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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Aug 01. 2023

숀 ②

꿈의 학교 하랑 마지막 EP

“….ㅇ”



바닥이 젖은 화장실 바닥에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파문을 일으키듯, 소리의 파문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옵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소리의 울림에 소년은 가벼운 메스꺼움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 빠..ㅇ..”



무언가 작고, 가벼운 생명체가 다리부근을 잡고 흔드는 게 느껴졌습니다. 고양인가…?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흐릿해져 있던 시야를 바로 잡았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시야에 살짝 당황하였으나 소년은 이내 숀으로 꿈을 꾸었을 때를 생각하며 휘청이는 다리를 다잡았습니다. 그러자 다리에 꼬옥 붙어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머리를 흔들면서 마치 고양이처럼, 다리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 부비적 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소년은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칼이 물결을 치며 지나갑니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 듯 눈을 살짝 내리뜬 채로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빠..!”



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빠라고 불릴 액면가는 아닌데.. 소년은 살며시 떠오르는 우울감을 느끼며 습관처럼 오른쪽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화면에 비친 충격적인 모습에 휴대폰은 그의 손을 벗어나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에잇.. 덜.. 렁이!”



떨어진 휴대폰을 향해 도도도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소년은 그제야, 그 아이가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 기?”



아장아장 휴대폰을 들고 걸어오는 아이의 모습에는 어릴 적 소년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었습니다. 저 아이는 ‘어린 시절의 소년’. 그리고…



꺼져있는 휴대폰의 검은 화면에 얼굴을 비춰보았습니다. 약간은 곰처럼 생긴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의 얼굴. 전체적인 인상은 다르지만, 그 얼굴을 꿈엔들 잊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



소리의 파문이 계속해서 퍼져나갑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어지러움증을 호소합니다. 마음이 끊임없이 웅성거리며 울컥울컥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소년은 휴대폰 액정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액정화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우… 러?”

아이가 걱정스러운 듯 그를 올려다봅니다. 



소년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굳은살, 그리고 약간의 주름살이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표면을 대신 이야기 해줍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훔치면서 소년은, 아버지의 몸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애써 잊고 있었던 추억의 둑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와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는 화려한 불빛에 휩싸인 회전목마를 향해 짧은 다리를 빠르게 놀리며, 오도도 뛰어갔습니다. 



“와아~”



작게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의 등을 보면서 소년은 말했습니다. 



“천천히 가렴. 뛰지 말고! 넘어질라..”



소년의 오랜 기억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도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았거든요.



아이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소년은 문득 느껴지는 현기증에 다리를 휘청거렸습니다. 회전목마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풍경이 소용돌이치며 회전을 시작합니다. 일그러지는 풍경의 조각들에 당황하던 찰나, 장면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엉덩이 쪽에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을 깨달았을 땐 소년은 이미 익숙한 방 안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백 권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나만의 작은 도서관. 보는 것만으로도 까끌까끌한 햇빛의 감촉이 느껴지는 이불. 그리고 그 이불을 반쯤 뒤집어쓴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년을 올려다보는…


 ‘나’.



“아버지. 오늘은 무슨 책이에요~?”



어느새 성장한 아이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면서, 아버지가 펼쳐든 책의 내용이 짐짓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 표지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년은 마음속에 촛불이 켜진 듯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곧 잘 말을 할 수 있게 된 아이는 재잘재잘 귀엽게 이야기를 하며 소년의 귓가를 간지럽혔습니다. 마음에 이끌리듯 손이 멋대로 움직여 아이의 도톰한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한참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년은 이내 살짝 마른 목을 침으로 축이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교에 경비원이 있었단다. 그 경비원은 말이지, 곰처럼 덩치가 크고 솥뚜껑만 한 손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인상의 아저씨였어.”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그는 텅 빈 마음을 채우고자 밤의 학교를 순찰하고, 또 순찰하였단다. 그에게는 외로움을 잊게 해 줄 ‘무언가 할 일’이 필요했거든.

익숙한 이야기에 목이 조금씩 말라갑니다. 



“어느 날 고요한 학교에 한 명씩,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경비원은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기뻤어. 그 불청객들과 자신은 왜인지 닮아있었거든. 맞아. 그들도 후회와 외로움을 안고 과거를 찾아온 사람들이었어.”



소년은 잠시 읽던 책을 덮어둔 채,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아이는 뒷내용이 궁금하다는 듯 소년의 옷깃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이의 눈을 보며 소년은 입을 열었습니다. 어쩐지 책을 읽지 않아도 그는, 그다음 내용을 알 것 같았습니다. 



“경비원은 말이야. 그 불청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스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었어.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한 명의 불청객들이 지나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마음속에도 하나씩 촛불이 켜진 것 같았어.”



“촛불이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응. 촛불.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속은 말이야. 그도 모르는 새에 따뜻한 불빛들로 가득 차게 되었단다.”



우와아~ 아이가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소년은 자신의 마음속에도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약하게 일렁이고 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무언가가. 



빠르게 장면이 바뀌며 휙휙 지나갑니다. 오래된 필름으로 상영된 영화를 보듯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품은 여러 장면들이 다양하게 지나갑니다. 성장하여 학교를 가게 된 아이의 모습을 그는 관객의 시점으로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퍼억



아이의 머리에 던져진 우유가 팩을 타고 터져 흘러내립니다.



“쟤는 엄마도 없대. 완전 이상해”



“왜 아빠만 있는 거야? 혹시 아빠만 둘인 거? 우~웩”



밝고 초롱초롱했던 아이의 눈빛이 조금씩 어두워졌습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인 아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어느 순간 고개를 치켜든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눈앞의 아이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아이를 향해 급히 손을 뻗었으나 장면은 물웅덩이에 비친 파문처럼 일렁이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앞에 비친 장면은 교복을 입고 있는 성숙해진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는 이제,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마른 체형에 살짝 큰듯한 고등학교 교복은 그를 더욱 왜소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저..”

마른침을 삼키며 아버지가 말을 걸었으나,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이를 향해 뻗었던 아버지의 손이 힘없이 내려가는 모습을 소년은 그대로 지켜보았습니다. 죄책감과 끝 모를 미안함이 뒤섞인 채 소년의 시선이 아버지의 얼굴을 향합니다. 분명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었으나, 울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슬프게 고요한 울음을 토해내며..



한동안 방문을 응시하던 아버지는 시선을 돌려 식탁 옆 벽면에 걸려있던 달력을 응시했습니다. 자그맣게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 기일이라고 적힌 메모, 그리고 벽 한편에 걸려있는 아내의 사진을 보며 포옥 한숨짓던 그는 이내 다 식어버린 저녁밥상을 천천히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달그락달그락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조용한 부엌을 고요하게 채워나갔습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건데! 왜!”



쾅쾅 



눈앞에 오래된 영화처럼 펼쳐지는 장면을 향해 소년은 울음으로 점칠된 소리를 내지르며, 부서져라 주먹을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장면과 소년사이에는 마치 두터운 벽이라도 있는 듯 얇은 파장만을 남기며 장면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소년은 이내 주저앉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폐를 찌르는듯한 끔찍한 고통에 눈을 부릅뜬 채 뜨거운 숨을 토해냈습니다. 



“헉….”

토해낸 숨에서 왈칵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쿨럭거리는 숨 사이에서 소년은 자신이 누워있는 시멘트 바닥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 뒤집어진 차량이 보였습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은 뼈가 부러진 듯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몸으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소년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온몸이 쥐어짜지는 느낌 속에서도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조금씩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신체보다도, 그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남겨두어선 안돼’



‘아직 해준 것도 많이 없는데.’



‘내가, 그저 부족하고 부족해서…’



‘미안하다.’



가쁘게 몰아쉬던 숨에서 쇳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서 구급차가 오는 것이 보였으나 너무 늦은 것 같았습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이내 움켜잡았습니다. 차에서 튕겨져 나왔던 펜던트. 담요에 감싸인 채 새근새근 잠에 빠진 아이와, 아내. 그리고 나.. 사진 속 얼굴을 바라보며 더욱 으스러지도록 펜던트를 잡던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까만 독백을 마음속에 남기며.




‘사랑해’






까맣게 죽어버린 눈을 뜬 채, 소년은 넝마가 된 교복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습니다. 비틀거리며 텅 빈 집을 배회하던 그는 이내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한 달이 지나서 1년이 흘렀을 때. 흰 피부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 소년은 여느 때처럼 즉석밥과 라면을 끓여서 서재로 향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소년은 넓은 집 안에서 유독 아버지가 있던 서재만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치 코끼리의 동굴처럼. 



맛없는 라면을 기계적으로 씹어먹으며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던 소년은 창밖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이 서재 안을 구석구석 비추며 불이 꺼져있던 서재에 잠깐동안 서늘한 빛이 찾아들었습니다. 빛을 따라 흐린 눈으로 서재 안을 둘러보던 소년의 눈에 이윽고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책이 보였습니다. 보랏빛 바탕의 신비로운 분위기 속 학교와, 정문에는 곰처럼 큰 경비원의 뒷모습이 그려진 책의 표지는 누군가가 오래도록 잡고 있었는지 손때가 이곳저곳 묻어있었습니다. 



“꿈의 학교… 하랑?”



크고 두툼한 손이 머릿결을 만지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낯설지만 싫지 않은 촉감. 햇살냄새가 나는 포근한 감촉. 누군가가 마음속에서 소년을 향해 웅얼거리며 웃음을 짓는듯했습니다. 까맣게 죽어있던 소년의 마음은 아직 미동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편안한 기분이 듭니다. 



소년은 쓰러지듯 스르륵 침대 위로 잠겨 들었습니다. 품에는 동화책을 꼭 안은 채 소년은 1년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헉….!”

먼지가 가득 쌓인 교실바닥에서 소년은 거세게 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일어났냥”

고양이가 앞발을 햟으며 날카로운 노란색 눈으로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소년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은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또옥 또옥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진실이 그의 어깨를 잡고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을 때 소년은 비로소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숀은..”


“그 모습은..”



소년의 얇은 목소리와, 숀의 투박한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졌습니다. 미술실 한편에 걸려있던 거울너머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덩치가 큰 경비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거울 속 숀과 소년의 입이 동시에 열리며, 두 개의 목소리가 하나의 울림으로 고요한 미술실에서 메아리쳤습니다. 



놀랍도록, 아버지를 닮아있었다.



나는 그렇다면, 여태껏...



-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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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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