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최명숙 작가의 책 <숨은 그림 찾기>가 도착했다. 출간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했는데, 입고가 지연되어 배송이 늦어지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이틀 만에 내 손에 들어왔다.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은 220쪽 정도에 아홉 개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는데, 대부분 소설이 단순한 기억, 혹은 잊을 수 없던 추억과 관련한 소설이다. 물론 그 기억은 최명숙 작가의 기억이 아닌 작품 속 화자의 기억이다. 그런 기억을 작가의 처지와 동일시하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글을 읽다 보면 혹시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의 전개가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최명숙 작가에 있어서 인생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찾기의 연속이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주 진부한 것들의 목록’과 ‘두 남자 이야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화자가 여성이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가족 배경에는 오래 전의 가부장적인 시골 가정이 많다. 시대적 배경을 상상하다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도 여성이 겪어야 했던 평범한 불평등과 불합리성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생을 통해서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해답,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계속 찾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아마도 책의 제목과 표제작의 제목이 <숨은 그림 찾기> 인지도 모른다. 물론 각각 작품마다 숨은 그림이 무엇인지는 소설의 끝에 가면 짐작이 가능해진다.
<숨은 그림 찾기>에서의 숨은 그림은 이복 오빠와 재영, 영미 오빠와 유민호라는 신입사원 그리고 남편의 존재, 그들 사이에 놓인 여자 자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숨은 그림을 찾는 과정에서는 여지없이 지난 기억들이 소환된다. 그런 기억들은 어린 시절 ‘보물찾기’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여자는 보물을 찾는 데 재주가 없었다. 항상 놓치고 지나치고 난 후에 닥치는 아쉬움, 무엇인가 한 박자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은 여자에게 계속 기억을 되살려 보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찾고 싶어 하던 숨은 그림의 실체가 자기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낼 즈음 소설은 끝난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절대 가볍지 않은 물음을 작가는 가볍게 던지고 있다.
<달빛>의 주인공은 작은엄마인지도 모른다. 전 남편의 아이를 데리고 삼촌과 살림을 차린 작은 엄마의 일생과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생은 어찌 보면 한 시대의 대표적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 삼촌이 세상을 떠난 후, 둘째 며느리에게까지 독수공방인 자기의 삶을 지울 수 없다는 할머니의 드러나지 않은 마음을 확인한 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의 숨은 그림은 작은 엄마가 수미에게 전화하는 그 순간에 실체가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삼십 년 넘게 찾았던 숨은 그림은 바로 작은 엄마 자신이었다. 이렇듯 처음 두 편의 소설만 읽어도 숨은 그림 찾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른바 소설에서의 통속적 구조를 추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독자를 뻔하지 않은 결말로 이끌지도 않는다. <아주 진부한 것들의 목록>을 읽어 보면 그렇다. 한때 사랑했다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야 했던 여인의 동생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난다는 설정부터 나중에 잘되면 사랑했던 여인을 다시 만나는 거 아냐? 하는 상상을 부른다. 물론 뻔한 이야기로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또 작가는 한 번 뒤튼다. 다시 만나기는 무슨, 만나서 어쩔 건데?라고 독자의 뒤통수를 가볍게 한 번 친다. 그리곤 헤어진 이유로 상상할 수 없는 허무한 사연을 들려준다. 그래서 독자를 실망하게 했다가 다시 그녀 대신 그녀의 동생과 인연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약간 억지스러운 전개에 작가도 민망했는지 결국 열린 결말로 끝낸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의 숨은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화자의 옛 연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동생인, 지금의 연인이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설혹 연애가 잘 진행되어 결혼한다 해도 처형과의 옛 감정을 어떻게 감추고 가족으로 살아갈지도 나는 모른다.
작중 화자는 작가를 닮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최명숙 작가와 작품 속 여자 주인공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심성을 어우르는 공통된 키워드는 아마 순진함이 아닌가 한다. 지나치리만치 소심한 모습도 보이고, 함께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서 지나치리만치 답답한 모습도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그녀들의 순진함이다. <열쇠>의 주인공이 그렇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와야지. 막무가내로 이러는 게 어딨어요?” 처음의 그 말 한마디에서 주인공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는 참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 작품마다 지극히 편한 문장 하나로 그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실마리를 던진다.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나, 마음속 ‘정우’에게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찾아야 할 숨은 그림 역시 자기 자신이다. 이 정도라면 작가가 모든 작품에서 찾고 싶어 하는 숨은 그림이 실제로는 평생 자신이 간직해 온 기억 속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은 한 번 자신의 상상에 빠지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 갇혀서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뻔히 자신의 상상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는 많은 증거와 상황을 접하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증거나 상황이 잘못된 것이라는 방증을 찾기에 골몰해진다. <유를 찾아서>의 박 교수가 그런 인물이다. “성이 바뀐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이름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 부분이 소설의 모든 내용을 정리해 주는 부분이다. 자기의 생각이 맞다는 신념에 가까운 집념을 합리화하는 단 한 문장이다. 윤 대표가 옛 연인 유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현실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윤 대표 어머니가 노트를 남겼다는 밑밥도 뿌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결국 윤 대표 어머니의 성과 이름도 바꿔버릴 생각까지 했다. 물론 박 교수의 짐작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독자가 상상하도록 놔두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여전히 기억 속 숨은 그림 찾기는 계속된다.
이어지는 두 편의 소설 <두 여자 이야기>와 <두 남자 이야기>는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이다. 작품 안에 또 다른 작품을 넣는 구조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형식이다. <두 여자 이야기>에서는 세 가지 이야기가 혼재한다. 서로 다른 두 여자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쓴 최 작가의 이야기이다. 사건의 발단은 합평회이다. 서로 작품을 써서 돌려 읽으면서 평하자고 했지만, 최 작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글을 써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점잔 떨던 문우들은 술의 힘을 빌려 최 작가 작품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그러다가 친구 영지의 한 마디에 모두 자기의 본모습을 찾고 태도를 바꾼다. 어쩌면 숨은 그림을 찾아야 하는 주인공은 최 작가의 합평 문우들인지 모른다. 최명숙 작가는, 그러고 보니 소설 속 주인공도 최 작가이다. 물론 주인공이 최명숙 작가는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각각의 소설마다 확실하게 숨은 그림의 유형을 골고루 섞어 두었다. 독자가 소설마다의 숨은 그림을 찾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남자 이야기>이다. 전통적 가부장적 가정에서 이미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가장의 자세를 고수하려는 아버지로 인해서 결혼도 파투가 난 남자의 이야기와 평생을 ‘미루기만 하는’ 삼촌의 인생을 통해 바라보는 남자의 일생에 대해 작가는 어느 작품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성 작가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성별의 심리적 묘사는 둘째로 치더라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다음 날 아침 그는 여전히 일어나 일등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아들은 며칠 동안 학교에 병가 내고 술을 퍼마시며 괴로워했다.”라는 부분에서 이 소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서 과연 그들은 자기만의 숨은 그림 찾기에 성공할 것인지? 그 역시 독자의 판단에 맡길 문제이다. 결혼이 파투가 난 대학 친구인 석의 친구이자 미루기 전문인 삼촌의 조카인 주인공의 입을 통하더라도 작가가 직접 제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합장>에는 두 할머니, 할아버지의 본처와 첩이 등장하고 당연히 부모 대의 배다른 형제들도 등장한다. 평생을 남편 빼앗긴 여자로 살아온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은 할아버지와의 합장이다. 물론 당연히 할머니는 그 징글징글한 할아버지와 죽어서라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항상 읊조리지만, 혹시 할아버지와 합장하고 싶냐는 주인공의 말에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은 아이 눈처럼 갑자기 빛나던 할머니의 눈을 보고 할머니의 본심을 알아차리게 된다. 합장에 난관도 있었지만 결국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눕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합장에 주인공과 남편의 관계를 언뜻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 없어 보이기로는 마찬가지인 두 쌍 남녀의 모습에서 뭔가 이질적이기도 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최명숙 작가의 소설을 보면 생각보다는 오래 전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솔직히 그런 면에서는 시대성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숨은 그림을 찾는 행위에 있어서는 아주 적절한 시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감성으로 처첩이 등장하고 합장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들을 흔쾌하게 이해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 작가는 이렇듯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배경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각자의 숨은 그림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
<파리가 쏘아 올린 사랑방정식>은 유쾌하다. 아마 작가는 아홉 작품의 목차를 정할 때, 첫 작품 못지않게 이 작품을 마지막 차례로 놓는 것에 대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을 것 같다. 주인공인 여자 ‘윤’과 세 명의 남자 사람 친구들 사이의 이야기에 중매쟁이로 난데없는 파리가 등장한다.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사러 마트에 가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구인 ‘진철’을 만난다. 진절머리 나게 싫어하고 싶었던 바로 그 ‘진철’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좋아하면서 말은 못 하고 공연히 심술을 부리던 철없던 시절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주인공을 마음에 두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옛 감정을 덮는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아주 유쾌하지만은 않은 앞의 소설들에 비해서 비교적 훈훈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숨겨진 숨은 그림은 누구의 무엇이었을까? 그 부분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끝없이 해답을 찾는 여정인지 모른다. 해답이라고 해서 특별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기는커녕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명숙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해답을 찾는, 숨은 그림을 찾는 여정이야말로 작가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아마도 작가는 숨은 그림 조각 중 하나를 찾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짊어진 짐 하나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쉬었다가 다시 출발함 직하다. 작가의 남은 인생도 끊임없는 그림 조각을 찾는 여정이겠지만 말이다.
최명숙 작가의 끊임없는 정진을 진심으로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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