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고통의 거짓말

by 고카



어제 세차게 내린 비 덕에 하늘이 청명했다. 공기 또한 맑았기에 한강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늘 새벽에 주로 뛰었는데 시간이 8시 무렵만 되어도 사람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 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달리고 싶었다.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지나 탄천을 향해 가고 있는데 땀을 한가득 흘리며 힘겹게 뛰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의 모습과 함께 지난 봄 서울동아마라톤의 30~40킬로 지점이 생각이 났다. 그 구간에서 정말 수십 번 넘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가 쳐지지 않게 나와의 힘겨운 사투를 벌였었다. 고통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계속 나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주로에 함께 달리는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길옆에서 목 터져라 힘차게 응원하는 사람들까지 달리는 게 행복이고 축복인데 지금의 나는 왜 반대로 느끼는 것일까? 무엇이 진짜일까? 내가 감각을 통해 느끼는 고통? 아니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상황에 대한 행복하다는 해석?


진화론적으로 회피와 방어하는 태도는 생존에 유리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찰스 도킨스는 생명체, 특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유전자라는 복제자의 생존과 복제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 즉, 생존 기계라고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처럼 이기적인 유전자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우면 겁을 내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을 한다. 그런 방어적인 태도는 생존을 위함이지만 그렇게 생존에 유리했던 반응들은 인류가 제대로 된 도구와 옷도 입기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다. 산업이 발달하고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 오히려 그러한 습성은 생존에 반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다리에 쥐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모른체했다. 쥐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에 반응을 하면 몸보다 뇌가 먼저 반응해서 쥐를 신경 쓴다. 그렇게 쥐를 무시하다 보면 레이스가 끝날 때까진 버틸 수 있다. 물론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나~ 쥐에요~!‘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그 또한 무시한다.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크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을 때도 있다. 오히려 그 고통의 세기를 키운 건 내 마음이었다.


다시 다가오는 가을에 마라톤을 뛸 계획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해야 하나?라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탄천을 유유히 자전거를 타며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3년 전 일산 호수공원에 새벽마다 달리는 아주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의 보폭보다 5~6배가 좁았고 속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남들보다 10배는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고 비대칭으로 기울어진 어깨 그리고 오른손은 몸 안쪽으로 말려있었다. 얼굴의 표정도 입이 삐죽거리는 모습이었다. 몸이 불편한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공원을 한 바퀴 달리는 것과 그분이 한 바퀴를 도는 게 엄청난 노력과 힘듦의 차이였을 텐데 그분은 매일 아침 보였다. 그분의 성실함과 치열한 노력이 나에게 큰 울림과 가르침을 주었었다. 고통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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