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프란츠 카프카를 예로 들자면, 그는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작품의 이미지로 보면 그야말로 예민하고 육체적으로 허약한 느낌이 들지만, 의외로 몸을 만드는데 진지하게 신경을 썼던 모양입니다. 철저하게 채식을 하고 여름이면 몰다우강에서 하루 1마일(1600미터)씩 수영을 하고 날마다 시간을 들여 체조를 했다고 합니다. 카프카가 진지한 얼굴로 체조에 열중하는 모습, 잠깐 좀 구경해 보고 싶지요?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01쪽)
30대 중반 허리가 아프면서 욕심을 조금 비웠고 감사함을 배웠다. 이때부터 걷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교안을 작성한다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서너 시간씩 컴퓨터 작업을 했더니 허리가 망가졌다. 허리가 아프니까 단 10분을 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첫째가 9살, 둘째가 6살이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고 여자라 제 할 일을 찾아서 하는데, 둘째는 아직 엄마 손이 많이 가야 할 나이였다. 아이들에게 독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째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어 주고 싶어도 10분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원 침상에 열흘을 누워 있었으니 근력은 더 약해져서 앉아 있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운동을 통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근력을 단련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고 시작이라는 단순한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겁이 나서 덜컥 입원부터 했던 것이다. 그 후 책을 읽으며 허리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중요함을 알고, 걷기와 근력 운동을 했더니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허리 상태가 좋아졌고, 아이에게 책도 제대로 읽어줄 수 있게 되자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내 몸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래서 승진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돌이켜보면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 가르치는 일과 자녀교육만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꼭 해야 할 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꾸준히 걷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30대 후반 무릎 연골 수술을 하며 ‘이만하면 다행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운동이 답이었다.
30대 후반 무릎 연골이 심하게 파열됐다. 심하게 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파열되기 쉬운 연골 구조를 갖고 태어나서 그렇다고 했다. 그 전에도 약간 파열된 상태였는데 모르고 지내다가, 허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추나요법을 받던 중 무릎을 잘못 비틀어서 다시 크게 파열이 된 것이었다. MRI를 찍어보니 수술이 불가피한 상태였다. 상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나,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수술하고 재활 치료하면 되겠지. 이만하면 다행이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허리가 아파 마음고생을 크게 한 것이 예방주사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술을 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등산도, 조깅도 하지 말라며 연골 이식 수술을 권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 분야의 다른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듣기 위해 수소문해서 찾아간 선생님께서는 ‘현재 통증이 없으면 수술도 하지 말고, 꾸준히 가벼운 운동은 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나마 힘을 얻었다. 그때 내 마음은 무릎이 오십까지만 잘 버티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오십이 그렇게 빨리 올 줄,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요즘도 가끔 걸을 때 무릎이 아프면 ‘이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못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더럭 겁이 난다. 그러면 나는 또 ‘하루가 다르게 의학이 발달하고 있으니 내 무릎을 위한 좋은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그때까지 운동을 꾸준히 하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내 무릎이다.
40대 후반, 시력이 나빠지면서 돋보기를 써야 했다.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느 날 주관식 채점을 하고 있는데 답안지의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 글씨체가 깔끔하지 않은지라 아이들을 원망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젊은 선생님께 답안지를 한 번 봐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무 문제없이 척척 읽어냈다. 아이들 글씨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시력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돋보기를 맞췄다.
놀라운 것은 시력이 나빠지니까 지능도 쇠퇴해졌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머릿속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뇌의 기능이 자꾸 퇴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 게을러지게 되고, 그래서 더 퇴보하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우리의 생각이 언어로 표현될 때 더 명료해지듯, 우리의 뇌도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눈가의 주름살이나 피부의 잡티도 잘 안 보이고, 집안의 먼지도 눈에 띄지 않으니 청소도 자주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말로 위안해 보려 해도 시력 저하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은 컸다. 자신이 노화하고 있다는 상실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다 하는 수 없이 나이 들고 있음을 받이들이게 된다. 그리고 내 몸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아껴주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눈은 덜 쓰고 먹거리는 더 신경 써야 하는데, 제대로 실천을 안 하고 있다. 읽고 쓰는 일도 줄여야 한는데... 애쓰고 있는 내 몸에게 미안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습관처럼 해왔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는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 유산소 운동은 비범한 창조력을 발휘하기 쉬워지게 하고, 좀 더 복잡한 사고를 하고 대담한 발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입니다. (…) 달리기는 나에게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83~184쪽)
몸의 정직한 느낌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신이든 두뇌든 그건 결국 똑같이 우리 육체의 일부이다. 무엇인가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인데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이다. 의지를 강하게 함과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한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하는 것은 곧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진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비움과 감사를 배우고, 두려움에서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정신과 육체는 한 몸이어서 몸이 병들면 두뇌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잘 보살펴야 정신도 함께 오래 건강할 수 있다. 내 몸이 곧 나의 능력임을 나이들면서 더욱 실감한다. 각자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체력 단련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내 몸 어느 한 곳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