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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로운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by 정이흔

작년 이맘쯤인가? 브런치 작가 이은희 시인님이 올린 글이 하나 있었다. 인천대공원 옆 만의골 은행나무(장수동 은행나무)를 다녀왔다는 글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 번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던 곳이었기에, 아내와 딸과 함께 찾았다가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잎이 다 떨어져 가는 안타까운 모습만 보고 발을 돌렸던 일이 있었다. 내년에는 은행잎이 만개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찾으리라는 다짐만 한 채 말이다.


오늘 10개월 정도 운행하던 용달화물 자동차를 화물운송 허가와 함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였다. 시작은 생의 마지막 직업으로 삼고 오래오래 하려고 마음먹은 직업인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계획보다 너무 빨리 정리하는 바람에 금전적으로 예기치 못한 손실도 컸지만, 그래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정리했다. 어차피 정리해야 했지만 정작 차를 양수자에게 넘기고 나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눈치 빠른 아내는 기분 전환 삼아 어디든 다녀오자고 하더니, 덜컥 동해안 모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드라이브 삼아 갔다가 저녁에는 싱싱한 회에 소주라도 한잔 마시면서 허전한 기분을 달래고 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갈 때는 양평 용문사에 들러 은행나무도 보고 가자고 했고, 나는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멀쩡한 직업을 놓고 이제 다시는 일을 손에 잡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순간 기분이 야릇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 시작될 일상에서는 그렇게 둘이 여유 있게 놀러 다닐 기회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 같았기에 이번 여행이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낮에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불쑥 만의골 은행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 다음 주 용문사에 가면, 어쩌면 작년처럼 은행잎이 죄다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았다. 그래서 집에 오던 길에 차를 만의골로 돌렸다.


은행나무 가까이 도착하니 다행스럽게 아직 은행잎이 나무에 남아 있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자칫 다음 주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면 되겠거니 했다가는 작년 꼴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은행나무 둘레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 찍기에 바빴고, 주위의 카페나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만원이었다. 모두 늦가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사진을 몇 장 찍고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서 따듯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나왔다. 대공원 앞산 마루에 걸터앉은 오후의 해가 은행잎을 흔들어 대고 있었고, 햇빛에 드러난 가지 반대쪽 은행잎은 서서히 노란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마 다음 주나, 혹은 작년처럼 비라도 흠뻑 맞으면 금방이라도 낙엽 되어 다 떨어질 것만 같다고 생각하다 보니 오늘 다녀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이제 보름 후면 아들 가족이 입국한다. 원래 아들은 내년 여름이 학위 수여식인데, 며느리와 손자를 먼저 입국시키기 위해 함께 들어온다. 내년이면 두 돌이 되는 손자가 점점 입이 트이려는 것을 보고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며느리와 손자를 두고 아들이 다시 출국하면 그날부터 나와 아내는 육아 전쟁에 투입되어야 한다. 손자 양육도 양육이지만, 한국어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며느리가 한국 사회에 조금이라도 일찍 적응하게 하려면 아내에게만 집안일을 맡기고 내가 계속 밖에서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들네가 입국하기 전에 부랴부랴 영업용 면허를 정리한 것이다. 물론 내가 일을 그만둠으로써 발생하게 될 가계 수입의 결손은 아들 내외가 보전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솔직히 나로서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며느리와 손자의 이중 양육(?)으로 인해 몸은 조금 더 피곤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올해 11월은 일을 떠나보내고, 사람을 맞아들이는 달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여러 번의 변곡점을 거쳤다면, 이번이 최대의 전환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와 아내는 아이들의 아빠와 엄마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새로 들어오는 식구인 며느리에게는 시부모로, 그리고 손자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서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걱정도 되긴 하지만, 앞으로의 일상에 기대감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부모님의 자식에서 아이들의 부모로, 그리고 다시 손자들의 조부모로 세 번째 인생을 시작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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