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살아지는.
문득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명체는 무엇일지 떠올려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총 생명체들을 고려해서 그중 레오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레오는 우리 집 강아지였는데, 천진난만한 표정과 호기심 많은 코를 가지고 있다. 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헥헥거리는 그런 원초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보는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만든다.
레오의 산책길은 집 근처 운하인데 어른의 걸음으로 5분 남짓 걸린다. 가는 길도 콘크리트 바닥의 직선 코스, 중간에 횡단보도를 한번 건너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다. 하지만 레오랑 걷기 시작하면 5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50분이면 몰라도...) 나야 지나온 거리에 나무가 있었는지 외계인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지마는 레오에게는 매일 걷는 그 길은 매번 신나고 새로운 세상이다. 어제도 그제도 비가 와서 산책을 못했다면 똑같이 걸었던 길일 텐데도 레오는 오늘 더 신이 난다. 새로운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킁킁대고 주변의 모든 소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레오의 눈과 귀는 주인 덕분에 활발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길게 늘리고 싶다면 시간이 있을 때 새로운 것들로 많이 채워나가야 한다. 신나게 여행을 다녀오거나,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 한층 젊어지거나, 뒤를 돌아보면 여태 일어났던 일들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상상 속에 쌓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일부인 이 모든 조각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설 것이고, 그것이 길게 이어진 시간을 보여줄 것이다.
다우어 드라이스마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중에서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로 향해있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느냐는 내 눈과 귀에 던져진 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찾아보고 만날 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레오의 눈과 귀가 지극히 능동적이라 행복을 찾아가는 동안에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무감각해지고 흥미를 뚝 떨어뜨리며 행복을 잊어가고 있다. 오늘은 오늘이 마지막이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임을 알면서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기에 기꺼이 동참한다. 기쁨에 충만하건 슬픔에 잠식되건 무엇이든 풍부한 하루인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귀염둥이 내 강아지였던 레오는 현재 무지개다리를 건너 별이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중이다. 그곳에서 어찌나 인싸적 면모를 뽐내고 계시는지 새로 사귄 강아지 친구들과 노느냐고 꿈에 한번 나타나주질 않는다. 내 하루에는 강아지 레오의 시간뿐만 아니라 '오늘'을 너무도 간절히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집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금 더 최선을 다해서 느끼고, 먹고, 자고, 살아야 한다. 또 그게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조차 무뚝뚝하게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라고 넘기던,
그러면서 내심 스스로 어른스러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지난날의 모습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사라지는, 살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