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봄기운이 완연했다. 기꾸장네 집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지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도 겨울눈들이 도톰해졌다. 기꾸장이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재호더러 새를 잡아달라는 것이다.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여는 사이에 한 마리가 그만 날아갔다는 것이다. 재호는 기꾸장네 집에 들어가서 기꾸장과 함께 새를 잡는다는 것이 참 흐뭇해서 단숨에 뛰어갔다. 기꾸장 아버지 하세가와는 왕진을 나가고, 동생 요시오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무 위를 쳐다보고 울상이었다.
“ 호르르 호르르 ”
한 마리는 감나무 가지에서, 다른 한 마리는 새장 안에서 뭐라고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감나무의 새는 어서 밖으로 따라 나오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는 것 같았고, 새장의 새는 왜 나갔느냐하며 다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재호는 감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기꾸장 어머니가 말렸다. 다행히 낮은 가지 사이로만 왔다 갔다 해서 쉽게 잡힐 것 같았는데, 그러나 키가 닿지를 않아 안타까웠다.
기꾸장 어머니는 새장을 들고 나와서 감나무 가지 위에다가 걸어 놓았다. 그러면 날아간 새가 멀리 날아가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 호르르 호르르 호르르 ”
재호는 거미줄 채를 가지고 왔으나 어림없었다. 기꾸장 어머니가 어느새 헝겊으로 포충망을 만들어 와서, 간짓대에 달았다. 이제 곧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새는 오히려 약만 올리는 것이다. 힘껏 내리치고 덮치면 잡힐 것도 같았는데, 혹시 죽을까 봐 조심스러워 그러지도 못하고...
끝끝내 새는 기꾸장네 탱자나무 울타리를 벗어났다. 수양버들 가지에서 그네를 타는 참새만 보일 뿐, 카나리아는 어디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요시오는 훌쩍훌쩍 울며 방으로 들어갔으며, 기꾸장의 눈시울에도 이슬이 맺혀있었다.
“ 안 되겠다. 그만 들어오렴. 새장을 저렇게 나무에 걸어 두면 또 찾아오겠지. ”
“ 참말로 찾아올까요?”
“ 찾아오겠지.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
“..............”
“ 호르르 호르르 ”
노래를 하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새 장 안의 새가 계속 지저귀었으나, 한나절이 갔는데도 날아간 새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호는 새장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저 높고 넓은 푸른 하늘로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가 훨씬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꾸장 어머니는
“ 저 카나리아는 밖에 나가면 죽는 거야. 사람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 없지.”
라고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으며, 그런 가정, 그런 국가도 있다고 했다. 기꾸장 어머니는 재호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재호는 머뭇거리다가 툇마루에 올라섰다. 기꾸장이 흐트러진 재호의 신을 바깥쪽을 향해 가지런히 놓았다.
“ 이렇게 놓아야 해.”
재호는 얼굴이 빨게졌다. 기꾸장이 방석을 가져와서 앉으라고 했다. 대나무와 새가 그려지고, 네 귀에 술이 달린 방석인데, 한 번도 방석에 앉아 보지 못한 재호는 어색해서 맨바닥에 그냥 앉았다. 요시오가 킬킬거리고 웃는 바람에 머뭇거리다가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앉았더니 요시오가 또 킬킬댔다. 바늘방석이란 말을 이런 데 쓰는 것일까? 마지못해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기꾸장 방은 어디 있으며, 또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오동나무 책상은 어디 있으며, 그려준 그림은 또 어디에 있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방문은 열어 보이지 않았다.
기꾸장 어머니는 간단한 다과상을 차려 왔다. 많지는 않았으나 팥으로 만든 양갱과 찹쌀떡과 귤..... 그런데 먹거리보다는 오히려 갖가지 모양과 무늬가 있는, 그림 같이 예쁜 쟁반과 접시에 더 눈길이 닿았다. 마치 장난감 같이 아기자기하고 멋있는 그릇 때문에, 음식이 훨씬 맛있게 보였다.
“ 어서 먹으렴. 힘들었을 거야. ”
기꾸장 오누이와 자리를 함께 하여 먹거리를 먹게 된 재호는 참 흐뭇했다. 기꾸장 오누이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더니
“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
하고 찹쌀떡을 집었다. 재호도 얼떨결에 따라 했다. 얼마나 맛있는지 혀까지 꿀꺽 넘어갈 것 같았다. 특히 1년에 한 두 번 먹어볼까 말까 한 귀한 귤 맛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재호는 감나무를 바라보다가 지난 여름 풋감을 몰래 줍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기꾸장이 욕을 하며 뭐라고 종알대지 않았던가? 그리고 왜놈들 쓰레기나 먹느냐며 호통치던 할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다.
“ 너 우리 집 감 주워 갔었지? ”
재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기꾸장은 재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달아오른 재호는 입맛이 뚝 떨어지며, 그냥 돌아서서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 그러면 안 돼. 주워 가면 거지야! ”
재호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벙어리가 되어 버린 재호에게 다음에 이어지는 요시오의 말은 더욱 가슴을 칼로 도려낸 듯 했다.
“ 남의 집 몰래 들어와서, 훔치면 도둑놈이지? ”
“.............”
재호는 돌비석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기꾸장네에 오게 된 것을 은근히 후회하고 있었다.
‘ 그 말 할라고 새를 잡아 주라 했능갑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꾸장 어머니는
“ 용서를 빌어야지. 그러면 용서를 할 테니까....”
아! 그 자리는 우연히 마련된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아뭏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하는 수 없었다.
“ 용서해주십시오! ”
“ 됐어. 앞으론 그러지 마. 말만 하면 거저 줄텐데...”
기꾸장 어머니는 그림 이야기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사양했으나 읽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면서 쥐어 주신 것이다.
기꾸장네 집을 나선 재호는, 한편으로는 무거웠던 짐을 벗어버린 듯 홀가분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짐을 더 어깨에 맨 듯한 무거운 느낌도 들었다.
차례를 보니까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이, 손가락 만한 아이, 우라시마따로 아이, 마쓰야마의 거울, 꽃 피우는 할아버지, 토끼와 악어, 원숭이와 해파리 등 일본 동화집인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천연색 그림이 곁들어져 있어서, 재호에게는 처음 만져본 참으로 귀한 책이었다.
그림책을 폈더니 조그만 종이 쪽지 하나가 뚝 떨어졌다. ‘혀 잘린 참새’를 꼭 읽어보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 쎄 짤린 참새? 해필이면 이걸 읽어보라는 것일까? ’
재호에게는 낯선 이야기였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어려운 말이 없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옛날 노인 내외가 참새를 기르고 있었는데, 빨래를 하기 위해서 쑤어놓은 풀을 참새가 그만 먹어 버렸다. 실수를 했노라고 용서를 빌었으나 화가 난 할머니는 그만 참새의 혀를 잘라 버리고 쫓아 내버렸다. 밖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불쌍한 참새를 찾아 나섰다. 참새는 참으로 감사해서 할아버지를 모셔들인 후 극진하게 대접해 드렸다. 날이 저물어 할아버지가 가실 때에는 선물까지 드렸는데, 무거운 상자와 가벼운 상자 둘 중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나이도 들고 해서 가벼운 것을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께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는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많은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이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어리석음을 나무라면서 자기도 참새를 찾아갔다. 잘 못을 용서받으려고 왔노라 하니까, 참새는 역시 기뻐하면서 할머니에게도 두 선물 상자 중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했다. 물론 할머니는 무거운 것을 골라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너무 궁금해서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보물 대신 아주 무서운 괴물이 나와서 눈을 부릅뜨고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질겁한 할머니는 숨이 차도록 집으로 도망쳐 와서 참새를 원망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잘못을 일러주자, 할머니도 뉘우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
대강 그런 줄거리의 이야기였다. 재호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 기꾸장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러믄 내가 풀을 돌라묵은 그 참새란 말이여? 기꾸장 엄니는 그러쿰꺼정 용서를 비는 참새의 쎄바닥을 짤라 버린 그 무작시런 할망구가 아니여? 그 친절한 웃음 속에다가 비수를 곰쳐논거 아닐까 모르재. 그런담사 날 용서한게 아니재....’
이런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그 때가 언제인데,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그 일을 지금까지 가슴속에 담고 있다가, 끝끝내 사과를 받아 낸 하세가와 아주머니,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