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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놀이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아이들은 뒷산으로 자주 올라갔다. 남산보다는 높아서 성안 동네가 다 발 아래 내려다 보였는데, 이름이 따로 없어서 그저 뒷산으로 불렀다. 그 꼭대기에는 쌍안경으로 적기가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감시소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연락이 오면 경찰서에서는 경보 사이렌을 울리기로 되어있었다.

재호는 어머니와 함께 갈퀴를 들고 솔가리 솔가지 나무를 하러 갈 때나, 아이들과 함께 학교의 과제인 관솔을 꺾으러갈 때는, 이 산을 거쳐서 깊은 산골로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산길이 훤했다.

“ 돌격! ”

“ 와아! ”

나뭇가지와 대나무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바위 뒤에 은신해 있던 아군은, 영식이의 호령과 함께 솔방울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장은 물론 영식이었다. 나이도 많고 소리도 크며 힘도 세어서 누가 뭐라 해도 대장 감이었다. 적군 대장은 종배가 맡았는데, 종배는 괄괄한 성격에 짓궂은 말썽꾸러기여서 역시 제격이었다. 뱀을 잡으면 빙글빙글 돌려서 여자들에게 내동댕이치는 그가 아닌가?

종배의 지휘 아래에 있는 적군도 오늘만은 만만치 않았다. 솔방울이 오가다가 떨어져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부둥켜안고 씨름을 하는 것인데, 힘이 부친 재호는 솔방울도 잘 맞고 번번이 넘어지기 일쑤여서, 전사자가 되거나 부상병이 되곤 했다. 살아남는 수효가 많아서 적진을 점령하면 승리하는 것인데, 아군 진지는 마당바위였고 적의 진지는 주인을 모르는 어떤 무덤이었다.

오늘따라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솔방울이 잘 날아가지 않아 아군의 전세가 불리했다.

“ 느그들은 육탄 삼용사가 돼! ”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재호 기선이 윤석이는, 비장한 각오로 큰 몽둥이 폭탄을 팔에 낀 채 적진으로 돌진했다. 진지를 폭파하고 모두 전사했다. 산새들은 어느 쪽을 응원하는지 요란하게 지저귀었다.

“ 부웅 부웅! ”

이제 마지막 영식이가 두 팔을 벌리며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어 적진으로 날아갔다가, 역시 고사포를 맞고 추락하여 전사하였다.

“ 만세! 만세! ”

“...................”

병정놀이는 마침내 적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각본이라도 짠 듯이 항상 아군이 적진을 점령하고 항복을 받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는데, 이 날만은 이상하게 승패가 뒤바뀌어, 일본이 미.영에게 진 셈이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놀이였다.

병정놀이를 마치면 의례히 무용담이 뒤를 따랐다. 아프리카주의 희망봉을 돌아, 동해까지 들어온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침했던 러일전쟁의 승전보와, 그 당시의 영웅 도고(東卿) 원수를 시작으로, 메이지(明治)천황의 죽음과 함께 자결한 노기(乃木)대장, 아산만에서 청나라 군함 광을호를 격침하고 평양에서 5만 청군을 무찔렀던 청일전쟁 이야기, 육탄 삼용사와 가미카제의 영웅적인 이야기, 특히 윤석 아버지의 중일전쟁의 참전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이 때 갑자기 경찰서에서

“ 에엥 에엥 에엥.....”

하고 경계경보 사이렌 소리가 메아리쳤다. 적기가 떴다면 감시소가맨 먼저 발견했을 텐데, 지금 이 산에서는 새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고, 하늘에는 구름 몇 점만 눈에 뜨일 뿐 아무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감시소는 기노시다 아저씨가 일하는 곳이 아닌가? 아저씨는 ‘박(朴)’ 씨인데 창씨개명 할 때 일어로 ‘木(기)の下(시다))’라고 고쳤다고 했다. 군대에 안 가려고 감시소에 와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착오로 적기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아뭏든 산아래 동네에서는 노랑 경계경보 삼각기를 문 앞에 꽂고, 방공호 안으로 대피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 바위 밑에 바짝 엎드렸다.

‘먼 비행길까?’

아이들은 학교에서 올간 소리로 배웠던 비행기의 기종을 머리에 떠올리며 귓바퀴를 곤두 세웠다. 그러나 역시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만 귓가에 맴돌 뿐, 세상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 와, 적기다! ”

이윽고 종배의 외마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아이들은 그 손가락 끝을 따라 남쪽 하늘로 눈길을 옮겨갔다. 아니나다를까 햇빛을 받고 반짝하던 물체가 소리도 없이 보일락 말락 억불산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한 점에 지나지 않은 그 비행 물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 쿵 쿵 쿠쿠쿵...”

아이들은 비행기를 향해 고사포를 마구 쏘아댔다. 대나무 소총이 고사포로 변했고, 솔방울도 포탄으로 변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내 유유히 사라졌다.

곧 해제 경보 사이렌이 울려왔다. 단 몇 분 동안의 일이었다.

“ 가미카제는 멀 했을까? ”

아이들의 이런 빈정거림 속에서, 영식이는 알쏭달쏭한 말을 꺼내었다.

“ 느그들 독일이 항복한 거 모르지야? ”

“.....................”

영식이의 속삭이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를, 미쳐 알아듣지 못한아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계속 이어지는 영식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눈은 점점 둥그래졌다. 일본의 동맹국인 이태리에 이어 독일까지 항복했다는 이 뉴스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런 믿어지지 않는 뉴스를 영식이는 이따금 들려주곤 했는데, 그 집에는 신문도 보고 라디오도 듣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빨랐다.

“ 조선 땅에는 공습을 안 한디야. ”

이 또한 대단한 정보였다. 이젠 밤에도 등화관제를 하면서 방공 훈련을 하는 마당에, 공습이 없다니 웬 말인가? 지금 일본에서는 적기가 매일 같이 공습하고 있으며, 사쿠라 꽃이 재가 될 것이라는 전단도 뿌린다고 했다. 조선도 곧 공습이 있을 것이니, 깊은 산속으로 소개를 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판에 공습이 없다니....

‘ 영식이는 아군 대장을 맡았고,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어서 옥쇄 까지 하면서도, 일본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 걸 보면 혹시 그는 스파이가 아닐까? '

하는 의심까지 생겼다. 오늘 병정놀이에서 아군이 졌던 것도, 그러한 뜻에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이 날 나타났던 적기는 B29라고들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말로만 듣던 그 비행기를 처음 본 것이다. 워낙 높이 떴기 때문에 눈에 잘 뜨이지는 않았으나 굉장히 크고, 빠르고, 높이 뜨는 대단한 성능을 가진 비행기라고 숙덕거렸다.



1) 감시소(監視所)...적기를 감시하여 경찰서로 통보하는 곳

2) 육탄삼용사...러일전쟁 때 폭탄을 안고 가서 전공을 세우며 죽은 세 용사

3) 도고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침한 일본연합함대 사령관의 해군 원수

4) 노기(乃木)...메이지(明治)천황의 죽음을 애도하여 자결한 일본의 육군 대장

5) 삼각기...경보 발령 때 꽂는 삼각형 깃대

6) B29...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력을 자랑한 미국의 폭격기

7) 등화관제(燈火管制)...공습을 피하기 위해 밤에 불을 끄거나 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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