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청명한가을날 하추자 올레 18-2 코스를 걸었다.추자면사무소 종점에서부터 역방향으로걷다가 힘들면 중간 스탬프만 찍고 추자항으로 돌아오리라 마음먹고 느긋하게 걸었다.
아침 햇살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찰랑찰랑 춤을 춘다. 바닷길로 아련한 윤슬의 빛을 따라 여유롭게 걸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착각이었을까? 추자교를 지나자 연리목을 시작으로 금파골 산길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내 앞에 고난이도의 가파른 산길이 나오리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산 위 전망대에서 바다의 윤슬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금파골을 지나 묵리슈퍼까지는 힘들어도 걸을만했다. 묵리 마을을 지나 바닷길을 걷다가 올레 화살표를 지나쳤다. 화살표를 놓친 곳으로 되돌아오니 화살표는 또 산길을 가리켰다. 꼬불꼬불한 산길에는 올레 리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올레 리본이 없는 갈림길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내가 선택한 길은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닌 듯한 길이다. 한 참을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올레리본이 보여서 반가웠다. 내 선택이 옳았구나!
산길이 끝나고 신양2리 마을을 지나자 대왕산 입구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오르막길을 걸어 대왕산 중간 스탬프를 찍고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보인다. 설마 저 길을 걷는 건 아니겠지? 하며 걸었다. 올레 화살표가 설마 했던 그 길을 가리킨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처음으로 올레 화살표가 야속했다.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대왕산 황금길을 넘어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아찔하다.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로 난 오솔길을 지나자 다시 오르막 계단이 나타났다. 오 마이갓!! 여기가 졸복산이구나. 다시 계단을 오르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현기증이 나서 계단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더 가야 산길이 끝나는지 물어볼 사람도 나타나지 않아 눈앞이 캄캄했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앞을 바라보니 잔잔한 바다 위에 작은 섬과 은빛의 윤슬이 곱고 환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고마운 빛의 기운으로 다시 일어나 온전히 걸을 수 있었다.
한 발짝도 더 걸을 수 없어 막막하던 그 순간 나의 길동무가 되고, 온전한 휴식이 되어준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