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충
아직도 왜 내가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결혼의 시기 또는 결혼 자체에 대해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고정관념이 오히려 편했던 나에게는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오히려 나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취업을 하고 나서 결혼할 만한 반려자를 찾았다. 연애를 해보고 실패해 보고 하면서 30이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만추
나는 남들이 좋아하는 일반적인 콘셉트의 미인에게 끌리지 않는다. 다들 걸그룹에서도 미모를 담당하는 친구보다 걸크러쉬한 모습에 자기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력을 더 느꼈다. 정형화된 콘셉트가 아닌 자신의 자존감이 높고 개성을 가진 사람이 좋았다. 그런 이상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자만추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의 20대 후반에는 그런 자만추를 이룰 만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 봐도 나의 이상에 맞는 사람을 보는 거 자체가 어려웠다. 나의 스타일에 맞는 사람들은 이미 짝이 있었다. 내가 정말 엄청난 미모와 다른 조건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상대가 나에겐 나타나지 않는 게 스스로도 너무 희한하게 느껴졌다.
감정노동
소개팅을 시작했다. 회사 다니면서 거의 주말마다 소개팅을 했고 많이 했던 때는 금토일 3일 연속으로 한 적도 있었다. 소개팅은 주변에 조건이 맞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래도 소개 당사자와 상대방을 고려하기 때문에 보통은 소개를 시켜주는 것도 조심스럽다. 여자들의 소개팅 레퍼토리는 보통 이러하다. “걔~ 진짜 착해 괜찮아~” 아니면 “정말 여성스럽고 이뻐~” 그 레퍼토리에 마음의 상처와 대미지를 많이 입었다. 여자들이 보는 여자와 남자가 보는 여자는 다르다. 상대가 괜찮든 아니든 소개를 시켜준 사람까지 연결되다 보니 소개팅은 늘 예의를 차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과 함께 감정노동을 하게 된다. 그 감정 노동을 하고 나서 텅 빈 방에 가만히 하루를 마무리하다 보면 공허하고 허탈함이 밀려온다. 그 휑한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다음 소개팅을 잡는다.
혹시나
그래 이번에는...이라며 희망을 가져 보지만 그건 마치 로또를 사고서 로또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정말 주변에 소개팅을 통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 신기하다. 사람이 그렇게 만남을 가지고 사랑까지 이어진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의 혹시나 하는 마음은 늘 꽝이었고 그 이어지는 꽝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희망과 감정노동을 반복하며 지쳐가게 되었다.
차라리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등산 달리기 수영 마라톤이나 실컷 하기 위해 동호회 활동이나 하며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등산 동호회에 들어서 등산을 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소개팅을 하면서 나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오는 소개팅은 거절하며 외롭지만 아름다운 나의 자유를 즐겼다. 달리는 동안에도 풍경이 아름답고 공기 좋은 산을 오르면서도 바다와 강에서 수영을 하면서도 즐거움 속엔 늘 외로움이 함께 했다. 하지만 억지로 끼워 맞춰 누군가를 마나고 싶지는 않았다.
거절
공허함 속에도 소개팅은 한사코 거절을 했다. 50여 번이 다 되어간 소개팅 속에서 나에게 돌아온 거라고는 마음의 헛헛함 뿜었던지라 소개팅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거의 끝자락에 했던 소개팅은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줘가며 저녁식사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커피에 디저트까지 먹게 되었고 결국에 노상에 주차한 차는 견인까지 되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이 그냥 그날 즐거웠다며 끝이었다. 소개팅 초반에 나의 회사 동기형이 해주었던 소개팅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대학생이었던 그녀를 기다리다 여자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걸 보고 오해를 사 잘 안되었었다. 그런 동기형이 산에 들에 뛰어다니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웬만하면 소개팅을 잘 주선하지도 않고 정말 딱 맞을만한 사람만 해주었기에 솔깃했으나 이번에도 거절을 했다. 형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소개팅은 마지막으로 꼭 해보라고 했다. 그래 그냥 오랜만에 소개팅이기도 했고 밥이나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소개팅을 했다.
역시나
형은 늘 진지했다. 말수가 없고 진지했다. 겉으로는 빈틈이 한가득해 보이고 철부지 같았지만 속은 깊었다. 그런 깊이 있는 시야로 둘이 맞을거 같다며 주선해준 자리 였으니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대를 하고 만났던 그 자리에서 왠지 잘 될듯한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형이 나를 소개하는 사진은 가관이었다. 공원에서 기타를 치며 게걸스레 웃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소개팅녀는 뭐 이런 놈이 있나 싶어 재미는 있겠다면 나왔다고 했다. 역시나 소개팅은 어려웠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50번가량의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난 건 손에 꼽았는데 그게 다 동기형의 작품이었다. 그 작품의 결과로 나는 지금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때로는 그 형을 원망하고 나를 책망하지만 그런 후회는 결혼생활에서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그래도 가정을 이루고 잘 살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에 감사하다. 형도 만만치 않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유를 꿈꾸고 있는 거 같은데...
꿈은 이루어진다.
10번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20번이 넘어가면서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30번이 넘어가면서 기계가 되었다. 40번이 넘어가면서 포기를 했다. 그렇게 소개팅의 횟수가 쌓여가면서 나에게 맞는 연인을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나 와이프와 살면서도 수도 없이 싸웠다.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거면 혼자 자유를 즐기며 살면 될 것을. 그런데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소개팅을 하고 결혼을 하려고 애를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어쩌면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 속에 나에게 작은 촛불 같은 불빛과 온기가 잔잔하게 있어준다는 건 축복이다. 태양처럼 밝고 뜨겁지 않아도 나에게는 충분한 온기와 빛이다. 싸우지 않고 지내는 요즘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