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Dec 11. 2022

샐러드 찍먹과 디지털 디톡스의 상관관계

우리는 덜어냄이 필요한 걸 지도 몰라


디톡스가 필요해. 




유독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곳저곳으로 이동이 많았던 한 주였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자연히 평소보다 SNS도 많이 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린 사진은 왜 자꾸 들여다보면서 보게 되는 건지. 인스타그램 중독을 방지하려 걸어둔 다운타임 기능도 영 힘을 못 썼다. 깊은 생각을 하기 싫을 때는 전혀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SNS 속을 유영하며 떠도는 게 제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 행위는 머리를 잠시 식혀주는 데는 탁월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라는 걸 자각할 때쯤 묘한 스트레스를 줘서 또다시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다. 이것이 제일 문제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건 손가락 한 마디를 까딱하면 충분하지만 그 까딱임이 쉽지 않은 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길을 찾느라 SNS를 하느라 연략을 하느라, 잦았던 사용에 열을 뿜으며 꺼져버린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이 손바닥만 한 물체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켜서 남자 친구에게만 짧게 연락을 남겼다. 나 잠깐 디톡스를 가져야겠어. 뜬금없지만 당차게 선언하고 다시 핸드폰을 껐다.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대충 때울까 했는데 냉장고 1층에서 며칠 방치된 야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지, 이번 주에 돌아다니느라 야채를 좀 안 먹긴 했어. 먹기 전인데도 벌써 배고픈 느낌이지만 냉장고 가장 밑 칸에서 뒹굴고 있는 야채들을 꺼냈다. 오늘은 웬일인지 샐러드에 소스를 뿌리는 게 영 내키지가 않았다. 야채를 썰다가 주워 먹은 생당근이 너무 달아서 그랬던가. 소스를 만들어두고 위에 뿌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옆에 두고 찍어먹는 방식을 택했다. 난생처음 샐러드 찍먹이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동안 소스에 버무려져서 묻혔던 야채들의 식감과 고유의 신선한 맛이 몇 배는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 소스만 없을 뿐인데 수없이 먹어봤던 양상추가 꽤 낯설게 느껴졌다. 양상추가 원래 이런 맛이었구나.



그리고 동시에 핸드폰을 끄고 저녁을 먹으니 무언가 봐야 할 게, 귀에 들려야 할 게 없었다.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저녁 식사 시간. 허전하다. 시각과 청각은 제 각기 할 일을 잃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뭘 보고 뭘 들어야 하지. 바쁘게 쫓을만한 게 없었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삼삼하지만 특유의 단 맛이 나는 생 채소들이었다. 분명 허전한데 이 또한 묘하게 상쾌했다. 아삭. 아삭. 자극적일 게 없는 고요한 식탁에서 희한하게도 진정한 쉼을 느꼈다. 바쁘게 오늘의 뉴스들을 훑는 대신에 거실을 지나다니는 가족들과 간간히 말을 섞었다. 시각과 청각이 열일을 해야 했던 유튜브 영상 대신에 일주일 동안 영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을 뒤적거렸다. 



싱싱한 생채소를 먹다가 가끔 감칠맛이 필요할 때 소스에 살짝 찍었다. 음, 맛있다. 이렇게 샐러드를 재료 단위로 먹어본 적이 있었나. 한 번에 부어버리고 소스와 버무려 먹기 바빴는데. 그동안 믿고 있던 샐러드의 맛에는 아마 소스의 입김이 꽤 셌던 것 같기도 하다. 소스의 입김이 사라진  샐러드 그리고 곁들여진 간간한 대화와 설렁설렁 읽는 책은 그리 재미난 내용이 아닌데도 잘도 웃음이 났다. 평소에는 잘 묻지 않았던 가족들의 회사 직원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갑자기 질문 폭격기가 되었다. 이제야 알게 된 이야기에 눈이 벙긋벙긋 떠졌다.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의식조차 못했던 자극을 덜어내니 낯선 상쾌함과 편안함을 얻었다. 분명 눈과 귀는 허전한데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 생소한 쉼의 경험이 핸드폰을 끄고 샐러드에 소스를 분리한 지 고작 1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된 디톡스다. 무언가 사라지면 남겨진 것들에 눈이 간다. 남은 것들과 진지한 대면을 한다. 허전함은 여유를 준다. 여유는 주변을 보게 한다. 생각보다 주변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달달한 생양상추의 맛도 있고 몰랐던 가족들의 직원 이야기도 있다. 진정한 쉼이다. 아마 우리에게는 조금의 덜어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라면 오늘 하루 무엇을 덜어내고 싶은가? 장담컨대 아마 꽤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조급함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