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1889) - 작품 편
누보 쏠레이(Nouveau Soleil): 고흐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선생님의 모습을 후세에 남긴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반 고흐: (난감해하며) 네, 어쩌다 보니 모두에게 제 얼굴이 팔린 것 같군요. 그렇게까지... 되길 바란 건 아니었... 는데... 그래도 제 예술에 대해 알아주시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쏠: 지난 시간에 선생님은 자화상을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모델을 구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이 오히려 자신을 그리게 된 계기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보통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핑계를 찾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그 역경을 기회로 바꾸셨습니다. 경제적 이유 이외에 자화상을 즐겨 그린 또 다른 이유가 있으실까요?
반 고흐: 무엇이 먼저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많은 자화상을 그리던 중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문득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알기 힘든 자신을 그리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진정한 나를 그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렵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도 쉽지는 않다. - 빈센트 반 고흐 -
누쏠: 소크라테스의 말과 함께 생각하니 자화상이라는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초상화는 예술가가 대상이 원하는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혹은 예술가가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그리게 되는 반면 자화상은 예술가 스스로의 자기 성찰이 주제가 되겠군요.
반 고흐: 그렇죠.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 내면에 대한 스스로의 시선을 그림에 담곤 했습니다. 때로는 과시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모습으로,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곤 합니다.
누쏠: 선생님의 자화상에는 유독 우여곡절이 많은 선생님 인생 자체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특히 고갱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고 계신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예술가라면 그런 모습을 숨기거나 굳이 드러내기를 꺼렸을 것 같습니다.
반 고흐: 그... 럴수도 있었겠군요. 뭐... 제 평생에 그림을 팔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다들 제 부끄러운 모습을 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실 뭐 상관없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것조차 빈센트 반 고흐인 것을. 제가 그 친구를 보듬어 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습니까. 때론 거울 속에 빈센트를 내가 아닌 지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고 한 적도 있지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으로 불안을 겪던 저는 그런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오히려 두렵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자화상에 대해) 꽤나 깔끔하지 못하고 슬프다.
누쏠: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은 꽤나 솔직한 표현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지는 않나요?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반 고흐: 글쎄요.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불쌍한 내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민하고 충동적인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과 타협할 수 없고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모든 긍정적인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 테오에게 쓴 편지 中 -
누쏠: 선생님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느낌이 드는 푸른색이 지배적입니다. 우울하다는 뜻의 색인 블루와도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선생님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낭만적인 밤하늘을 떠오르기도 합니다.
반 고흐: (흥미로운 듯) 그럴 수 있겠군요. 우울함이 주는 절망감은 낭만적 비애감을 통해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기도 하니까요.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우울과 낭만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푸른 톤의 색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누쏠: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정말 남의 작품 이야기하듯 하시네요. 하지만 그림 속 선생님의 눈빛과 긴장한 듯한 입술, 그리고 어지러운 배경은 혼란스러운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그림을 그리신 후 몇 개월이 지나 극단적 선택을 하셨습니다. 결말을 알고 보면 선생님의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고통과 슬픔뿐 아니라 일종의 결연함이 느껴지는 듯도 합니다.
반 고흐:... 뭐... 그래 보이기도 하는군요.
누쏠: 다른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유독 특이한 기법이 사용된 작품이 눈에 띄는데요.
반 고흐: 어떤 작품을 말하는 거죠?
누쏠: 위의 두 작품은 기법상으로 특이해 보입니다. 자화상에 선생님의 인생이 드러난다고 하셨으니 이 시기에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반 고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음... 참 좋은 시간이었죠. 1887년 저는 파리에 있었습니다. 테오의 소개로 여러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 파리에서 모네, 세잔, 시냑 등의 뛰어난 예술가들과 안면을 텄었죠. 특히 폴 시냑(Paul Signac, 1863-1935)이라는 친구는 새로운 인상주의 기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와 함께 유독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기를 즐겼죠.
누쏠: 아! 점묘법(pointillism) 말씀이군요. 지금은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로 분류되곤 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쇠라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고흐 선생님도 저희 매거진 구독해 주실 거죠?
반 고흐: (다소 당황한 듯) 뭐... 그럽시다...
누쏠: 흠흠... 여하튼 선생님이 만나고 영향을 받았던 모든 것이 선생님에게 영향을 주듯 자화상에 그것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반 고흐: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 그림은 없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또 다른 모습이었겠죠. 위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그렸을 때 고갱이 제게 가장 많이 머물러 있어서 고갱... 그 친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거울 속의 제게 스스로 묻곤 했습니다. 내 모습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했죠.
나는 내 마음과 영혼을 내 작업에 쏟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 빈센트 반 고흐 -
누쏠: 선생님은 늘 거울 속 자신을 보는데 익숙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사랑했던 다른 예술가들이 선생님을 그린 초상화가 있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반 고흐: 두 친구 모두 내가 그리고 나를 진정 사랑해 주었지. (글썽이며) 그들의 눈엔 내가 이렇게 비쳤구먼. 내가 거울로는 볼 수 없는 내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게 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모자를 벗는 시늉을 하며) 그들에게 경의를... chapeau bas!
누쏠: 선생님의 삶이 결코 외롭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님들께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외로움과 혼란으로 삶의 힘겨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한마디를 전하며 오늘 시간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작품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방>으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 고흐: 네, 감사합니다.
나는 내 삶과 그림에서 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지만, 내가 고통받고 있는 한 나보다 더 위대한 것, 즉 내 삶, 창조의 힘 없이는 지낼 수 없다. - 빈센트 반 고흐 -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