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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Apr 29. 2023

다시 만난 제주

 제주 여행 둘째 날, 오후에 비가 온다는 반갑지 않은 예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다행히 아직 비는 오지 않는다. 도중에 비가 오더라도 부담이 덜 되는 비자림에 가기로 일정을 정했다.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 물기를 가득 품은 화산섬 제주의 땅은 더욱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봄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는 산의 초록 나뭇잎과 잿빛 나무줄기, 그리고 검붉은 땅이 아름답다.

제주의 숲

 비자림 입구에 접어드니 바람이 잠잠하다. 아침에 섭지코지에 갔을 때는 도저히 바람 때문에 걸을 수가 없어서 입구에서 포기하고 비자림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거짓말같이 바람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주변의 오름과 울창한 숲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거센 바람, 바람을 막아주는 오름과 숲, 자연의 힘이 놀랍다. 


 가까운 거리에서 숲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려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비자림에 서너 차례 왔지만 해설사와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된다.


 제주 화산송이

 “비자림 길이 왜 붉은지 아세요? 원래 땅 색깔이 붉어서가 아니라 길에 화산이 분출할 때 나온 붉은 화산송이를 뿌려 놓았는데 사람들이 이 화산송이를 밟아 깨지면서 땅 색깔이 붉게 된 것이에요. 제주 오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산송이는 화산이 폭발할 때 만들어진 붉은색을 띤 세라믹이에요. 이 화산송이는 살균, 항균은 물론이고 원적외선과 음이온을 방출해요. 또한 약알카리성 천연 미네랄 성분으로 구성돼 있어서 참나무 숯과 황토의 기능을 모두 갖춘 제주의 보물이에요. 그래서 화장품이나 건축자재, 탈취제, 방향제, 정수기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해설사의 목소리에 제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제주의 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발효가 잘 된 빵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크고 작은 화산송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제주도는 이 화산송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도 밖으로 반출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 화산송이 

 물이 귀한 제주 

 제주 삼다수는 다른 생수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데 제주에 물이 귀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화산섬인 제주에서는 비가 오면 곧바로 물이 땅에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경사가 있는 집에 물부주를 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귀양을 온 양반이 물을 등에 지고 허리를 구부려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 제주 여인들을 보고 그 모습이 흉하다고 하며 머리에 이고 가지 않는 그들의 무지를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이 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물동이를 이고 걷다 보면 제주도의 강한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잃거나 길에 널린 화산석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귀한 물을 쏟지 않기 위해서 물을 등에 지고 다녔던 것이다. 물이 귀한 제주 사람들이 터득한 생존방식을 귀양 온 그 양반이 알 리 없어서 한 무식한 말이었던 것이다.

물허벅을 등에 진 제주 여인

 비자나무의 나이테 

 나무의 나이테는 보통 1년에 하나씩 생기는데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는 계절별로 나무의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봄이나 초여름에는 빠른 속도로 쑥쑥 자라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자라난 부분은 색이 옅고 부드러운 재질이고, 늦여름이나 가을부터는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색이 짙고 단단한 재질이 되며, 겨울에는 나이테가 거의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나이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절의 변화 때문에 나이테가 생기므로 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나이테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계절의 차이가 거의 없는 열대 지방에서는 나타나는 정도가 덜하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자나무의 나이테

 생존환경이 열악한 땅에서 자란 제주 비자나무의 나이테는 일 년에 겨우 2mm씩 커진다고 한다. 화산섬인 제주는 땅속 50센티미터 깊이에서부터는 거의 암반이어서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나이테의 크기도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많지 않다고 한다. 

암반에 뿌리를 내린 제주 나무들

 줄기처럼 자란 뿌리, 제주 나무의 생명력

 이와 같은 열악한 상황에서 나무들은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고 나름대로 성장하며 생존해 가고 있다. 나무들은 암반으로 된 토양 때문에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서 옆으로 뿌리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줄기를 분화시키고 가지를 늘려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뿌리의 불안정을 보완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땅 위로 드러난 뿌리가 거의 줄기처럼 굵고 튼실하다는 점이다. 생존하기 위해 뿌리를 줄기처럼 키워내서 얕은 대지와 그 밑의 암반까지 부여잡고 있는 나무들,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다. 숲이 울창해서 한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비자림에 있는 나무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새로운 제주의 모습이다.

줄기처럼  굵게 자란 뿌리

  삼십 대 후반부터 허리와 무릎이 약해진 나는 그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다. 치료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 몸의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한 척추를 보완하기 위해 등근육과 복근을 강화해야 하고, 닳은 무릎 연골을 보완하기 위해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제 몸을 지탱하기 위해 튼실하게 뿌리를 키워낸 비자림의 나무들을 보며 몸과 영혼의 근육을 생각한다. 꾸준한 운동과 독서, 글쓰기,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 열악한 토양에서 강인한 뿌리를 키우고 있는 제주 나무들에서 삶을 배운다. 

 관광지로만 대했던 제주가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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