍼 슈타인(Stolper stein)이라는 걸림돌을 길에다 새기듯, 우리 역시 현대사의 아픔을 올레 길의 무덤들을 통해 상기했으면 좋겠다. 죽음의 길이 곧 삶의 길이라는 사실을 올레 길 옆 무덤들은 말없는 아우성으로 알려주고 있다. 상처를 덮기보다는 환부를 온전히 드러내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아 건강한 날로의 회귀를 꿈꾸라고 말하고 있다. 자본과 공산의 이념 대립이 다시 부각하는 요즈음, 그 상흔은 한반도의 휴전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던 남쪽 제주에도 버젓이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올레 길을 통해 알았으면 한다.
순례는 성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숭고한 일이다. 거기에 반해 올레는 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좁은 길을 뜻하듯 피안(彼岸)인 죽음에서 차안(此岸)인 삶으로 끌어드리는 희망의 길이 되기를 바라본다.
며칠 전에 선배는 순례길을 마치고 귀국하였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못다 한 올레 길 완주를 위해 봄날에 오겠다고 전했다. 난 흔쾌히 그와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걷게 될 올레 길은 오손도손 서로의 안부와 일상을 나누는 따뜻한 길일 것이다. 그 봄이 나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