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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l 19. 2022

여행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안녕 까밀로 EP 5/5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행은 새로운 헤어짐의 연속이니까.




Saturday, January 16, 2016


비가 온다. 파타고니아 날씨는 정말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거봐 어제 피곤해도 바로 가길 잘했지? 파타고니아가 이렇다니까.


피곤하니 내일 가자는 나를 까밀로가 설득해서 어제 보트 투어를 한 건 잘한 일이었다.


아침에 거실로 나오니 아르헨티나에서 여행 온 중년부부가 마테를 나눠주셨다. 아저씨가 내 휴대폰을 달라더니 구글맵을 켜고 본인 집을 찾고 저장 버튼을 누른다. 내가 부에노스에 가야 할 곳이 라고 웃으며 덧붙인다. 막내딸이 아코디언 연주자라며 비디오를 찾아 신나서 보여준다.


내가 아르헨티나 부부와 이야기하는 동안 까밀로는 부엌에서 다른 칠레 노들과 있었는데, 그때 한 남자가 자기 가는 길이라며 나를 공짜로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면서, 그냥 버스를 타란다.

‘저 남자가 하는 말을 다 믿지 못하겠어. 안전하게 버스를 타.’


까밀로와 마지막 식사를 하러 카페로 나왔다. 각자 파이 한 개씩과 커피를 샀다.


-한국 남자 친구는 늘 진지해 아니면 너처럼 밝아?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밝긴 한데, 일을 오래 하니까 피곤해하지. 그런데 지금은 남자 친구가 없어

-배에서는 있다고 했잖아

-응

-배에서는 있다고 했잖아

-응 있다고 그랬지

-그런데 왜 지금은 없다고 해?

-난 늘 남자 친구 있다고 해. 남미 남자들 너무 들이대잖아

-나도 들이댄다고 생각해서 있다고 했어?

-아니, 그냥 늘 있다고 해. 너네 집도 너 혼자 사는 줄 알았으면 안 갔지. 배에서 계속 와이프랑 딸 얘기를 해서 집에 다 있는 줄 알았잖아. 집에 도착해서 아이 씨 망했다 이랬다니까. 집도 더럽고, 가족도 없다니!

-집이 더러운 건 나도 놀랐어. 내 집은 늘 깨끗해 나 항상 청소하는 거 봤지? 3주 비웠더니... 휴. 그렇게 난장판인데 너도 있고 해서 릴리한테 뭐라 안 했잖아. 그리고 너, 남자 따라가면 안 돼, 뭘 믿고 따라온 거야.

-그러게, 네가 거북이랑 말이랑 가족사진 보여줘서 갔는데, 안전한 선택은 아니었어.


-하하하하하 맙소사! 난 너처럼 걱정 없는 사람은 평생 처음 봤어!


까밀로가 목청을 드러내며 웃는다.



칠레치꼬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젯밤에 마신 와인 탓인지 늦게 잔 탓인지 컨디션이 난조다. 게다가 지난 며칠 같이 다닌 까밀로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약간 우울해졌다.

운전석 옆 보조석에 타서 ‘건강해. 조심히 다녀’라고 손을 내미니 까밀로가 엉엉 울었다. 울컥해서 나도 따라 울었다. 그는 운전기사 아주머니에게 나를 잘 챙겨달라고, 안전한 숙소 앞에 내려달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하며 부탁했다.


구불거리고 험한 길을 내달리는 동안, 이 기사님은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어디 예쁜 곳을 지날 때마다 설명도 해주시고, 특별히 나만 얼른 내려서 더 가까이 보게 해주시기도 했다. 리오뜨랑낄로에서 칠레 치꼬 가는 길은 남미 버스 라이딩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예쁜 길이다. 그 예쁜 길을 퉁퉁 부은 눈으로 보다 잠들다를 반복했다.


칠레치꼬에 도착해서 기사님의 동생이 하는, 손님이 나뿐인 허름하고 저렴한 호스텔에 도착했다. 저녁부터 강한 비바람에 창을 때리고 지붕을 뜯어낼 듯 요란하. 지구의 남쪽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인기척이 없는 숙소에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대폰을 켜보니 까밀로가 ‘호스텔에 도착했어? 밖에 나가지 말고 안전하게 있어’라고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여행은 만남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경계와 기쁨이 섞이지만, 헤어질 때는 슬픔과 쓸쓸함이 섞인다. 옷깃을 스치는 대부분의 현지인들과 그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나는 현지인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익숙해지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지나가는 낯선 여행자에게 경계했다가, 아낌없이 퍼주었다가, 걱정해주기까지 그들이 나와의 만남에 마음을 많이 쓴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칠레치꼬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가서 15시간을 남쪽으로 달렸다.


까밀로가 리오뜨랑낄로에서의 휴가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고 메시지를 남긴 것을 끝으로, 우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각자의 길을 간다.


예쁘고 질투 많은 어린 부부와 세 딸들이 오손도손 행복하길. 나 역시 그가 소망해준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안녕 까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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