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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Sep 19. 2023

그랜드 써클의 여운

아리조낙은 보이지 않았다


 은퇴를 하면 어디론가 떠나자고, 아침마다 내딛는 일상의 길을 벗어나자고 여러 번 다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을 끝자락에야 그동안 생업을 지탱해 주던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계획해 오던 북유럽크루즈 여정을 놓친 우리는 미서부를 여행지로 삼았다. 

오래전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잠시 둘러보았던 캐년, 과연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서부의 3대 캐년은 역시 비범한 풍광을 지니고 있었다. 웅장한 자태의 그랜드 캐년과 종유석이 달린 듯 빛나는 돌을 품은 브라이스 캐년. 그리고 아찔한 수직 절벽 위에 걸쳐있는 정원, 자이언 캐년. 인간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조물주의 걸작들이었다. 어떤 인간의 조형물이 이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풍랑과 햇볕이 이들의 몸짓과 손짓을 시시각각 달리하는데 말이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여전히 미생이라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상의 찬탄도 잠시 지하의 신비로움을 보여준 앤텔롭 캐년(antelope canyon)은 두 눈을 멀게 했다. 유명사진작가들의 사진첩에서만 보아오던 빛이 거기 있었다. 지하에 이런 비밀스러운 동굴이 있다는 것을 누가 감히 눈치나 챘겠는가? 아주 오래된 영화 <숄저블루>에서 보았을 법한 원주민 가이드 멜라니(Melany)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바위 사이를 내리꽂는 빛과 협곡의 각도에 따라 푸른빛, 붉은빛과 보랏빛을 띠는 바위들 앞에서 숨도 함부로 쉴 수 없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에게 자연은 또 한 번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빛의 조화에 두 눈이 멀어버린 사이 자작나무숲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추운 계절에는 눈 때문에 지날 갈 수 없다는 언덕에는 하얀 자작나무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생채기가 난 몸마다 눈물 그렁그렁 고인 채 무리 지어 서있는 나무들이 늦은 계절을 배웅하고 있었다. 단풍 든 황금빛 숲 대신 빈 가지들만 남아있는, 하늘 끝이 보이지 않던 자작나무숲. 그들이 속삭이는 말소리에 이번에는 두 귀가 멀어버렸다.


 눈과 귀, 마음을 정리하고 다다른 곳은 슬픈 역사를 품고 살아가는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인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인디언들은 이곳 아리조나를 아리조낙(인디언 언어로 옹달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작고 오목한 옹달샘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소 썩는 냄새, 땅 꺼지는 소리, 붉은 피가 스며든 것 같은 붉은 땅만 보였다. 아픈 띠를 두른 모래바위들만 잃어버린 어제보다 내일이 없다는 이들의 통곡소리를 귀담아듣고 있는 듯, 들판은 문화의 저주만 붉게 쌓여 있었다.

 멀리 창밖으로 어쩌다 보이는 호간(Hogan, 인디언 황톳집),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공장도 건립할 수 없는 척박한 땅만 한숨을 쉬고 있는 듯했다. 학교는 있으나 거의가 문맹이라는 이들의 현재와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한 미래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 때는 대지의 주인이었던 이들, 삭은 화살촉이 가슴에 꽂히기라도 한 듯 소리 없는 그림자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 국립공원 골짜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라늄광석을 캐느라 그들의 혀에는 우라늄 가루가 백태처럼 끼었을지도 모른다.

 지프차를 타고 성지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낡은 좌판 위에 하루살이를 벌여 놓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자연의 손으로 빚어낸 이들의 성지는 무상한 세월 속에서도 군데군데 찬연하게 존재하고 있었지만 조상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그들만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채 골짜기를 지키고 있었다. 서부극 <역마차>를 촬영했다는 존 포드(John Ford) 포인트에서는 아직도 휘파람소리, 말발굽소리, 밴조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인디언의 희생과 애환이 서린 땅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 먼지 쌓인 좌판 위에 놓여 있던 푸른 목걸이가 붉게 보였다. 붉게 지는 저녁 해 때문이었을까?

 

 삶의 현장 어디서나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 힘 있는 자 아래 놓인 약자, 계급 간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갑질본능이 있는 건 아닌지.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왠지 약소국가의 자손으로 힘없는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행기를 기다리던 라스베이거스의 밤, 환락의 불빛이 여기저기 화려한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암흑 속에 갇혀있는 모뉴먼트 밸리의 어둠 때문에 이들이 더 빛나는 것은 아닐까?  어둠과 빛 사이의 거리는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이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을 두드렸다.

 자연은 오늘도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감동과 삶의 지혜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비록 그가 말하는 것을 다 읽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 호흡 쉬다 보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시간.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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