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재호네 근처에는 몇몇 중국인이 살고 있었다. 누르스름한 수염을배꼽까지 늘어뜨리고 벽돌을 쌓던 미장이 할아버지, 키보다 큰 괭이를 들고 허리도 굽히지 않은 채 느긋하게 양배추와 양파를 가꾸던 농부 아저씨, 한결 같이 중화음식점을 한 뚱보 아저씨, 반도막 짜리 전족으로 뒤뚱뒤뚱 오리걸음을 걷던 아주머니들...
이들은 돈은 많이 벌지만 쓰지 못하고 방바닥을 파내어 묻어두는 수전노라고 했다. 곰처럼 미련하고, 게을러서 목욕을 안 하는 지저분한 사람들이라고, 일본 사람들은 물론 조선 사람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래도 그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며,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조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만리성(萬里城)’ 앞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저녁 밥 숟갈을 놓기가 바쁘게 아이들은 의례껏 여기에 모여들었다. 처마 밑에 달덩이 같은 전등이 켜져 있는데다가, 지붕 위로 솟아오른 벽돌 연통이 따뜻해서, 특히 겨울밤에는 아주 좋은 놀이터였고, 구수한 중화 요리 냄새가 새어나와 아이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놀았다. 그 앞에는 전봇대까지 있어서 숨바꼭질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 저리 가 해! 씨끄러 해!”
손님은 많은데 영업이 방해되어 견디다 못한 때에는, 왕서방이 나
와서 아이들을 내쫓았다.
“ 띵호와 띵호와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 띵호와 띵호와....”
아이들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달아나곤 했다.
왕서방은 허리가 없는 몸통에 수박 통 만한 머리를 이고, 별로 수염도 없는 주름 잡힌 군턱에, 웃을 때는 보일락 말락 가는 뱁새눈을 하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성을 내지 않은 호인이었으나 ‘시나징 짱골라’ 라는 말만 하면 역정을 냈다. 중일전쟁 때 무기를 버린 채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버린, 비겁한 중국인을 일컫는 일본 사람들의 욕이라는 둥, 아이들 사이에서는 별별 말이 떠돌았으나, 아무도 자신 있게 그 뜻을 풀이하는 아이는 없었다.
“ 재호 이리 온.”
“ 아이고매! ”
‘군애기’ 어머니의 부름에 재호는 몸을 움씰했다. 아이들과 한 패가 되어 왕서방을 골려댄 줄 알았을 것이다.
“ 어여 와 봐. ”
재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만리성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재호가 잡혀가서 혼날 것이라고 수군거리며 제각기 흩어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방안으로 들어가니까 거기에는 뜻밖에도 어머니가 와있었다.
“ 너 왕서방 아자씨 놀리믄 안 돼! ”
“ 난 안 그랬어라우.”
“ 안 그러긴...니 목소리도 들렸는디? ”
“ 아니라.......”
어머니의 꾸지람에 재호는 쥐구멍이라도 찾고싶었다. 어머니는 자주 ‘군애기’네 집에 놀러갔다. 군애기 어머니는 조선 사람인데 중국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아들 하나를 낳았으나 일찍 날린 후 지금까지 아기가 없는 것이다. 그 아기가 ‘군애기’였는데, 이름만 살아서 지금도 ‘군애기 엄니’라고 불렀으며, 그 아기가 살아 있다면 재호와 돼지띠 동갑내기라고 했다. 그래서 재호만 보면 군애기가 생각나서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왕서방은 ‘임금왕(王)자’ 성씨가 아니고, 왕조명과 같은 ‘깊고넓은왕(汪)자’ 성씨라는 것을 가끔 강조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왕조명은 중일전쟁 때 화평을 주장하고 남경에다 친일파 정부를 세웠던 인물이었다. 일본 천하가 된 마당에 왕조명의 이름을 파는 것이, 왕서방에게는 일본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가 쉬었을 것이다.
“ 노골노골 지리지리...”
여느 때와 같이 식당 쪽에서 새 소리가 들려왔다. 군에기 엄니는그 새가 수금조라고 했다. 수금조(漱金鳥)는 진주 가루와 거북이 머릿골을 먹이면 좁쌀만한 금 부스러기를 토해낸다고 했다. 왕서방네는 이것을 거두어서 금젓가락과 왕비의 금비녀를 만들어서 임금님께 바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면 큰 벼슬을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 재호, 너 거북이 한 마리 안 잡아다 줄래? ”
“ ...............”
“ 진주 가리는 많은디, 거북이 머릿골이 없어서 못 멕이고 있거든.”
“ 거북이는 바다에서 사는디요? ”
재호는 일본 동화 ‘우라시마 타로’와 우리 나라 전래 동화 ‘토끼전’을 떠올렸다.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간 것은 자라이고, 우라시마를 용궁으로 태우고 간 것은 거북이가 아닌가? 자라라면 몰라도 그 거북이를 잡아서 머릿골을 낸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그렁께 재주껏 해봐야지. 니 재주를 볼랑께, 한 마리만 잡아온나. 잉. 잡아오믄 금저범 금비네 너도 한나 줄 거여.”
재호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눈부시게 빛나는 금젓가락과 금비녀가 바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어렸을 적 마량리의 푸른 바 다가 또한 눈앞에 펼쳐졌다. 그 바다에 살고있을 거북이를 잡는다면 용궁 같은 집에서 용왕님과 같이 살 게 아닌가?
재호는 엄마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 머라고 하요? 그래 잡아 오것다요? ”
“ 마량으로 가자지 않소? 저 어렸을 적에 살던 데로...”
“ 그러믄 쓰겄다. 잡아만 오믄 니 집도 부자가 되고, 우리 집도 부자가 되고...”
재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음은 벌써 마량으로 가있었다. 이렇게 재호는 한동안 거북이 잡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 새는 수금조가 아니고 종달새였다. 중국 사람들은 종달새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맵시는 곱지 않으나 길들이면 그 울음소리가 아름다워서 기른다는 것이다. 어쩐지 재호의 귀에 익은 소리였다. 한동안 재호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수금조는 원앙새 모양의 황금빛 나는 새인데, 중국 위나라의 전설 속의 새에 지나지 않았다.
“ 노골노골 지리지리...”
정말 금 구슬이라도 굴러 나올 것 같은 소리였지만, 이제는 금젓가락과 금비녀는 재호의 가슴속에 커다란 아쉬움의 구멍 하나만 뚫어 놓고,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
“ 자, 묵어 해! ”
왕서방이 군만두를 가져와서 재호에게 먹으라고 했다. 군만두는 무엇보다도 맛있었다. 군침이 돌고 혀가 날름날름했으나 얼른 손이 가지 않았다.
“ 어서 묵어! ”
재호는 마지못해 먹는 척 했으나, 실은 오늘따라 더 맛있는 것 같았다.
“ 재호 너, 우리 아들 안 할래? ”
아주머니는 가끔 이렇게 넌지시 묻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도
“ 짜장면도 맘대로 묵고, 군만두도 묵고 얼매나 좋겄냐? ”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 재호야, 니 엄니는 따로 있어.”
“.....................”
“ 니 엄니는 갈치 장사여. ”
재호는 두 귀를 막으면서 언짢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 갈치 장사 엄니가 다리 밑에다가 버렸는디, 이 엄니가 줏어다가 키운거여.”
또 판에 박은 듯한 그 말에, 군만두 맛도 잃어버렸다. 재호는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 노골노골 노고르르....”
종달새는 영문도 모르고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이날 밤 어머니와 아주머니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재호의 가슴 한 쪽 구석에 어둔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다. 두 분이 만나면 곧잘 팔자 타령을 했는데, 이 날의 신세 타령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팔리다시피 중국 사람에게 시집을 왔는데, 왕서방이 의심이 많아서 큰돈을 맡기지 않으며, 아이도 없으니 멀리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한다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재호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간 후, 죽었거나 새 장가를 들지 않았겠느냐고 한탄을 하면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가 한다는데,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오히려 시아버지의 신경질이 늘었다고 했다.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잦은 제사에다가, 제사 덕에 이밥은 커녕, 쪼들린 살림에 빚은 늘고, 트집만 잡는 통에 못 살겠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그리고 핏줄도 없이 청상 과부로 고생만 하다가, 최씨네 가문의 귀신이 되어야만 하는가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재호의 가슴속에는, 한 켜 두 켜 의문이 쌓여나갔다.
‘ 도대체 나는 으츠구 태어났단 말인가? 그먼 그 괴기 장수 아줌니가 진짜 엄니란 말인가? ’
1) 중일전쟁(中日戰爭)...1937년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므로 일어난 전쟁
1) 왕조명(汪兆銘)...1940년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끝내고자 남경에 세운 친일파 허수아비 정권의 우두머리
2) 수금조(漱金鳥)...중국 위나라 습유록(拾遺錄)에 나오는 전설의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