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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Oct 01. 2023

나르시시즘에 갇힌 글쓰기를 하고 있지 않나요?

'나'로 가득한 글의 주어를 바꿀 때 변하는 것

언젠가 글을 여러 편 쓰다가 멈칫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순간적으로 드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때가 그렇다. 분명 매번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비스무리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왜 또 결론이 같을까? 비슷한 글이 또 생겼다. 내가 전할 수 있는 메세지는 이게 끝인걸까? 진부해, 진부하다. 나도 재미없는 글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줄리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내 글이 무료하다고 인식하게 되는 순간, 더는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진다. 겨우 완성한 문장들에 회의적인 검열이 들어간다. 분명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장 어려운 것이 글쓰기가 되어버린다.


작가이자 헤엄출판사 대표, 글쓰기 교사인 이슬아


그런 복잡한 의문을 가지고 겨우 글 한 편을 완성한 날이 있었다. 우연히 이슬아 작가의 강연 영상을 보게 됐다. 이슬아 작가는 하루에 한 편씩 메일로 글을 보내는 유료 구독 서비스로 알려진 '일간 이슬아'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1인 출판사인 헤엄 출판사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사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강연에서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 중 내 머리를 강타한 문장이 있었다. "나르시스즘에 갇힌 글쓰기는 답답하고 무척 좁은 세계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주어가 '나'뿐인 세계입니다."


그 때 알았다. 내 글을 스스로 진부하다고 여겼던 이유는 타인은 존재없이 '나'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글에 나의 경험과 깨달은 것들, 내면의 변화에 대한 일련의 고백들을 담았다. 그 안에 등장했던 다른 이들도 있었지만 존재감은 매우 작았다. 작가인 내가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내가 정해놓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역할로 여겼다. 온통 주어가 '나'인 글쓰기였기에 새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이슬아 작가는 말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글에서 주어를 '나'에서 바꿔가며 써보도록 지도한다. '나는'에서 '너는'으로, '내 친구는'으로, '돼지는'으로, '이미 죽고 없는 그는'으로. 그렇게 주어를 늘려나갈 때 나로 가득찼던 세상에 조금의 틈이 생긴다. 나 이외에 다른 등장인물이 글에 등장하게 된다. 비로소 다른 등장인물에게 캐릭터와 서사가 생기고 그들의 시선이 담긴 풍부한 글이 쓰여지는 것이다.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 자체를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글을 쓰다보면, 특히 나 외에 다른 주어를 늘려나가기 위해서는 무심히 보던 것을 유심히 보며 기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삶을 궁금해하고 '나'로 살아갈 때는 지나칠 것들을 공감해보고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다. 기꺼이 나로 가득한 세계에 자리를 내어준다. 부지런히 관찰하고 복기하며 또 부지런히 글로 옮기는 일, 그것은 아주 정성스러운 사랑과 닮아있다. 부지런히 글을 쓰다보면 사랑할 것들이 더 많아질테다. 이슬아 작가의 책<부지런한 사랑>에 담긴 글귀이다.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개성있는 나의 글을 쓸 때에는 내 안에 존재하는 티끌의 생각과 감정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끌어어모으고 또 쥐어짜다 보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금세 바닥이 난다. 그럴 때 의식적으로 나를 향한 글쓰기에서 잠시 벗어나보는 것이다.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고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되돌아보고 흘러갔던 대화들을 곱씹어보면서 말이다. 내 안에 것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나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아주 부지런히 글을 써봐야겠다. 내 안에 사랑이 담길 그릇을 부지런히 빚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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