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낙은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자태의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an)과 종유석이 달린 듯 빛나는 돌을 품은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그리고 아찔한 수직 절벽 위에 걸쳐있는 정원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까지. 사십여 년 전쯤 아이들과 함께 왔던 곳, 풍랑과 햇볕이 이들의 몸짓과 손짓을 시시각각 달리할 뿐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비범한 풍광을 지닌, 인간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조물주의 걸작이었다.
처음 방문하는 엔텔롭 캐니언은 마치 지하에 동굴처럼 숨겨져 있었다. 유명사진작가들의 사진첩에서만 보아오던 오묘한 빛이 거기 있었다. 바위 사이를 내리꽂는 빛과 협곡의 각도에 따라 푸른빛 붉은빛 보랏빛을 띠는 바위들 앞에서는 숨도 함부로 쉴 수 없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예술 작품, 문명과 문화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에게 자연은 또 한 번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비로운 엔텔롭 캐니언에 두 눈이 멀어버린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슬픈 역사를 품고 살아간다는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로 향했다. 인디언들은 이곳 애리조나를 *아리조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작은 옹달샘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소 썩는 냄새, 땅이 꺼지는 소리, 붉은 피가 스며든 것 같은 뻘건 땅만 보였다. 마치 문화의 저주가 내린 땅 같았다. 모래 바위들만 이들의 통곡 소리를 귀담아듣는 듯했다.
멀리 창밖으로 드문드문 인디언 황토집인 호간(Hogan)이 보였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공장도 건립할 수 없는 척박한 땅. 학교는 있으나 대부분이 문맹이라고 한다. 한때는 대지의 주인이었으나 가슴에 화살촉이라도 꽂힌 듯 소리 없는 그림자로 살아가는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국립공원 골짜기 우라늄 탄광이 그들의 생계라니, 어쩌면 그들 혀에는 이미 우라늄 가루가 백태처럼 끼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잃어버린 어제보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내일이 없는 것이 더 암울하게 다가왔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지프차를 타고 모뉴먼트 밸리 성지 안으로 들어갔다. 길목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가락지, 목걸이, 팔찌들이 낡은 좌판 위에 뒹굴고 있었다. 자연의 손으로 빚어낸 이들의 성지는 무상한 세월 속에서도 군데군데 찬연하게 존재하고 있었지만, 조상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그들만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채 골짜기만 지키고 있었다. 서부극 <역마차>를 촬영했다는 존 포드(John Ford) 포인트에서는 아직도 휘파람 소리, 말발굽 소리, 밴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인디언의 희생과 애환이 서린 땅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 먼지 쌓인 좌판 위에 놓여 있던 푸른 목걸이가 붉게 보였다. 붉게 지는 저녁 해 때문이었을까?
삶의 현장 어디서나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 힘 있는 자 발아래 놓인 약자, 지배와 피지배 관계. 어쩌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갑질 본능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왠지 힘없는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랜드 써클을 돌아보는 일주일 동안, 화려하고 빛나던 협곡들의 모습보다 인디언들의 성지인 모뉴먼트 밸리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행기를 기다리던 라스베이거스의 밤, 환락의 불빛이 여기저기 화려한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암흑 속에 갇혀 있을 모뉴먼트 밸리의 어두움 때문에 이들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은 아닐까? 어둠과 빛 사이의 거리는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이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을 두드렸다.
자연은 오늘도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감동과 삶에 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모두 읽어낼 수는 없으나, 한 호흡 쉬다 보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