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지하철 2호선 홍대앞역에서 하차.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와우산(臥牛山)이리 일컫는데, 100m가 채 안된 나지막한 산인지라, 고층 아파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들머리도 주택가가 되어 접근하기 쉬운 근린공원. 먼저 체육공원. 베드민턴 경기장을 비롯한 여러 운동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아침마당 정자에 잠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영하의 날씨지만 아직도 단풍이 곱다. 연로한 분들이 많이 눈에 띄고, 젊은이들이 트레킹 코스를 달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베드민턴 경기장 뒷길로 접어들어, 아파트 촌을 옆에 끼고 쉬엄쉬엄 걸었다. 숲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나무의 구조 등을 설명해놓은 게시물이, 아이들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
어린이놀이터를 지나 육각정이 있고, 꼬마 곤충마을이 있어 여러 곤충들의 생태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사슴벌레만 해도 5종류나 있군.
어렸을 적에 앞산에 올라 뿔 싸움을 시켰던 추억이 새록새록. 후에 안 사실이지만 수놈들의 뿔 싸움은 장가를 가기 위한 사생 결투라고. 뿔이 크면 천적에게 들키기 쉽고, 나뭇진 먹기도 영 불편한데, 신부감은 학벌도 돈도 외모도 보지 않고, 오직 우람한 뿔 달린 수컷만 좋아한단다. 결혼 조건치고 쿨하다. ‘작은 결혼식’ 운동이 번지고 있는 요즘,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뿔 하나 가지고 장가가는 요놈들이 사람들보다 시원스럽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지하 226m에서 끌어올린 청정수라고.
여기서부터 생태계류를 다라 생태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빨강․노랑․갈색 낙엽이 아롱다롱 수북히 쌓인 이 길은, 누워있는 황소의 목덜미일까 등허리일까? 정적이 감도는 이 숲속에, 가랑잎 밟는 소리만 바스락거린다. 우산목적(牛山牧笛), 와우산에 은은히 들려오는 목동들의 피리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인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큰 소가 있었다. 길마는 무악에 벗어놓고, 굴레는 북아현동 네거리에 벗어놓은 다음, 여물통은 하수동에 두고 서강을 향해 내려가다가 누웠다. 뿔은 서강초등교 자리, 머리는 서강 시민아파트 자리, 엉덩이는 와우 시민아파트 자리에 있었다는 게 아닌가?
계류를 따라 내려오니 옹달샘 같은 생태 연못. 부레옥잠 등 수생식물이 빽빽하게 차있어 동물들이 내려오다 행여나 실족하지나 않을까?
내려오면서 화려하게 단청(丹靑)한 영통사 무량수전을 지나왔다. 바로 아래는 보호수인 큰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는 가운데, 자그마한 공민왕 사당이 있다. 조선 시대 늑봉(勒捧)에 쓰일 양곡을 저장하는 광흥창지(廣興倉址)에 서 있는데,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 그리고 최영장군을 모신 곳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