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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일본 여자들은 뜨개질을 잘 하였다. 기꾸장도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있는 듯 했다. 겉뜨기 안뜨기 코늘리기 코줄이기....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이리 얽히고 저리 짜여지면서 나타나는 갖가지 무늬와 모양이 참으로 희한했다. 기꾸장네에 다녀온 후로 호기심을 느껴온 재호도 부쩍 배우고 싶었다. 일본 사람들은 갖가지 털실로 떴지만, 조선 사람들은 무명실이었다. 재호 외할머니가 틈틈이 물레를 자아서 뽑아 내놓은 무명실로, 목도리로부터 시작해서 양말과 장갑을 떴다. 재호는 손재주가 좋고 눈썰미가 있어, 어깨 너머로 배운 뜨개질 솜씨가 돋보여, 계집 아이 같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웬만한 여자애들 솜씨보다 훨씬 나아서 화제 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왕서방의 조끼만은 참으로 힘들었다. 고무뜨기로 500코 한 바퀴만 돌고 나도, 콧등에 땀이 맺히고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두어 달 남짓 뜨고 나니까 봄이 되고, 손에 땀이 나면서 바늘 놀림이 둔해지고 어깨가 뻐근했다. 세 뼘이나 떴을까, 퍽 지루하고 싫증이 났다. 짜장면 싫건 얻어먹기는 이미 틀린 것이다.

“ 더 못 뜨겄어서 그냥 갖고 왔어라우.”

재호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미안했다. 뜨다만 채로 실과 대바늘을 밀어 넣다시피 돌려 드리고 나오려는데, 군애기 엄마가 불러들였다.

“ 많이 떴는디 뭘. 이리 올라온. 애썼으니께 이것 묵고 가야재.”

“ 안 묵을라요.”

“ 앗따, 묵고 가야재 잉.”

손을 잡고 끄는 바람에 방안으로 들어간 재호는 못 이긴 척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군만두가 맛있지만 짜장면도 또한 독특한 맛이 있어서, 세상에 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 노골지리 노골지리 노골노골 지리리리..”

문득 종달새의 지저귐이 들려 왔다. 두 귀가 그 쪽으로만 향했다. 기꾸장네 카나리아보다 더 곱고 이상야릇한 울음소리다. 아니 노래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외톨이라 늘 쓸쓸하게 보여 궁금했는데, 한 마리라야 제 짝을 찾기 위해 잘 울게 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 다 모 했어? 됐어 해. ”

이를 쑤시면서 들어온 왕서방이 뜨다만 조끼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더니 빙긋이 웃었다.

“ 심들어 더 못 뜨겄다고 도로 갖고 왔다요.”

“ 허허. 자리 했어. 자리 했어. 더 떠 해.”

왕서방은 짙은 양파 트림을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재호는 자기도 모르게 혓바닥을 날름했다.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더 이상 뜨고싶지 않았다. 아예 못 뜬다고 사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 저 만리장성 봐 해. 저거 금방이 안 됐어. ”

왕서방은 벽에 걸린 만리장성 사진을 가리키며, 계속 떠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만리장성이 하루아침에 쌓아진 것이 아니며, 수 백년 걸쳐 이루어졌다고 했다. 돌 한 개 한 개가 모여서 성이 쌓아지듯이, 한 코 한 코가 모아져서 언젠가는 조끼가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해다 그만 두먼 못써 해. 찬찬히 해. 맻 년 걸려도 좋아 해.”

왕서방은 자기 허리통이 굵으니까 털실 길이가 아마 만리장성만큼 되어야 할거라면서 껄껄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주먹구구로 어림

잡아도 십만 코는 떠야 할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 재호 너, 종우학 맻 마리나 접었냐? ”

“ 다 접었어라우.”

“ 천 마리? 어림도 없다. 만 마리는 접어야재.”

“.............”

“ 너 ‘삼 년 겨른 노망태기’란 속담 못 들었냐? 노끈 망태기를 맨드는디 삼 년이나 걸렸디야.”

재호는 입을 딱 벌렸다. 노끈 망태기 하나 만드는데 삼 년이나 걸린다니......천 마리만 접으면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돈을 부쳐주기는커녕 재호네 지붕 위에 까치 한 마리도 와서 울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 재호는 이제 까맣게 잊었는데, 만 마리를 접어야 한다니 천 마리의 열 배가 아닌가? 그 많은 종이 학을 어떻게 또 접는다는 말인가? 생각만 해도 손에 땀이 났다. 하물며 만리장성 쌓는 일이나, 만리 되는 긴 털실로 왕서방 조끼를 뜨는 일이 똑같이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어머니도 용화수 떠놓고 만 번은 절을 해야만 할 것이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머리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종우 학, 만 마리는 접어야 한다지...’

“ 지리지리 노골노골 지리리리...”

종달새의 노래가 재호의 생각을 돌려놓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보리밭 들판에서, 지금 구름을 뚫고 하늘까지 오르겠다고 솟아 올라가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어렸을 적 바다 위를 너울거리며 춤추던 갈매기 떼와 까막섬을 하얗게 뒤덮던 왜가리 떼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재호도 저 종달새처럼 구름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갈매기나 왜가리처럼 바다 위를 맘대로 춤추며 날아다닐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면서 뜨개질 감을 다시 들고 만리성을 나왔다.

‘ 십만 코는 떠야겠지. 만 마리는 접으랬지.’

재호의 손은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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