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섭 Feb 21. 2023

천생배필

 날이 알맞은 나른한 토요일 오후였다. 청초한 공기덕에 세차를 맡기고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있었다. 다음날 오랜 외유 끝에 아내가 한국에서 들어오기로 했기에, 오전에는 집안청소도 끝내 놓았고 오후엔 카페에서 온전히 책이나 보면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 정적을 깬 건 후배의 전화였다. 별일 없으면 같이 축구나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순간 망설였다. 후배와의 긴 통화 후에 나는 어느덧 축구장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비극으로 이어지리라고 상상도 못한 채. 

    

 그날 잔디는 더욱 푸르렀고, 몸 상태는 최고였다. 컨디션 좋은 날은 조심해야 한다는 징크스 따위는 무시한 채 나는 필드를 망아지 초원 달리듯 누비고 다녔다. 그날은 처음 보는 축구회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운동 욕심도 많고, 골 욕심이 많던 나는 후배의 절묘한 패스를 받아 슈팅을 하려는 찰나였다. 뒤늦게 덤벼든 수비수는 나를 덮쳤고, 크게 몇 바퀴를 구른 후 왼쪽 어깨에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일어나려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고, 왼쪽 쇄골 뼈는 만져지지 않았다. 동료들에 의해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중국의 한 병원에서 왼쪽 쇄골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동료들과 상의 끝에 그다음 날 한국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걱정 반, 울음 반의 목소리로 공항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염치없는 마음에 후배가 나를 데리러 공항에 나오니 병원에서 보자고 했다.     


 밤늦게 결정된 수술로 나는 초조했다. 아내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후배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어깨의 아픔보다는 아내의 말이 칼이 되어 가슴을 후볐다. 내 잘못으로 다친 것이 아니기에 억울했지만, 아내는 애초에 축구장에 나간 것부터 가 잘못이라고 타박을 했다. 간호사의 호출이 마치 구원이라도 되는 양, 수술 잘 받고 오겠다는 말을 휑하니 던지고 병실에 아내를 남겼다.     


 수술실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 냉장고처럼 냉랭했다. 의사는 나를 세워 두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처절하게 조각 난 쇄골 잔해를 어떻게 재건할지를 통보했다. 수술대위에 새색시 마냥 누운 나는 고개만 돌린 채 수술을 인내해야 했다. 부분마취로 시작된 수술이 나중에 트라우마처럼 내 몸에 깊이 박힐 거라 생각지 못했다. 수술 내내 들리던 신경질 적인 혈압체크 경보음과 공기 수축음은 나를 압박했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나는 드릴이야'라고 내뱉는 기계음과 '이이잉 이이잉' 흐느끼며 '나는 톱이야'라고 내는 높은음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나사가 들어가며 내는 뻑뻑한 마찰음과 묵직한 진동은 나의 목을 누르듯 다가왔다. 그 긴장감속에 의사들끼리의 농담은 나를 그저 병원 내 방치된 물건쯤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술이 끝난 후 의사는 나에게 두 번째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수술이 끝난 지를 설명했다. 그 하얀 왼쪽 쇄골에는 북두칠성 같은 7개의 나사가 내 몸에 박혀 배필처럼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의사는 앞으로 1년은 함께 할 거라고 말했고, 나는 그 사진을 바라보며 영혼 없는 한숨을 쉬었다.     


 4시간의 수술 끝에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내 발로 입원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마주한 아내는 나의 부은 얼굴과 온갖 보조 장치로 휘감은 모습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애처로운 흐느낌이 수술 때 느꼈던 전동드릴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에 전달되었다. 그 어떤 마취제도 소용없는 또 다른 종류의 통증이었다. 그때 그 한순간 아내의 얼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울림이 되어 내 왼쪽 쇄골 안에 나사와 함께 갇혔다. 다행히 수술의 경과가 좋아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2주 후 퇴원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의 친구가 매일같이 병원에서 쪽 잠자며 간호하는 아내에게 "뭐 예쁘다고 그렇게 지극 정성이야" 라고 투정을 했더니, 아내는 "그래도 내 남편이잖아" 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대답이 또 한 번 반향이 되어 나를 아련하게 했다.     

 일 년 후 나는 수술대에 다시 올라갔다. 수술은 내 바람대로 전신마취로 이루어졌고, 내 의식이 사라졌을 때 내 몸 일부 같았던 왼쪽 쇄골의 일곱 개 나사들은 이별의 통보도 없이 떨어져 나왔다. 한편으론 그 나사들에게 고마웠고, 시원섭섭한 기분을 느꼈다. 그 빈자리엔 또 다른 칼자국이 아쉬움을 말해주듯 남겨져 있었다. 내 몸 일부 같던 나사는 떠났어도, 천생배필인 소중한 아내는 그 후로도 내 곁을 쭉 지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 결혼 생활을 '의리'로 버틴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다.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오직 사랑

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내 아내는 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난 가끔 왼쪽 어깨에 새겨진 아내의 울림을 쓰다듬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 밤 편히 잠들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