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SNS 활용법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가치 있는 일의 교집합이 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정보를 주는 어느 유튜버의 말이다. 막연히 나의 콘텐츠를 쌓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되짚어 보았다. 고쳐 앉은 자세가 무안하게 처음부터 막히고 말았다. 좋아하는 일. 그건 학창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말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했던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숙제는 반가운 적이 없다. 게다가 발표까지 해야 한다면 최악이다. 고민 끝에 적어 냈던 건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피아니스트, 왠지 한 번쯤 적어 넣는 선생님, 이런 식이었다. 그나마 책을 좋아해서 생각해낸 작가가 장래희망 취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수능이 끝나고 입학원서를 넣어야 할 때는 곤욕 그 자체였다. 그 무렵 정형외과에 다니던 엄마는 물리치료사가 편해 보인다며 물리치료과를 언급했고, 누군가가 미래를 결정해주는 편이 더 좋았던 나는 그렇게 물리치료사가 되어 10년을 일했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직장 생활을 한 뒤 집에 있던 전공서적을 모두 버렸다. 더 이상 좋아하지도, 딱히 재능이 있지도 않은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백수 겸 전업주부 생활을 1년 가까이 지속하고 보니 불안해졌다. 엄마란 삶이 내 전부는 아니란 생각이 계속 밀려들었다. 일이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처럼, 유튜브 알고리즘은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퍼스널 브랜딩을 해보라고 계속 제안하고 있었다.
'그래. 뭐라도 해보자'
이름부터 거창한 퍼스널 브랜딩은 잊기로 했다. 두서없이 올리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밀어놓고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 애매한 것 위주로 키워드를 뽑았다. 피드에 올릴 이야기가 눈에 띄면 신이 나게 포스팅을 했다. 3개월가량 꾸준히 올리다 보니, 흐릿한 것들 사이에 선명한 빛을 내는 키워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책과 커피였다. 내 옆에 늘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이란 장벽 앞에서 늘 작아지곤 했던, 흔하디 흔한 키워드였다. 그런데 키워드를 콘텐츠화해서 세상에 드러내니 이야기는 달라졌다. 피드 하나하나가 다 자산 같았다. 나의 이야기는 더 이상 흔해 보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니 자연스레 더 깊어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에세이, 정보서 위주로 편식하던 책 취향은 문학으로 넓혀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북카페로 고전 독서모임에 나가고, 온라인으로 영어 원서 독서모임을 한다. 나의 감상을 타인과 나누는 일이 나날이 편안해진다. 얼마 전부터 핸드드립을 배우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가 아닌 커피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몇 주에 걸쳐 받는다. 커피를 내리다가 장인정신으로 이건 아니야! 를 외치며 배수구에 커피를 흘려보내기도 한다. 우습지만 진지하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문을 열고 나니 ‘잘하는 일’로 가는 통로가 나왔다. 좋아하는 일을 공유했더니 공유해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은 덤으로 찾아왔다. 거창해 보이던 퍼스널 브랜딩이 조금은 친근해졌다.
’ 다이어리 레코드’라는 브랜드가 있다. 시작은 바로 SNS에서부터 였다. 다이어리에 기록을 꾸준히 이어오던 정은은 SNS에 그 기록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록 생활에 필요한 문구류를 하나씩 제작하기 시작한다. 필요에 의해 제작했던 문구들은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받아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퍼스널 브랜딩이 탄탄한 기획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니 왠지 모를 안심이 된다.
정은은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일찍 마주했다. 그리고 그 크기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불안의 덩치가 작아질 때까지 기다리며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어푸어푸>2호, 기록을 돕는 사람
불안으로 뭐라도 해보자 했던 기록은 곁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책을 리뷰하고 소개하는 짤막한 글을 써나가다 보니 나의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내가 글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소심하게 작가라는 장래희망을 적어내던 아이는 비록 플랫폼 속 작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기록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글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목적지는 어디일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꿈을 꾸게 한다. 꿈을 꾸는 삶은 아름답다.
엄마가 되면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아이 키우고 남편 챙기고 살림하고 그리고 무한반복의 일상 후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과 갱년기. 그렇게 숙명적인 길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니 푸념만 나왔다. 아이 탓 남편 탓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하곤 했다.
이제는 '나'를 잃어가는 엄마 사람에게 말한다. 아이가 아닌 '나'를 기록해 보자고. 좋아하는 일을 해시태그에 담아 보자고 말한다. 둥지가 비기 전에 꿈을 이야기하는 엄마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