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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종달새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이삿짐이라야 이불보 하나와 몽똥거린 보따리 몇 개였다. 승호는 가로 뛰고 세로 뛰면서 마냥 기뻐했다. 오늘따라 승호의 손티가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경성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의 환한 얼굴이 떠올랐다. 핫바지 저고리 벗어버리고 양복을 입고, 짚신 벗어 던지고 구두를 신었을 것이다. 혹시 안경을 끼었을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벌어서 승호에게 맛있는 빵이랑 과자랑 사탕이랑 사줄 것이고 장난감도 사줄 것이다.

승호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주신 밀기울로 만든 개떡과 쑥 버무러기, 그리고 찐 고구마와 강냉이, 호박 부침개, 누룽지...이런 것을 대바구니에 차곡차곡 넣고, 보자기에 싸서 승호 등에 지웠다. 순덕이는 제가 머리에 이고 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엄마 등에 업혀, 이제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칭얼거렸다.

“ 잘 돼 갖고 고향에 꼭 돌아오소 잉. ”

“ 살기 좋으믄 핀지 하소. 우리도 따라갈랑께.”

“ 쯔쯔쯔. 몸은 무거운디, 갠찮을랑가 모르겄네...”

사돈이 되는 재호의 외할머니 군동댁은, 구부러진 허리를 펴더니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게 딱지 엎어놓은 것 같은 초가집들은 아직도 깊은 잠을 깨지 못하고, 영문을 모르는 개들만 여기 저기서 짖어댔다.

“ 잘들 사시오 잉. 꼭 성공해서 돌아올 것이니께. 사둔 어른 오래 오래 사시오 잉. 안 죽으믄 또 만날 날이 있것지라우.”

동네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말없이 승호네를 배웅했다. 엄마는 승호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무겁게 떼었다. 큰어머니와 고모도 봇짐을 하나씩 이고 앞장섰다.

“ 젠장헐, 안풍 양반은 해도 너무 해싸구만 잉. ”

“ 긍께 말이여. 무신 놈의 웬수를 졌다고, 오늘 같은 날 낯짝도 안 보인단 말여. 누가 최씨 고집 아니랄까 봐.”

“ 아서, 큰아들 징용 보내고, 작은아들 만주로 보내고 홧빙 안 나게 생겼는가. ”

옛 친구인 승호 할아버지를 두고, 나무라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동정하면서 애써 변명해주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 것이기, 핀지 주소는 잘 챙겼것지? ”

“ 근디 재호는 왜 안 데꼬 왔소? ”

“ 금메 말이요. 지 한아부지 고집하고 똑같소. 을매나 심이 신지 뿌리치고 내빼는 바람에 못 데꼬 왔어라우. ”

승호 큰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승호 엄마는 재호 생각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다.

동산 위로 어느새 해가 기어오르면서, 마을을 지켜 내려온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림자가 마을을 감싸 안았다. 가을 들판에서 허수아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토록 귀찮게 굴던 참새 떼들이, 오늘만은 섭섭하다는 듯이 날아가지를 않고, 대나무 밭에서 요란하게 재잘거렸다. 부천떡 외양간의 암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점례네 복슬이가 꼬리를 흔들며 사람들 사이를 바삐 비집고 다녔다. 마을 어귀 장승도 고개를 빼들고 배웅을 하였다.

“ 그래. 느그들도 잘 있거라 잉.”

승호 엄마는 옷고름으로 연방 눈물을 찍어냈다. 승호는 걸리고 수덕이는 업고, 또 한 아기는 뱃속에 안고...

“ 엄니, 왜 울어. 아부지 보로 경성 가는디......”

승호는 자동차도 탈것이며 말로만 듣던 긴 기차도 탈것이다. 마음은 이미 경성으로 가있는데, 어머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승호 엄마는 이 고을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평리에서 흙 냄새 뒷거름 냄새 맡으며 자라, 명월천 개울 하나 건너 수동리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가, 다시 동백마을로 세간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서른도 채 안 된 나이에 아들 둘에 딸 하나를 연거푸 낳고 또 아기를 배었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는 훨씬 늙게 보였다.

비록 천둥지기 가난한 고을이지만, 동백 기름 냄새가 몸에 벨만큼 동백나무가 빽빽한 이 정든 마을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귀 바퀴가 얇고 귓구멍이 큰 탓인지, 귀여린 승호 아빠는 착하고 순하기만 해서, 동네 일 이웃집 일 내 일처럼 잘 해주어 인심은 얻었지만,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줏대가 없어 엉뚱한 일을 잘 저질렀다. 남의 빚 보증 섰다가 일본 사람에게 재산이 홀랑 넘어가 버렸고, 천지개벽하면 벼슬자리나 얻을 줄 알고, 등허리가 휘어지게 일해서 벌어 놓은 것 교주에게 다 털어 바치고, 맏아들 낳자마자 종가 대를 이어야 한다고 형님께 양자로 주어 버리고... 식구들은 느는데 이제는 더 이상 배 골릴 수 없어서, 또 누구의 말을 귀넘어들었는지 이렇게 만주로 훌쩍 떠나는 것이다.

밭에는 보리가 패기는 했으나, 지난 겨울에 눈이 안온 탓인지 깜부기들만 고개를 치켜들고 있을 뿐, 금년 보리 농사도 다 틀렸다고들 한숨이었다. 이렇게 연 삼 년이나 흉년이 든 데다가 공출이다 뭐다 해서, 껍데기까지도 빼앗기고 보니 부황 안 날 사람이 없었다.

마을 뒷산 고개 위에서 잠깐 쉬었다.

고개라야 좀 높은 언덕이지만 원래 이 고개는 ‘할메고개’였다. 등 굽은 할머니를 닮았기도 했지만, 유달리 할미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여기 저기 허리 굽은 할미꽃이 눈에 띄고, 벌써 꽃이 진 채 허옇게 센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할메고개를 마을 사람들은 애써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여기서부터 보리밭 이랑이 이 언덕 저 언덕으로 뻗어 내려가기도 하지만, 보리가 팰 이 무렵 고향을 등진 몇몇 집안들이 이 고개를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승호네도 이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동백마을은 물론 평리 치산리 수동리... 올망졸망 산기슭에 펼쳐진 마을들은 물론, 멀리 바라보이는 천관산 봉우리도 산등성이에 그만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 지리지리 노골노골 지리지리 노골노골”

문득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지저귀었다. 승호는 번갯불처럼 머리를 스치는 종달새 생각에 두 귀가 번쩍 뜨였다. 하마터면 잊어버리고 떠날 뻔했다.

“엄니, 쬐끔만 지달려.”

승호는 보리 밭 고랑으로 재빨리 내리닫더니, 웬 종달새 둥지를 꺼내어 두 손에 받쳐들고 왔다. 아직 잔털이 보송보송한 종달새 새끼들이, 불안한 눈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 아니 왜 새는 갖고 와? 싸게 갖다 둬.”

엄마는 새를 만지면 그릇을 깬다는 둥, 먼 여행길에 재수 없다며 빨리 갖다 놓으라고 성화였다. 그러나 승호는 듣는 척 마는 척 보따리 속에 넣으려고 했다. 순덕이도 신기한 듯이 새끼를 들여다보더니, 엄마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손을 내저었다.

“ 엄니 말 들어. 핑 갖다 두랑께. 이 짐도 무거운디...”

“ 내가 키울 것인디요.”

“ 멋이? 이 소갈머리 읎는 놈 같으니라구....”

“ 금메 말이시, 어여 엄니 말 들어. ”

승호는 큰어머니 고모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승호는 며칠 전부터 아무도 몰래 이 보리밭에 들락거렸다. 종달새 둥지를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서, 다 크면 길러 보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 보리밭은 원래 승호네 밭이었는데, 빚 보증 잘못 섰다가 남에게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으며 지저귀는 종달새는 볼수록 귀엽고 신기했다. 그래서 이 새끼를 가져가서 기를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도로 갖다 놓으라니 엄마가 어찌나 야속한지.

“ 승호야, 이리 갖고 온.”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손을 내민 게 아닌가? 참으로 뜻밖이었다.

“ 갖고 가서 폴자. 경성 사람들은 종달새를 키운다더라.”

“ 멋이라우? 폴아라우? 내가 키울건디라우.”

“ 폴면 보리 맻 말은 살 것이다.”

“ 안 폴라요. 내가 키울 것인디....”

엄마는 아무나 기를 수 없다며, 잘 기를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승호의 눈에서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어서 자라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그 동안 날마다 보살펴 주느라고 정이 들었는데, 누구에게 판 다는 말인가?

“ 노골노골 지리지리 노골지리 노골골골 지리지리 삐찌꾸.”

어미 종달새는 바짝 머리 위에까지 내려와서 별별 소리로 울부짖었다. 제 새끼를 놓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승호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남에게 팔 바에는 차라리 놓아주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승호는 입술을 깨물고 보리밭으로 다시 내리닫았다. 새끼들에게 뽀뽀를 해주며 둥우리를 제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귀중한 보물을 잃은 듯한 허전함이 승호에게 밀려 왔다.

“ 잘 커그라 잉? 다 커서 또 만나 잉? ”

승호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었으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 삐이. 삘릴리 삐이일리리......”

재호는 보리 피리를 만들어 불며 섭섭함을 달래었다.

“ 노골노골 지리지리 지리리 노골.”

어미 새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 그래, 잘 있어. 새끼 잘 키워라 잉.”

“ 삐이 삘릴리 삘릴리.........”

승호는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장거리 신작로까지 십리를 걸어가야 자동차를 타게 되고, 강진읍에서 자동차를 타고 백리를 가야 또 광주에서 기차를 갈아타게 되며, 기차로 천리를 가야, 그 곳 경성에서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이 고을 사람들은 경성 가는 길을 ‘십리 백리 천리’ 라고 했다.

“ 경성 가서 살믄 좋재? ”

“ 경성이 아니고 만주란 말이여, 만주.”

“ 만주라우? 만주는 으덴디라우?”

“경성서 이천리는 더 가. 니 아부지가 경성 와서 지달린단 말여.”

‘ 참으로 멀구나. 그럼 삼천리라니.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멀고 먼 만주로 가는 것일까?’

만주! 간도!

일본 사람들에게 빚지고 손바닥만한 논배미 밭뙈기도 지킬 수 없어, 두 손바닥 탈탈 털고 고향을 떠나기 시작한지 벌써 십 년. 말뚝만 박으면 자기 땅이 되고, 씨만 뿌려 놓으면 저절로 곡식이 익는다는 소문만을 믿고, 그 꿈의 땅 만주로 뒤늦게 승호네 식구들도 무작정 떠나고 말았다.

천지개벽을 한다며 온 식구들 데리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던 때가 엊그제 아니었던가? 거짓말에 속고 헛된 신앙에 취했던 지난 일이 남부끄럽기도 해서, 만주로 떠나가 버린 승호 아빠는, 새로운 땅 간도에서 새 삶을 시작하자고 편지를 냈던 것이다. 승호 엄마는 망설였으나 시국이 어수선하므로 이판사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재호는, 배웅하고 돌아온 어머니로부터 이렇게 사촌 동생들마저 멀리 떠났다는 말을 듣고,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물론 자기를 낳아 주었다는 작은아버지와 어머니도 언제 장맞이할 기약도 없이 멀리 떠났다. 큐우슈로 간 아버지 소식도 영영 없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고모네로 가고...재호는 이 넓은 천지에 외돌토리로 자기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왈칵 설움이 복받쳤다.

“아부지! 아부지!”

생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양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재호의 울부짖음은 허공만을 맴돌다가 되돌아와 가슴에 가라앉았다.

“그렁께, 너도 작은엄니하고 항꾼에 가라는디 왜 안감시로 울긴 울어?”

“아부지 돌아오믄 으츠구 하게라우?”

“니 아부지 틀렸어. 올 사람이 시방까지 소식 없겄냐?”

“듣기 싫어라우! 그런 소린 듣기 싫단 말이라우!”

“니 작은엄니도 널 데꼬 가고싶은가 보더라. 원 고집도. 누가 니 한아부지 안 타겠다할까 봐서...”

재호는 귀를 막으며 또 한 바탕 목을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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