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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Oct 21. 2022

‘점약’ 있으세요?

행복의 열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8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서울에서 일하게 된 딸은 혼자 점심 먹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점심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점심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특별히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할 말이 있는 경우는 미리 약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나라 직장 문화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서로 ‘점심 먹으러 가요.’라고 물어주는 것이 예의이고,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사람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이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사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나 직장 등 조직생활을 마감한 후에도 왜 단체에 소속되거나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좋아할까?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 커뮤니티 센터에 등록을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종교단체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저변에는 어딘 가에 소속되어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극복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무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하고 번거로운 점도 많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는 것이 편하다는 딸과 나의 대화이다.


나 : 직장동료들과 같이 점심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왜 혼자 먹는 것이 좋은 거야? 

딸 : 나는 점심으로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는 메뉴에 맞춰야 되잖아요. 주로 ‘오늘은 뭐 먹을까?’ 물어보고 ‘칼국수’, 혹은 ‘추어탕’ 등 이런 식으로 메뉴 얘기가 오고 간 후 그중에서 적당히 하나를 골라서 점심을 먹게 돼요. 만약 제가 별로 먹고 싶지 않거나 잘 못 먹는 메뉴로 결정돼도 같이 가서 먹어야 하니까 불편한 거죠. 

나 : 음, 그런 면이 있을 수 있겠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주로 일 얘기만 하니까, 같이 점심 먹으며 이런저런 가벼운 일상적인 얘기도 나눌 수 있고 좋은 면도 있을텐데.

딸 : 사무실에서 일 얘기 많이 하니까 점심시간만큼은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죠. 만약 특별히 사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미리 점심 약속을 하면 되는데, 갑자기 ‘점약 있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은 좀 당황스럽죠.

 (점약 : ‘점심 약속’의 축약어. 딸은 처음에 이 말 뜻을 몰라 눈에 넣는 ‘점안약’을 말하는 줄 알고 ‘점약’있다고 답했는데도 동료가 달라는 말을 안 해서 직접 ‘점안약’을 갖다 줬다는…) 


 딸과 나와의 대화에서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은 세대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서구인과 집단주의적인 성향의 한국인(사회)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요즈음은 두 경우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사회에 비해 한국사회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개인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집단에서 이탈되었다는 불안감과 소외감,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집단 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한 점도 있다. 나는 오늘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점심을 먹거나 아예 안 먹고 싶은데, 직장동료가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하면 같이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을 위해서, 혹은 그럼으로써 형성되는 관계를 위해서 내가 먹고 싶은 점심 메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한국인(사회)의 정서이다. 이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존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무리 속에서 주인공이 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한국인(사회)은 무리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살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주목받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김 부장은 딸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기분 좋게 동료들에게 한턱 쏘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회식 자리에 나타난 박 부장이 자기 아들도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박 부장의 아들이 김 부장의 딸보다 더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날 회식의 주인공으로서 한턱을 쏘고 있던 김 부장의 머리 위에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박 부장에게로 옮겨갔다. 회식의 주인공이 김 부장에서 박 부장으로 바뀐 것이다. 한 턱 쏘는 사람은 김 부장인데 주인공은 박 부장이 된 상황. 이때 김 부장이 느끼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허태균 교수 강의 중 일부 내용 변용)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WFNKrYyaIP5386cNLBQKcWjI9LESwff3


 누구나 이런 상황이라면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엄마들이 학부모 모임에 다녀오는 날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는데 유난히 신경이 예민한 엄마,  그 이유는 그날 학부모 모임에서 자신의 아이가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한 남편이 전 직장 동료 모임에 다녀온 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면, 분명 그 모임에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동료, 즉 그 모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 누군가 때문일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fuding07/221124474811

 스스로 존재감을 인정하고 주인공이 되는 행복

 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며, 나의 존재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내 삶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존재감을 인정하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자신과의 관계 맺기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와의 관계 맺기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 과정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가 되려면 그 사람을 자주 만나 대화를 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와의 관계 맺기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관계 맺기를 잘하려면 자주 나와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등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스스로 존재감을 인정하고 나를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게 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이 되게 하고, 빛나게 해 주는 행복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주인공이 되게 하여 빛나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순간 내 안에서 ‘반짝’하고 환하게 불이 켜지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꼈다. 나이가 들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응원해 주어 그 사람이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삶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를 행동으로 옮겨 보고 싶다.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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