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 / 포토그래퍼 림
* 지완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패션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시각적으로 예쁜 걸 어떻게든 모으는 성격이었어. 그게 이어져서 내 취향을 시각화 하는 걸 일로 삼자고 마음을 먹었고. 부모님은 정말 상냥하고 관대하신 분들이지만, 반대를 꽤 많이 하셨지. 아버지는 전자공학, 어머니는 교육 관련 일을 하셨고, 집안 사람 중에서도 예체능에 몸 담은 사람이 안 계시고. 공부하라고 학교 보내놨더니 대뜸 애가 미술을 하겠다고 하니 많이 놀라셨던 것 같아. 내가 또 수학을 잘 못했어서 ‘아, 얘 공부하기 싫어서 회피하려고 이러는구나.’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물론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막 입시 미술을 못하진 않았어(웃음).
근데 막상 해보니 입시 미술을 그리는 게 너무나 싫었어. 창작이 아니라 그냥 결과물이 이미 정해진 걸 따라가는 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 그래서 그만두고 이것저것 건드려보다가 고3때 우연히 크레이그 그린 2017 fall 맨즈웨어 컬렉션 쇼를 보게 됐어. 와, 이런 게 있구나. 보자마자 머리를 강하게 맞은 느낌을 받았달까. 이런 게 진짜 아름다운 것일 수 있겠다. 예쁜 옷에 쭉 관심이 있긴 했지만, 옷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쇼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
부모님이랑 입시 문제로 충돌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고등학교 2-3학년 내내 몸이 안 좋았어. 맹장이 터져서 한 달 넘게 입원하느라 모의고사도 못 치고 그랬거든.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 ‘얘는 하고 싶은 거 시켜야겠다.’ 싶으셨던 것 같아. 억지로 시킨다한들 몸이 못 받아내는구나. 이해해주신 거지. 다행이도 지금은 굉장히 좋아해주셔. ‘너는 손재주가 없어 보여서 처음에 옷을 하고 싶다고 할 때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 하는 거 보면 아주 기특하고 좋다.’ 고 말씀해주실 때면 참 좋아.
그러다보니 그냥 이거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든 거지. 솔직히 처음 시작할 땐 지금처럼 열망이 아주 크지 않았어. 할수록 더 좋아하게 됐지.
불리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디자이너’ 라는 표현을 스스로에게 붙이기엔 난 아직 너무나 배워야 할 게 많은 사람이라 표현이 좀 과분하게 느껴져. 그나마 옷을 만든다는 표현이 가장 덜 부담스러워서 ‘옷을 만드는 사람’ 정도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아.
전 리버풀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롭을 좋아해. 클롭 감독이 리버풀 부임 후 첫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노멀 원(Normal One)’이라고 칭했거든. 우승을 도전하는 클럽의 수장으로 온 만큼 모두가 특별함을 기대하고 바라봤을텐데, 그런 기대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오히려 자신은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 일류 축구 감독인데도, 자기가 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버스를 운전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여느 직업들과 같이 평범한 일이라는 거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매번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해야할 일을 묵묵하고 솔직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참 좋았어.
자신감이 넘치는 것과 남들과는 다른 것을 한다고 으스대는 건 엄연히 다르잖아.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겠지. 내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아예 안 하지 않았을까? 항상 노동자의 마음으로, 매 순간 비겁하지 않게 선택하며 일하고 싶어. 내가 만든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살면서 비겁해질 순간이 너무 많잖아.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약간 켕기는 것이 있으면 괜히 지기 싫어서 자기 변명을 할 때도 있고. 스스로가 난 매사에 최대한 곧게 말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옷을 만들 때 초기 구상을 끝마치고 나면 ‘디자이너 누구의 것과 비슷하다, 혹은 아름답지 않다, 입고 싶지가 않다‘생각이 들 때가 있어. 스스로가 아는 거지. 자기가 만들어낸 것인만큼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모를지언정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타협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럴 때마다 ‘아니야, 이거 다시 해야 해. 제대로 된 거 아니야.’라고 되새기며 채찍질하지. 정말 힘든 일이지만 매 순간 떳떳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비겁하면 멋있지 않잖아.
난 감사하게도 만들고 싶은 게 항상 있었어.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지겹고 고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쩌면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 노동이라고 생각해야 의무감이 생기기도 하니까.
언젠가 일에 흥미가 떨어지는 날을 생각하며 두려웠던 적이 있어. 그 땐 또 다른 일을 하면서 먹고 살겠지 하면서도 섬칫한 기분이었지. 그러다가도 군에서 이런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을 굳게 먹게 되더라고. 한 달에 옷을 두 벌을 만들면, 1년에 많아봐야 스물 네 벌이야. 죽기 전까지 정말 꾸준히 만들어도 천 벌 남짓 만들 수 있을텐데…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고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인터뷰어 열 / 포토그래퍼 림
2024.10.08 지완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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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