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겨울 아침이면

by 정이흔

초겨울 아침이면


아침 햇빛이 거실 창밖 난간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눈가에 꽂힌다 눈 아래 보이는 앞 건물 옥상 너머 피어오르는 보일러 연기는 마치 이십 대 내가 피워대던 담배 연기를 닮았다 곧게 올라 퍼지다가도 입으로 후 불면 흩어지던 연기처럼 잠깐씩 불어대는 바람결에 실려 허공 어디로 인가 흩어져 버리고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얇게 내려앉은 서릿발에 비쳐 반짝이는 지붕은 영락없는 겨울왕국 영화 속 눈 덮인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지붕들 넘어 들판 안개는 사잇길을 달리는 자동차 전조등에 녹아내리듯 옅어지며 이제 막 겨울에 접어든 황량한 논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여기저기 말라서 갈라진 지면은 겨울만 되면 푸석거리는 내 피부를 보는 듯하다 아침 해가 조금씩 높게 떠오르며 얼굴의 홍조를 걷어낼 즈음이면 그제야 이불속 아내의 꼼지락거리는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아침은 벌써 내 앞에 와 있었던 거다 다른 가족이 깨지 않도록 살며시 고양이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정수기의 시원한 냉수가 마지막 남은 아침잠을 내 눈 밖으로 몰아낸다 하루의 시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만하면 겨울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