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수리 학급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3학년이 되면서 새로 오신 나가사끼 선생이 담임이 되었다. 빡빡머리에 전투모를 쓰고, 다리에 각반을 친 채 교실에 들어온 선생은 한 눈에 군인이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며 야무지게 다문 입이 사무라이를 생각나게 했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마디 말도 없이, 열병하듯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뚫어져라고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기가 죽었다. 가슴팍까지 닿는 긴 대나무 막대기를 질질 끌고 오더니,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재호의 등허리에다 꼿꼿하게 꽂아 놓았다. 재호는 대나무 막대기 같이 굳어진 채, 꼼짝달싹 못 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 너희들 독수리 알지?”

“ 예 ”

“ 목소리가 작다! ”

“ 예! ”

교실이 쩡쩡 울리는 그 쇳소리에, 아이들은 불안하게 선생님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 새들의 왕이지 않나? 어떻게 왕이 된 줄 아나? ”

“ 모릅니다.”

“ 독수리는 엉성한 나뭇가지로 집을 짓는다. 그 속에다가 보드라운 풀잎이나 검부러기, 짐승 털 같은 걸 깔고 둥지를 틀어 알을 낳는다. 새끼를 까게 되면 날개를 젓는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

“..............”

아이들은 뜻밖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살폈다.

“ 보드라운 것들은 날려서 앙상한 가지만 드러날 게 아닌가? 맨 살이 긁히고 찔려서 새끼들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어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때 말이 뚝 끊어지더니 갑자기 분필 도막이 머리 위를 휙 날아갔다.

“ 빠가! ”

창가에 앉아 있던 종배의 이마를 맞혔다. 보나마나 짓궂은 장난을 했거나, 옆 사람과 소곤거렸을 것이다. 종배는 키만 컸지 속도 없고 눈치도 없어 수숫대라는 별명이 있었다. 아이들이 덩달아 놀랐다.

“ 그리고 말이야. 새끼가 크면 나는 훈련을 시킨다. 어떻게 시키는 지 아나?”

“ 모릅니다.”

“ 음. 새끼를 움켜쥐고 공중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떨어뜨린단 말이다. 새끼는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곤두박질 떨어진다.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어미 새가 내려와, 다시 낚아채듯 움켜쥐고 올라간다. 급강하, 나선강하, 공중회전......이렇게 수없이 훈련시키면 새의 왕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알았나? ”

“ 예.”

“ 우리 일본도 강한 국민이 되어 귀축 미.영을 쳐부수려면, 독수리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 학급은 오늘부터 독수리 학급이다. 알았나? ”

“ 예! ”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의 인상이 틀림없는 독수리였다. 독수리 학급은 첫날부터 독수리 훈련에 들어갔다. 무더운 여름에도 뜨겁게 달아오른 자갈밭을 맨발로 뛰게 하지를 않나,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도 홑바지 차림의 아이들을 윗몸을 발가벗긴 채, 눈 쌓인 들판을 맨발로 달리게 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손을 쑤셔 넣지 못하도록 호주머니를 모두 깁도록 했다.

물론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 쓰게 했다. ‘센고(鮮語)’라고 씌어진 카드를 나누어주었다가, 조선말을 쓰면 ‘센고!’ 라고 소리치면서 카드를 빼앗도록 했다. 많이 빼앗은 아이들은 칭찬을 받고, 빼앗긴 아이들은 의자를 들고 벌을 섰다. 재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교육칙어’였다. 길기도 하려니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고 종아리도 맞고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재호는 마치 학교가 감옥 같아서 가기가 싫어지고, 독수리 선생님이 무서워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수업은 오전만 하고, 오후에는 근로 보국이라고 해서 일하러 나갔다. 깃발을 앞세우고 군가를 부르면서 들판으로 나가, 모도 심고 벼도 베며 김도 매었다. 거머리에게 피를 빨린 것은 예사이고, 또아리 틀고 있는 구렁이를 밟는가 하면, 낫 날에 손가락을 자주 베었다. 산에 올라가서 송진을 따고, 관솔을 베며, 솔뿌리도 캐내었다. 전쟁용 기름을 짠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산에 올라가 병마에게 먹일 꼴을 베는데, 땅벌을 건드려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 땡땡땡, 땡땡땡”

공부하다 말고 비상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며칠만에 한 번씩 방공연습을 했다. 운동장 둘레를 따라 굴을 파 놓고 굴속으로 들어가 눈과 귀를 막았다. 공습이 있으면 눈알이 빠지고 귀청이 터진다는 것이다. 유리창은 공습에 깨지지 않도록 창호지 띠를 발랐다. 미.영을 적국이라 하면서 하필이면 미(米)자 모양으로, 영국 국기 모양으로 붙였을까? 적기의 종류를 올간 소리로 구별하는 공부, 해군들의 수기 신호, 무전기 치는 공부, 지혈을 시키고 붕대 감는 응급 처치법 등 별별 것을 다 배우는데,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머리가 헷갈려 재호는 눈알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가미카제 특공대가 적의 군함을 격침하고 옥쇄했으며, 천황께 충성을 맹세한 일본 군인들이 미국과 영국을 무찔러 승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승리를 하루 속히 앞당기기 위해서 온 국민이 힘을 다하여, 싸우며 일해야 한다고 나가사끼 선생은 목에 힘줄을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전쟁에 이기고 있다는데 왜 이렇게 뒤숭숭할까? 재호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 엄니, 우리 일본이 이기고 있지라우? ”

선생님에게는 물어 보지도 못 하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으나, 어머니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 글씨, 난들 알간디. 시상이 으츠구 돌아가는지...”

점심을 굶게 된지도 퍽 오래 되었다. 배급 나온 쌀 가지고는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으며, 납작 보리쌀이 나오더니 이제는 만주에서 왔다는 콩깻묵이 배급 나왔다. 재호는 이 콩깻묵이 제법 고소해서 많이 먹었던 게 그만 배탈이 났다. 창자가 뒤틀린 것 같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데굴데굴 구르다가 탐진병원으로 업혀 갔다. 식중독이라며 생전 처음으로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다. 탐진병원은 영식이네 큰 형님 병원이다.

영식이는 그 집 막내로, 부산면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형님댁으로 와서 재호네 학교로 전학해 왔다. 첩의 아들이란 말도 있고, 후처의 아들이란 말도 있었는데, 어찌 되었든 형님들과는 부자간처럼 나이 차가 많았으며, 재호보다는 네 살이나 위라고 하였다. 노래도 잘 부르고 말도 잘했으며, 아는 것이 많고 우스갯소리를 잘 해서, 금방 동네와 학교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외아들인 재호도 맏형처럼 듬직한 영식이가 좋아서, 그를 그림자 같이 졸졸 따라다녔다.

“ 공출해다가 즈그들은 쌀밥 묵고, 조선 사람들한테는 콩깻묵 묵으라고 혀?”

영식이가 내뱉은 이 말 뜻을 재호는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 불만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영식이는 왜 우리 일본을 미워하는 것일까?’



1) 교육칙어(敎育勅語)...일본국민의 교육 방향을 나타낸 글.(우리의 국미교육헌장과 같음)

2) 가미카제(神風)...일본의 자살 특공대 비행기

3) 옥쇄(玉碎)...충절을 지키기 위해 깨끗이 죽음

4) 공출(供出)...1941년 국가의 명령에 의해 할당받은 곡식 등을 바치는 것

keyword
이전 04화왕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