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매일 진다. 그런데 단 하루도 같은 노을빛은 없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노을빛은다채롭다.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여름이다. 뜨거운 용암 같은 태양이 바다 수평선을 넘어가면 한여름의 노을빛은 바닷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나는 해 질 녘의 노을을 좋아한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그때.존경받던 삶을 포기하고, 힘겹게 선택한 새로운 삶을 가족마저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나는 몹시 외롭고 슬펐다. 그때 내 마음을 말없이 위로해 준 건 노을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서멍하니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온해진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당에 앉아 은은한 조명 아래서 성체조배를 하는 기분이 든다.
노을 인연은 제주로 이주하면서 조금씩 깊어졌다.제주로 이주할 때 의도치 않았는데 노을 명소로 유명한 동네에 집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척 신기한 일이다. 이런 게 섭리가 아닐까?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 일을 쉬는 날엔 거의 매일 동네 바닷가로 노을마중을 나갔다. 근심걱정이 있을 때, 속상하거나 슬플 때,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면 근심걱정도 해와 함께 저물었다. 지금은 노을과 속 깊은 친구사이가 되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배가 고픈 것처럼 일이 바빠서 노을을 보지 못한 날에는 노을 허기가 진다. 그런 날엔 핸드폰 사진첩에 찍어 둔 노을 사진을 꺼내 본다. 마음에 노을이 부푼다.
노을이 특별히 예쁜 날에는 문득 생각나는 사람과 함께 노을을 보고픈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다. 그 사진들을 보고 누군가는 내게 노을 고문관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