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날 때를 알 수 없으니
아버지는 신체적으로 많이 야위고 쇠약해졌지만 조금씩 나아져 갔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생명이 움트듯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담당 주치의는 조심스럽게 퇴원 이야기를 꺼내며 옮 겨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봄꽃이 피어나듯 기쁜 소식이었다.
아버지 병세가 좋아졌다는 의사의 말에 마음이 괜히 들떴다. 한편으로는 요양병원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다시 요양시설로 가기가 겁났다. 그런데다 경험 많은 간병인이 될 수 있는 한 이곳 병원에서 버텨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 이에 힘을 얻어 굳이 서둘러서 옮겨갈 병원을 알아보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전문의가 옮겨갈 병원이 정해졌는지 넌지시 물었지만 확답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렇다고 입원 기간을 계속 연장하며 눌러앉을 수는 없을 테니 알아보기는 해야 했다. 치매와 호흡기 내과 질환 위주로 치료하는 병원에 먼저 전화로 상담을 했다. 그런 다음 네다섯 군데 병원을 선정하고 직접 가서 시설이나 의료 서비스 질 등을 비교하며 살펴봤다. 아버지의 증상으로는 입원 자체가 안 된다는 병원도 있었다. 돌보기 까다로운 중환자는 입원이 안 될 수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요양병원 중에서는 시설이 좋은데 너무 멀고, 기숙사를 개 조한 시설이라 걸리고, 괜찮은데 1인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1인실에 간병인을 두는 2차 의료기관 수준의 요양병원이 있긴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요양병원보다는 병원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번 아버지가 입원했던 호흡기 내과에 입원 여부를 물었다. 일단 치료가 어느 정도 된 상태라서 입원은 어렵다고 했다. 어디로 정할지 난감했다.
그렇게 불안해하며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보호자에게서 옮겨갈 병원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자 병원은 어김없이 퇴원을 재촉해 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가 버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 모양이었다. 지난번처럼 퇴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겪었던 온갖 고초를 두 번 다시 당하고 싶지 않았다. 울분이 되살아나 잠시 고민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이전에 쫓겨나듯 퇴원했던 병원 신경과에 접수해서 입원 여부를 다시 문의했다.
의사에게 아버지 병세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서러움과 슬픔이 복받쳤다. 갑자기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범벅이 되었다.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에 목이 메어 간신히 말 을 이어갔다. 보호자가 울고불고하는 불편한 상황에 단련이 된 듯 한참을 묵묵히 듣던 의사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대뜸 지난번처럼 퇴원을 막무가내로 늦추면 안 된다 는 말만 툭 내뱉었다. 그리고는 사정이 딱하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마지못해서였는지 입원 확인서에 사인을 해주었다. 지난 과거야 어쨌든 지금 당장 입원할 병원이 마땅치 않아서 발 동동 구르고 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가서 퇴원 날짜만 조절하면 되었다. 간병인한테도 옮겨갈 병원에서 아버지를 계속 맡아 달라고 부탁할 요량으로 마음이 홀가분해져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때는 먹구름처럼 드리워진 앞날에 어두운 장막이 걷힌 듯했다. 아버지의 의료 기록도 있고 병력을 아는 만큼 치료에 대한 기대가 웬만큼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나마 최적의 병원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나의 간절함이 반영된 희망 사항일 뿐 이었다. 오히려 의료진들이 색안경을 끼고 환자를 대할 수도 있 음을 뒤늦게 알았다. 병동에서 돌보기 가장 까다로운 환자라는 낙인을 여전히 피할 수 없었다. 어둠 속의 빛이 되리라 여겼던 병원에서 아버지의 인생이 마감될 것이라고 어찌 알았겠는가.
나이 들어 아프고 병든 몸의 고통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 아 버지에게는 요양병원과 응급실, 중환자실을 오가며 살아 내야 하는 양자택일 삶뿐이었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 학살이다. 기쁨 없는 병자의 격분과 절망의 상태”일 뿐이라는 말이 절로 와 닿았다. 아버지를 지탱하는 생명의 끈이 언제 툭 끊어질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죽음이라는 그림자로 어른거렸 다. 아버지는 어쩌면 언제든 머나먼 곳으로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는 새처럼 몸을 비우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