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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Aug 05. 2022

우리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 안드레아2

파타고니아 트래킹 3/5

(이야기를 역순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셋째 날.


이탈리아노 캠핑장에서 프란세스 캠핑장을 가는 길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풍경을 조금은 볼 여유가 있었다. 오전엔 고개도 들 수 없었거니와 안개와 비바람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았다. 


비가 조금 개었을 즈음, 강가에 짐을 내려놓고 여행용 체스판을 꺼냈다. 한국에서 1500원 주고 산 초소형 자석 체스판이다. 잠깐 햇볕이 떠 있는 동안 우리는 체스를 두며 젖은 등판을 바람에 말렸다.


두 판을 쉽게 이겼다. 그 사이 구름에 해가 가려 바람이 차가워졌다. 정리하고 일어나자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제발 한 판 더,라고 외치는 안드레아. "이길 수 없다니까, " 하지만 어리광을 부린다.


간단히 세 번째 판을 마치자 안드레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자 이제 짐 들어, 동생” 


비바람과 짐이 없으니 쉬운 산길이다. 이런 여유가 좋았다. 안드레아가 있어주어 내심 안심이 된다.

그가 "내일도 나를 고용해주면 어때?"라고 물었다.

"얼마에?"

"3만 페소?"

"나 그 정도 돈 없어. 2만 페소라면 생각해볼게"


내일 산행은 더 길다. 오늘은 2시간에 2만 페소(2만 원), 내일은 4시간에 2만 페소이니 그에게는 파격 할인 같은 것이다. 하지만 2만 페소는 사실 내가 가진 돈의 거의 전부다. 나도 동행이 필요하여 그의 제안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현금이 너무 없어 걱정이다. 그가 짧은 고민 끝에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말없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다. 아마 내일 2만 페소를 또 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마을로 갈 차비를 제외하곤 천 원정도가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비를 맞아보니 사실 이건 고민하고 말 것이 없었다. 나는 짐을 매고 비탈길을 내려갈 수 없다.


프란세스 캠핑장에는 미리 내가 예약해둔 텐트가 쳐져 있었다. 거의 하루 내 비가 왔고, 이곳은 산 중턱 계곡에 있다. 해가 지기 전이지만 벌써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너 텐트야? 좋은데?”

“그렇지? 온수 샤워실도 쓸 수 있고.”

“난 샤워를 못한 지 1주일이 넘었어”


"뭐? 으악! 오늘 했잖아. 비 잔뜩 맞았지 하하하"


나는 마침내 텐트가 2인용이니, 여기서 자고 싶으면 그래도 좋다고 했다. 이미 내가 결제는 다 했고, 네가 원하면 말이지. 그는 신이 나서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좋다고 했다. 그는 당장 한 시간을 되돌아 그가 묵는 이탈리아노 캠핑장까지 가서 수건, 침낭, 기타를 들고 왔다. 오늘 밤엔 기타를 치고 놀자!


...


그러나 기타는 무슨,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어서 텐트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 일찍 어두워졌고, 기온이 더 떨어졌다. 별을 보는 낭만 캠핑은...? 지난주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 캠핑은 치열하다. 밤새 7번을 깨고, 이가 딱딱 떨리고, 심장이 발사될 것 같이 벌렁거린다. 산꼭대기부터 얼음계곡을 타고 내려온 강한 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나무들이 밤새 울부짖었다.


옆에는 1주일 만에 개운하게 목욕하고 깊은 자고 있는 20살 칠레노가 있다. 그가 뿜는 온기가 나의 생존 전략인가? 그는 뻐꾸기인 양, 나를 둥지에서 밀어내려는 듯 나를 텐트 한쪽 벽으로 밀어낸다.


“안드레아... 옆으로 좀 가...!”

그는 코 고는 것을 멈추고, 빨간 침낭 안에서 몸을 열심히 비비적거려서 방향을 틀고, 10센티정도 이동했다.





넷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문 연지 얼마 안 된 캠핑장이라, 다른 캠핑장과는 다르게 20명이 채 안되었다.

나는 무게 때문에 조리도구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끓는 물만 넣으면 조리가 되는 간단한 음식들만 들고 왔다. 오늘 아침은 엄지손가락만 한 소시지와 손바닥만 한 빵, 뜨거운 물에 버터를 넣고 가루를 부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변하는 으깬 감자를 먹었다. 사이좋게 안드레스와 반반씩. 허기만 달래는 정도의 양이면 좋겠는데 오히려 위장만 깨워 더 배고프게 만든다.

먹을 것은 없지만 식탁에 계속 앉아있으면 주변에 앉았다 가는 여행자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건다. 인스턴트커피를 한 통 가득 들고 다니는 여행자가 따뜻한 커피를 끓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커피를 호로록 불며 안개 낀 산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다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커피 냄새를 맡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너네는 커플이야?” 이것은 이제 여행자들이 우리에게 자주 묻는 질문 1.

“우리는 어제 만났어. 나는 얘의 고용주."


무식하게 ‘가면 누구라도 있겠지’ 라며 혼자 캠핑을 온 한국 여자와, 2주간 기타 치고 산에서 사는 무일푼의 안드레아. 여행자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몹시 신기해했다. 먹을 걸 너무 많이 들고 온 영국 여행자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봉지라면을 3개를 적선했다. 훌륭한 이야기 값이다.


아주 가끔 맑음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기타만 있는 칠레노(왼쪽)

돈이 약간 있고 먹을 것이 약간 있고 체스판과 색연필이 있는 꼬레아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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