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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네이버 Apr 30. 2024

그날 만성통증 환자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화가 난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주기

"진짜 엿같죠?" 

응급실 앞에 휠체어에 앉아 고개조차도 못 들고 있는 한 50대의 마오리 환자에게 말을 건넸다.

처음에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말을 건네면서도 그녀의 반응이 두려웠다.


사실 이 환자는 전 날 밤에 갑자기 찾아온 심한 통증 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찾아왔던 사람이었다.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고개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런 통증을 참고 무려 6시간을 응급실에서 기다렸다. 뉴질랜드 병원의 좋은 점은 모든 치료가 다 무료다. 하지만 안 좋은 점은 마냥 기다려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1-5로 분류하는데 대부분 4,5로 분류된 환자들은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


내 아이들도 열이 펄펄 끓어서 병원 응급실에 자주 갔던 적이 있다. 그러면 항상 3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렸다. 결국 기다리다 기다리다, 열이 떨어져 퇴원하길 반복했다. 그 후, 웬만하면 응급실을 가지 않았다. 열이 40도가 되어도 부루펜 먹이고 재우곤 했다.


환자 비밀 유지로 인해 환자와 관련된 개인 정보 등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무튼, 이 환자는 자그마치 6시간을 기다린 후에 결국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제발 참을 수 없는 이 통증의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의사는 제대로 진찰도 하지 않고는 "음, 응급실에서는 별로 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고, 나중에 주치의 (GP)를 만나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사실  이 환자는 3년 전에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부터는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 왔다. 2년 전에 MRI와 CT 스캔을 했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 후 그녀는 만성 통증(Chronic Pain)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의사는 그녀가 몸에 심한 통증이 있다고 말하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 제대로 진찰을 하지 않은 것도 화가 났지만,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 의사의 태도에 더 열이 받았던 것이다. 사실 뉴질랜드 의사들은 대부분 정말 친절하다 (반면 한국 의사들은 불친절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날 그녀를 진찰했던 의사도 사실은 괜찮은 사람인데, 그날만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화가 무척이나 난 환자는 그때부터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F**king...." 그녀의 욕설이 응급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녀는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한 것이다. 그러자 응급실 경비원이 쏜살같이 달려왔고 그녀를 응급실 밖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이 와중에도 화가 난 그녀는 경비원 중에 한 명을 치고 때렸던 것이다.

 


그 당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사무실에 앉아서 다른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수간호사(ACNM)가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니 "지금 이 환자가 응급실을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네요. 그러니 한 번 잘 타일러 주시고, 버스표를 주면 집으로 돌아갈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주 간단했다. '버스표 주기' '환자 집으로 돌려보내기'

사실 딱 이것만 하면 됐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정말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슨 말을 하지?"

"도대체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 한 첫마디 말이 "진짜 엿같죠?"라니!

영어로는 "wow, what a f**king situation"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 것 같은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짜, 당신이 화가 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얼마나 좌절스럽고 실망스럽겠어요"

"진짜 죽을 것 같이 아파서 왔는데, 무려 6시간이나 응급실에서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요?"

"아무도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으니 정말 속상하시죠?"


천천히  그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 것 같은지를 나의 말로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한다. "f**king doctor..." "이런 개 같은 의사를 봤나.. 이런 개같이 피검사도 안 하고, 씨발 엑스레이도 안 하고..." 하며 언성을 높이며 욕을 해댄다. 그러자 응급실 밖 주차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멀리 서 있던 경비원이 달려온다.


그때 나는 눈짓으로 경비원을 향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다 괜찮습니다. 제가 다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참 동안 그녀가 퍼붓는 욕을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충분히 당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 것 같네요. 우선 버스표를 주라고 부탁받았으니 버스표를 놓고 갑니다. 하지만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다시 올게요"하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이미 환자도, 의료진도 당시의 상황 때문에 기분이 상한 상태였기에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엿봤다. 한 30분 후쯤에 수간호사와 담당 의료진들을 불러 모았다. 전날 그녀를 진료했던 의사는 의미 퇴근을 하고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의사와 수간호사, 담당 간호사 그리고 마오리 환자를 지원하는 스태프들과 함께 미팅을 가졌다. 사실 이런 미팅에서 사회복지사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의학적인 지식이 딸리는 내가 의사를 이겨먹을 수는 없었다.


"지금 환자는 피검사도 안 하고, 엑스레이도 찍어보지 않은 것에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의사가 말한다. "특이 사항이 없으면 피검사나 엑스레이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수간호사가 맞장구를 치며 말한다. "진찰한 의사의 기록에 보니 no red flag이라고 되어 있네요, 특별히 문제점을 못 찾았다는 겁니다".


역시 의학적으로는 그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아는 게 있어야 맞받아 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의사 앞에서 작아진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맞습니다!  2년 전에 MRI도 하고 CT 스캔도 해서 원인도 찾지 못했습니다. 인정합니다. 만성 통증 환자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지난 2년 동안 만성 통증 환자인데 단 한 번도 병원 응급실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 환자가 잘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 어제는 응급실에 왔을까요? 정말 죽을 만큼 아프고, 예전과는 다른 통증이 있어서 아닙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서, 환자의 대변인이 되어주려고 했다. 다행히도 나의 이런 노력이 받아들여져, 응급실 최고 책임자인 의사가 환자를 다시 진찰하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환자를 설득해서 다시 응급실에 접수를 하도록 했다.



환자는 화가 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듣고 다시 응급실 접수창구에 갔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접수를 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 모두를 기겁하게 만든 한 문구가 응급실 환자 정보에 올려져 있었다.


병명: Aggressive Behaviour (공격적 행동)

아니, 환자를 접수할 때 병명을 '공격적 행동'으로 적어놨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달려가 따져 물었다. "이거 아닙니다. 무슨 이 환자의 병명이 공격적 행동입니까?". 때때로 마오리 환자나 이민자들은 이런 차별을 겪는다.


아무튼, 그 이후 나는 다른 일이 생겨 바쁘게 하루를 보냈고, 퇴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이 환자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했다. "혹시 바로 퇴원했나?"

곧바로 환자 정보를 살펴봤다.


놀랍게도 이 환자는 바로 그날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을 했다.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그날 환자는 CT 스캔을 받았는데, CT 스캔에 뭔가 이상한 것이 발견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응급실 최고 책임자였던 의사는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고, 신경외과 전문의는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던 것이었다. 새롭게 발견된 그녀의 병명은 Cerebral aneurysm (뇌동맥류)였다.


https://wellbeingways.org/%eb%87%8c%eb%8f%99%eb%a7%a5%eb%a5%98/


나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병명이었다. 다급하게 입원이 결정이 되고, 바로 그다음 날 수술이 잡혔다.


곧바로 나는 그녀가 있는 병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굿네이버입니다. 사회복지사, 저한테 엄청 욕하며 말한 것 기억하시죠?"

약간 농담조로 말을 했다.


그러자 전날 울그락 불구락 하며 화를 내던 여성은 온데간데없고,

천사 같은 미소를 띠는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럼요! 정말 어제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신 아니었으면, 저 집에 가서 죽었을 겁니다.

당신이 제 생명을 살렸습니다!!!" 하며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한다.


그렇게 한 15분간을 한 참 동안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진짜, 어제 그 의사 고소하고 싶지 않으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러니하다. 병원에 일하면서 의사를 고소하라고 말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병원에서는 그렇게 일하라고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있다.


"괜찮습니다. 우선은 제 치료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잘 치료만 받으면 되죠!"

 

환자나 환자 가족이 괜히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의사와 의료진에 잘 들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실망감과 좌절감 때문이다.

그들이 고소하겠다고 우격다짐하는 이유도 다 실망감과 좌절감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 실망감, 좌절감, 그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면,

그들은 늘 순한 양처럼 변한다.


그 환자는 마지막으로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며

나를 꼭 감싸 안았다.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일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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