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 재호야, 너도 한 뜸 떠주라 잉.”
기노시다 아주머니가 내미는 천인침(千人針) 수틀에다가 재호도 빨간 매듭을 한 땀 떴다. 간절한 소원을 담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 땀씩 부탁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 보였다.
“ 왜 일천 뜸을 뜬다요?”
“ 천명이 정성껏 떠주믄 전쟁에 나가도 적탄이 맞지 안 한디야.”
“ 난 종우학을 천 마리 접었는디...”
“ 맞어. 그것하고 똑같재.”
기노시다는 결혼하고 바로 옆집으로 세간나온 젊은 부부였다. 아주머니는 탯갈이 좋아 드물게 보는 미인이었는데, 게다 조리 가게를 하였으며, 아저씨는 감시소에 가서 일을 보았다. 재호는 이 내외분들을 따랐으며 그 집에 자주 놀러갔다.
“ 이 안에 사람이 있다요? ”
그 집에는 유성기가 있었는데. 빙빙 돌아가는 둥그런 판에서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판에는 개 한 마리가 커다란 메가폰 앞에 마주 앉아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재호는 그 그림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노래를 듣곤 하였다. 물론 일본말로 된 군가였다.
그런데, 지원병 제도가 징병 제도로 바뀌면서, 그 기노시다 아저씨가 붉은 영장이 나와 징병으로 간다는 것이 아닌가? 감시소에서 일을 하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기노시다 아저씨는 왜 군대에 가는 것일까? 얼마 전 B29 비행기가 나타났을 때 재빠르게 발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쫓겨났다는 쑥덕공론이 있더니 그게 사실일까? 징병으로 가는 사람들은 ‘무운장구(武運長久)’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떠났는데, 이 어깨띠의 한문 글씨는 천 개의 바늘땀으로 메워진 천인침이었다.
재호는 같은 학급의 미야자와가 생각났다. 미야자와 아버지는 왼쪽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중일전쟁이 나자 제1기생 학병으로 지원해 중국 전투에 나갔다가, 다리 부상을 당해서 의족인 고무다리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한길에 나오면 순사들도 거수 경례를 붙일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미야자와의 말에 따르면 집에는 천황이 내려 주신 훈장도 있다며 자랑을 했다.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은 열 손가락 안에 들었는데, 미야자와 도시락에는 항상 계란이 덮여 있고, 쇠고기 장조림이 있어서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선생님도 미야자와의 아버지처럼 훌륭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명을 고칠 때도 순 일본식으로 ‘정 윤석’이를 ‘미야자와 시게마루’로 고쳤다고 했다.
모두들 윤석이를 부러워하였지만 영식이만은 그렇지 않았다. 미야자와가 한 말을 곧잘 빈정거리고 트집 잡고 해서, 이따금 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럴 때에 나가사키 선생님은 의례히 미야자와 편을 들어주어서, 영식이는 선생님과 싸잡아서 미야자와를 더욱 셈내며 미워하기까지 했다.
‘기노시다 아저씨가 군대에 가면 모두가 존경하는 애국자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윤석이 아버지 같이 부상당해서 살아왔을 때의 일이지, 만약 전사하게 된다면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
재호가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노시다 아저씨가 입영하는 날, 재호네 학교 전교생이 읍사무소 앞 광장에 모였다. 환송식을 하였다. 군수, 경찰서장, 판사, 검사 등 높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천황께 충성하여 미국 영국을 무찌르고 전쟁에 이기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막상 입영하는 아저씨들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으며, 그들 가족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마에는 일장기 머리띠를 매고, 가슴에는 ‘무운장구’ 어깨띠를 두른 젊은이들이 트럭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양쪽으로 늘어서서 일장기를 흔들며 군가를 불렀다. 재호도 뒤꿈치를 들고 고개를 빼어 기노시다에게 깃발을 크게 흔들었는데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트럭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은 한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 나도 데려가요! 나도...”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누군가가 까무러쳤다는 것이다. 기노시다 아주머니였다.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가 식은땀을 흘리며 부축했으나, 축 늘어진 그는 의식이 없었다. 들것에 실려 제중의원으로 갔는데,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 애기 날 달이 됐을틴디, 어째야 쓸가라 잉....”
“ 저러믄 큰 일인디, 꺼꾸로라도 나오믄 애로울 것인디.......”
아낙네들이 걱정스런 낯빛으로 병원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친정 어머니는 딸이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스무 살도 채 못 된 나이에 시집보냈노라고 넋두리를 했다. 시어머니는 만삭이 된 아내를 뒤로 둔 채, 군대에 가는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느냐 면서 푸념을 했다. 재호 어머니도 재호 아버지가 징용 갔을 때를 떠올리며 그들을 위로했으나, 깊이 파인 한숨 골짜기 사이로 흘러내린 눈물이 쉬 마르지 않았다.
기노시다 아주머니는 아기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예정일보다 앞당겨졌다는데, 그러나 다행히 산모도 아기도 무사했다. 이름을 ‘훈’이라고 지었다.
아빠가 입영하기 전에 미리 지어 놓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니까 훈은 유복자가 된 셈이다.
훈은 그런 대로 잘 자랐다.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들 했다. 재호는 훈을 귀여워했다. 그 조가비 같은 손이며, 번데기 같은 고추며...
훈의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별의 슬픔을 조금씩 지워 가는데, 날벼락 같은 슬픈 소식이 또 날아들었다. 기노시다가 전사했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훈의 백일을 며칠 앞둔 무렵이었다.
“ 워메메, 워째야쓸거나...”
“ 멋이여? 아이고메....”
유골이 도착하던 날은 남산의 사쿠라꽃이 비바람을 맞고 일제히 지던 날이었다. 흰 마스크를 하고 휜 장갑을 낀 군인이 유골 상자를 가슴에 안고 남산 신사로 향했다. 입영하던 날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줄을 서서 유골을 맞이했다. 재호 학교 아이들도 물론 동원되었다. 재호에게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입영하던 때의 기노시다 아저씨의 모습이 또렷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 유골이믄 빼것재?”
“ 아녀, 뺏가리여. 화장해서 가리만 온단 말여.”
유골이 뭐냐는 문제로 아이들 사이에서 의문이 일자
“ 안체 하지 말어. 머리카락하고 손툽 발툽이란께. 전쟁터에 나갈 때 잘라 놓고 간단 말여. 저건 유골 상자가 아니라 혼백 상자여”
영식이의 말은 무게가 있어 이렇게 모든 시비를 잠재우곤 했다.
뼈 가루건 손발톱이건 혼백은 신사에 모셔졌다.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한 애국자요, 적을 무찌르고 사쿠라처럼 피었다가 사쿠라처럼 져간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가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기어코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훈이 엄마는 영결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또 까무러쳐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훈이는 외할머니 등에 업혀 아무 것도 모른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사쿠라 꽃잎은 눈처럼 흩날리고 땅에 쌓이며 발에 밟혔다. 비바람은 그쳤으나 해는 구름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이름 모른 멧새 한 마리가 바들바들 발싸심을 하며 죽어 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고무총에 맞았을까? 아니면 새들끼리도 전쟁이 일어나 싸우다가 죽었을까?
“ 안쓰럽다. 이 새, 혹시 불사조 아닐랑가 모르겄다.”
재호가 문득 이런 말을 꺼내자 종배가
“ 요게 불사조란 말이여? 그믄 오백 년만에 날아왔다냐? ”
코방귀를 뀌며 발로 걷어차 버렸다. 땅 속에 묻어 주지는 못할 망정 발길질을 하는 종배가, 인정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겨울이 되면 초가집 처마를 쑤시고 다니며 참새를 잡아다가 구이를 해먹던 종배인데, 이런 멧새 한 마리의 죽음에 눈 하나 깜빡 할 아이는 아니었다. 재호의 가슴은 더 아려왔다.
“ 불사조도 죽긴 죽겄지야? ”
“ 안 죽긴......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고 안 하더냐? 근디 넌 불사조빙 걸렸냐? 불사조 불사조 하게.....”
“....................”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피닉스 이야기를 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이집트 신화에 나온다는 신성한 새! 피닉스는 신의 제단에서 스스로 불에 타 죽고, 그 잿속에서 어린 새끼 새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지 않은가?
“아까침에 말이여, 훈이 아부지가 그 불사조맹키로 다시 살아날 거라고 안했는가비어....”
“ 예끼 놈아. 너맹키로 순진헌 놈이 워디 있다냐? ”
훈이 아빠가 불사조라도 죽긴 죽을 것이고, 살아나더라도 오백년 후가 되겠지...그렇다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 있을 게 아닌가? 기노시다 아주머니도 훈이도....
생각할수록 너무나 허무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1) 천인침(千人針)...천명의 정성이 어린 수건이라 해서 이것을 지니면 적탄이 맞지 않는다 함 (천 개의 바늘 땀 )
2) 무운장구(武運長久)...군대에 가서 모든 일이 잘 됨
3) 정신대(挺身隊)...만주, 남양 등 전쟁터의 일본 군인을 위로하는 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