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추위가 물러가고 음력 설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뜻밖에 작은아버지가 오셨다. 두어 달 동안 먼 곳에 가 계셨다는 작은아버지는 혹시 할아버지가 와 계시면 문안도 드릴 겸, 재호도 보고 싶어 오셨다고 하였다.
“ 많이 컸구나. 아부지도 안 계시는디, 엄니 말 잘 듣고 공부도 잘 했냐? ”
“................”
마땅히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텐데, 재호는 아무 말 없이 외면을 했다.
“ 왜 기분 나쁜 일이나 있냐? ”
“ 아니라우.”
“ 한아부지는 안 오셨냐?”
“ 네.”
“ 어무니는 어데 가시고... ”
“ 마에다상 집에요.”
작은아버지는 재호의 손을 끌어당겼으나 재호는 애써 손을 빼었다. 여느 때 같으면 반가워서 매달리며 엉석도 부렸을텐데, 이제는먼 먼 친척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재호가 이제 아그 같지 않구나. 의젓해졌구마.”
“...........”
재호는 혼자 있기가 어색해서 재빨리 어머니에게 뛰어갔다. 빨래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작은아버지가 오셨노라고 알렸으나, 어머니의 표정도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일을 다 마치고 갈테니까 먼저 가라고 했으나, 재호도 어머니의 주위를 맴돌 뿐 혼자 가지 않았다.
“ 지다링께 핑 가란 말이여.”
“................”
작은아버지가 아니고 진짜 아버지라니..... 더욱 정답고 반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낯선 사람 만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집을 겉돌다가 어머니와 함께 들어갔다. 어머니와 작은아버지는 서로 반가워한 척 했으나 재호는 아직도 시무룩했다.
“ 재호가 제법 슬거운디요. ”
작은아버지는 칭찬했으나 재호는 도무지 기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에 바빴으며, 작은아버지는 벽에 걸린 히로히또천황 내외분 사진과 가미타나를 흘금흘금 쳐다보기도 하고, 재호가 그려 붙인 오오사카성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재호는 기림을 잘 기린담서?”
“..............”
“ 손재주가 많다믄서?”
“..............”
말을 붙여 보려고 했으나 재호는 도무지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드니까 점잖아졌으려니 생각했지만, 재호의 얼굴 어느 구석엔지 그늘이 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상을 낸 후 작은 아버지는 희한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 지가 두 달 동안 정읍에 가 있었는디요. ”
정읍 입암산이라면 작은아버지가 도를 닦는 곳이다. 한 해 몇 번씩 갔다 오곤 했는데, 추수가 끝나면 그 곳에서 아주 겨울을 나고 온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어왔기 때문에, 또 그저 그런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안 일 다 팽개치고 도를 닦는 일이 못 마땅해서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티격태격 자주 싸움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 우리 천자님께서 금강산에 댕겨오셨는디요 잉, 금빛을 한 큰 봉황새가 칠선녀들을 태우고 말입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더랍니다. 도를 닦으시는 천자님을 둘러싸고 선녀들이 춤을 추더니 말입니다 잉 , 봉황새가 천자님을 등에 태우더랍니다.”
어머니는 작은아버지의 말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 눈 깜짝할 새에 말입니다,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로 모시고 가더랍니다. 흰 눈이 수북히 쌓이고 바람 끝은 칼날 같이 찬디라 잉, 어느 큰 바우 우에 내려놓더랍니다.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은디 말입니다, 거 참 희한하게도 천자님이 앉은 자리만은 눈이 없고요 잉, 고슬고슬 하더랍니다. 선녀들은 온디간디 없고요 잉, 봉황새만 남아서 춤을 추더랍니다. 바람 소리만 싱싱 나는디, 높은 하늘에서 옥황상제님의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한 달 동안 고대로 앉아서 도를 닦으라고 해서, 해가 뜬지 달이 진지 몰르고 주문을 외우며 도를 닦았답니다.”
작은아버지는 구수하게 이야기를 끌어갔다. 재호도 호기심이 나서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 달포나 수도하고 나니께 봉황새가 말입니다 잉, 품고 앉았던 두루마리 종우 한 장을 냉겨 놓고 하늘로 날아가뿌렀더랍니다. 틀림없이 옥황상제님의 핀지라고 생각되어 종우를 피보았더니 금박이 글자 여섯 자가 써 있더랍니다. ”
작은아버지는 괴나리봇짐 속에서 한지에 써 있는 글씨를 펴 보였다. 붓글씨 여섯 자가 또렷이 씌어 있었다. 어머니와 재호는 물론 읽을 수 없었다.
“ 성수님, 이것 보시오 잉. ‘청무주 향무점(靑無柱 香無点)’ 이란 글자가 요러크롬 써있더랍니다. ”
“ 까막눈이 멀 알겄소?”
어머니는 신기한 듯이 글자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 그래서 천자님도 그 뜻을 깨달을라고 또 한 달을 수도하고 나니께, 두 달이 하로 같이 후딱 지나갔더랍니다.”
“ 긍께로, 그 말이 먼 뜻이라요?”
다그치는 어머니의 말에, 작은아버지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가리키면서 신나게 풀이해 주었다. 푸를 청(靑)자의 가운데 기둥을 없애면 삼월(三月)이 되고, 향기 향(香)자 위의 점을 떼어내면 십팔일(十八日)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돌아오는 3월 18일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 왔다메, 아제는 밤낮 천지개벽이요 잉. 하도 들어싸서 당채......”
“ 성수님, 지금꺼진 다 헛소문이고요 잉, 옥황상제께서 써 주신 이 말씀은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
작은아버지는 그 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마도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고, 그 난리를 피하려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주문을 외우며 수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재산도 필요 없고 권력도 명예도 다 필요 없고, 천지가 개벽되면 새 나라가 세워지며, 새 임금이 나와서 백성들을 편히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전쟁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결국 일본이 망하면 천자님이 새 임금이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작은아버지는 큰 댁 식구 모두가 이 것을 믿고 입산할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재호는 몸이 으스스 떨렸다. 아버지가 계실 적에도 작은아버지는이따금 오실 때마다 그가 믿는 종교를 믿으라고 하였다. 그 종교는 유교, 불교, 선교, 도교의 좋은 점만을 따서 만든 훌륭한 종교이며, 천자님의 가르침대로 주문을 꾸준히 외우면, 옥황상제님의 영력으로 중병도 낫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고 하였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그 옛날 악명 높던 보천교의 한 곁가지일 거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작은아버지는 형님이 답답하다는 듯이 입에 거품을 물어 가며, 포교를 열심히 계속하였다.
그 날 작은아버지는 하룻밤을 묵었다. 재호와 함께 잠을 자는데, 자리에 눕기 전에 작은아버지는 벽을 향해 합장을 하며 수 십 번 큰절을 하더니, 곧추앉아서 주문을 외웠다. 개구리 우는소리 같기도 하고, 염불 소리 같기도 하고. 재호는 잠이 오지 않아서 엎치락뒤치락 하는데, 자꾸만 봉황새가 눈앞에 어른거린 것 같았다.
봉황새는 오동나무에 깃들이며, 대나무 씨앗인 죽실(竹實)을 먹고, 예천(醴泉)이란 물을 마신다고 했다. 깃과 털이 오색이며, 다섯 가지 소리를 내는 상서로운 새라고 했다.
얼마만큼 잤을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숨이 답답해서 눈을 뜨니까 작은아버지가 자기를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재호의 얼굴을 뒤덮은 수염에서 노린내가 났다. 재호는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작은아버지는 잠결에도 더욱 힘을 죄고 있어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 이 작은아부지가 진짜 아부지라니....그런디 작은아부지는 그런 말 한 마디도 없으니....’
새벽닭이 몇 번 울었을까, 또 작은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어젯밤과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이제 재호는 무서움증이 들었다. 작은아버지가 실성한 사람 같았다. 이러다가 봉황새처럼 자기를 엎고, 깊은 산 속으로 휙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났다. 오줌이 마렵고 다리가 떨려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어머니에게로 갔다. 어머니는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 품에 기어들었을 텐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서 날이 새어 작은아버지가 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설친 탓인지 제호의 머리가 몽롱했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아침상을 받을 때 어머니는 한참 망설이더니 입술을 열었다.
“ 재호도 데꼬 가시오 잉. ”
“.............”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어머니의 말에, 작은아버지는 놀라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며
“ 재호도 다 컸은께 알 건 다 알고라우 잉, 법으로 아들이재 내
피겄소. 지 아부지 살아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디, 이만큼 키웠으니께 항꾼에 가시오. 설마 조상님들 제사 안 지내주겄소?”
“....................”
작은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을 못한 채 조용히 밥숟가락을 놓았다. 재호는 또 오줌이 마려웠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오줌이 나오질 않았다. 이젠 방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어머니와 작은아버지가 무슨 말을 더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재호는 만리성 앞 전봇대에다 몸을 바짝 붙이고 집 쪽을 바라보았다. 작은아버지는 안색이 변해진 채 집 밖으로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총총걸음으로 떠나갔다. 왜 젊은 분이 솥 수세미 같은 수염은 길렀는지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
“ 재호야, 재호야! ”
어머니는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재호를 불렀다. 재호는 어디론지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덩달아 눈물이 앞을 가려 이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아버지는 재호를 형님께 양자로 보낸 후, 또 두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도 작은어머니는 임신 중이라고 했다. 식구는 느는데 살림이 기울어지고 작은아버지는 의지할 곳이 없자, 어떤 종교에 깊이 빠진 후로 집 안 일을 돌보지 않았다.
1) 히로히또(裕仁)...일본의 왕
2) 오오사카성(大坂城)...일본의 옛 궁성
3) 가미타나(神棚)...일본 시조의 신주를 모신 감실,닫집
4) 옥황상제(玉皇上帝)...도가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
5) 천지개벽(天地開闢)...하늘과 땅이 열림(큰 변화)
6) 보천교(普天敎)...강일순을 교조로 하느 옳지않은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