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숙제를 받았다.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라...
‘그때의 심정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터널의 끝에 다다랐을 때 눈부시게 환한 빛이 터널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어둠의 시간의 고통은 잊혔다.’
나의 전공과에서는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대외 활동 모임에서는 인싸였다. 그만큼 전공과목의 성적보다는 타 학부 과목에 점수가 더 좋았다. 현실을 직시하니 좋은 회사에서 뽑고 싶은 좋은 스펙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절학기를 통해 학점을 메꾸고 토익시험 점수를 만들어가면서 취업 준비를 했다. 이미 여자 동기들은 취업을 했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 전선에 뛰어들었다.
남자 동기 녀석들은 유학을 가거나 반학기 휴학을 했다. 다행히 친한 선배들이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취업관련 카페와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모니터링하며 낮에는 토익공부와 이력서를 쓰는 게 일상이었다. 이력서라는 것을 처음 써보면서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고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정말 큰 학업적인 뜻을 좇고 이루기보다 정말 미친 듯이 놀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함과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취업에 자신이 없었다.
‘정 안되면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야겠어’ 졸업전까지는 취업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지원서를 냈던 곳에서 하나둘씩 발표를 했다. 역시나 취업의 관문은 높았다. 10개 중 서류 통과를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너무 큰 좌절감이 밀려왔다. 점점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공고가 뜨는 회사에 취직했다는 선후배들을 찾아보았고 쑥스러움을 뒤로한 채 취업과정에 대해서 물었다. 선배의 지인을 통해 합격 자소서들을 받아보기도 하고 나의 스토리로 바꿔가면서 이력서를 계속 뜯어고쳤다.
그러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의 합격 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합격한 사람과 못한 사람 간의 애매모호한 기류 속에서 위로와 축하를 하는 술자리도 잦아졌다. 취업만 이루면 모든 게 다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지냈다. 딱히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도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도서관에 있어야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소리를 내질러도 다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나를 감싸는 답답한 마음이 한동안 나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쓰고 제출했던 이력서들은 또다시 번번이 탈락을 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자기소개에 녹여야 할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 하는지 그걸 잘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원점으로 향했다. mbti 테스트도 다시 해보고 주변에 나의 장점 단점에 대해 묻기도 했다. 나의 취업을 결정하는 건 회사였지만 그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은 나였기에 정답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부족한 것을 바라보았다. 낮은 전공 학점과 낮은 토익점수와 같은 약점만을 생각하며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를 낮게 만들고 있었다.
나의 강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을 부각했다. 그러니 생각보다 자소서가 술술 써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제한된 글자 수에 맞추기 위해 축약하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진짜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할 말도 많아졌다. 나다움을 선택했다. 그러니 어두운 터널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두운 터널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에 빛을 비추느냐 마느냐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 취업이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구출을 안내해 주는 취업 통지 메일을 받았을 때 너무 행복했다. “예쓰~~~”를 외쳐가며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와 비슷한 동작을 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가끔 돌아보면 그게 진짜 인생이라는 어두운 터널의 시작이었음을 깨달으며 머쓱한 웃음을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