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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Feb 25. 2023

커피의 과실 (果實)

 커피는 열매일까? 씨앗일까?


 매일 마시는 음료지만, 우린 이렇게 무심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커피는 씨앗이다. 커피의 열매는 체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커피 체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안에는 두 개의 씨앗이 다소곳이 들어있다. 그런데 가끔가다 한 개의 씨앗만 있는 것이 나온다고 한다. 불량이다. 맛도 다르고 향도 달라 그런 열매는 버린다고 한다. 커피마저 한 쌍이 아니면 반 푼이 취급을 한다. 

 그 열매들은 따서 가공하는 데는 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고추 말리듯 자연건조 시켜 맷돌 같은 것을 이용하여 갈아 씨앗을 추출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물에 담가 불려 씨앗을 얻는 방법이다. 건식은 씨앗 자체의 성분이 스며들어 단맛이 강하고, 습식은 물에 담가 놓다 보니, 발효 등의 작용으로 신맛이 강하다. 습식은 물이 좋은 지방에서나 작업을 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라면 아마도 습식으로 만들었을 듯싶다. 그래서 인가, 커피를 먹으면 난 유독 신맛이 강한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가 아무리 외래종이라고 해도 오래된 관습처럼 몸이 먼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다. 그 효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한 양 떼 지기였다. 양들이 특정 열매를 먹고 며칠 잠도 안 자고 날뛰는 것을 보고 대단한 스태미나 열매라고 여겨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커피를 이슬람국가에서 먼저 널리 애용하자,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이단의 열매라고 하여 불에 집어넣어 태웠다고 한다. 마치 악마를 불에 넣고 화형 하듯. 신은 커피를 저버리지 않은 모양인지, 커피 타는 냄새에 반해 불에 탄 커피를 먹은 것이, 오늘날의 로스팅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유럽에서 16세기 이전엔 물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해 술을 만들어 마셨지만, 커피가 보급되면서 술 대신 마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술 소비량도 급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또한 살롱이라는 고급 술집들이 차차 줄어가고, 커피하우스라는 오늘날의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맨 정신에 토론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로 발전했다고 어떤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 정도면 커피는 인간의 문명 발전과 지식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나 역시 커피로 인해 비로소 카페에 설치된 무인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 과실을 충분히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새로운 기기를 만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나에겐 충분조건이 아닌, 필수 조건이었기에 천천히 화면을 보며 배워 나갔다. 이런 신문물들은 초기의 두려움만 없애면, 실상 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커피가 주는 혜택을 잘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운동 후 집에 가기 전 동네 커피전문점에 들렸다. 손님은 많지 않았으나 키오스크에 나보다 먼저 온 한 젊은 여성이 커피 주문을 넣고 있었다. 그날따라 오전에 모임이 있어서 나름 바쁜 아침이었지만, 그 여성분이 당황하며 주문하는 모습에 혹시나 내가 무언의 압력을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분은 한참을 공부하듯 키오스크에 일곱 잔의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고, 심지어 뒤에서 보자 하니, 가지각색으로 커피 주문을 받아 온 모양이었다.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라테를 넘어 샷 추가, 반 샷에, 시럽추가까지. 여성은 종이에 적힌 주문을 기계에 입력하며 한숨을 지었다. 그분의 느린 주문에 결국 주인이 밖으로 뛰어나와 주문을 도와주었다. 그때 그 젊은 여성의 입에서는 변명하듯 한마디 던진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것도 힘드네요!”


 나보다 족히 이십 년은 젊어 보이는 여성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에,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역으로 보여주는 말이었고, ‘아! 이분은 커피가 더 필요하신 분이구나!’하는 속마음이 입 근처에 맴돌았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아마도 조선말 고종 때였을 것이다. 일화에는 고종의 커피에다 김홍륙이라는 대신이 독을 탔는데, 커피 향이 평소와 달라 고종이 마시지 않아서 변을 피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아들 순종은 한 모금을 마시고 한참을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고종 역시 커피를 잘 알았기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한국에서 차보다는 커피가 더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식후에 ‘숭늉’을 마시며 사랑방이나 대청마루에서 수다를 떠는 문화를 완벽하게 대체했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의 커피사랑이 유별난 것은 아닌 것 같다.

 1970년대 인스턴트커피를 한 회사에서 만들면서, 커피는 보편화를 넘어 보통화 된다. 그 당시 이 커피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으면 목성균 작가는 그 회사의 CF 유행어로 자신의 수필 “커피에 관한 추억”에서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음-, 이 맛 -.” 그 소리는 미각과 후각이 놀란 나머지 본능적으로 울리는 소리로서 커피 문화의 척도일 것이다. 그 소리는 안성기 같은 명배우나, 고은 같은 원로시인이나, 운보 같은 노 화백이 커피잔을 들고 창작의 여가를 즐기며 해야 걸맞은 소리다.


 밭가 그늘에 앉아서 막걸리를 한 대접 들이켜고 ‘어- 시원타-“하던 농부가 시골 다방에 앉아서 커피 잔을 들고 레지 앞에서 커피 맛의 달인인 체 ‘음-. 이 맛-‘그러면 워리가 방귀 귀는 소리처럼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목성균 작가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 세태를 살펴보면 온갖 커피전문점이 도시를 점령한 것도 모자라 시골의 작은 마을에도 동네 슈퍼보다 더 많아졌다. 새벽 즈음 경운기를 몰고 밭이나 논에 나가기 전 뜨거운 아메리카노로도 모자라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켜 ‘음- 이 맛-‘하는 농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커피는 더 이상 고급품도 사치품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이어주고, 사람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도와주는 주체로써 빛을 발하고 있다. 매일아침 따뜻한 라테 한잔을 들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반가운 인사로 반겨준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커피에 대한 것인지 헷갈리지만, 그 인사가 있어 아침이 상쾌하다. 이것이 나에겐 또 다른 커피의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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