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봉빙봉 여기는 응급실 #3] 내일의 일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취익취익~~ 빨리 들 것을 들고 주차장으로 와 주세요!!! “
다급한 목소리가 응급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의 스피커폰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있나?” 하며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간호사(ACNM)가 내가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말한다.
“아마 알고 있겠지만, 두 명의 환자가 Resus Bay (긴급 심폐 소생술을 하는 곳)로 오고 있습니다.
한 명은 목이 졸린 환자고요, 다른 환자는 이제 곧 사망할 것 같습니다 “
나는 곧바로 함께 일하고 있던 동료와 상의를 했다.
“레베카 (가명), 네가 목이 졸린 환자를 맡고, 내가 죽어가는 환자를 맡으면 어떨까?”
순식간에 누가 누구를 맡을지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은 긴급히 대응해야 한다.
알려드립니다.
환자의 비밀 보호 유지 문제로 환자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각색하였으며,
사건 또한 다시 재구성하였습니다.
응급실에 근무하며, 참 많은 환자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있다.
그래서 늘 죽음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응급실로 급하게 실려온 환자는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 밖 주차장에서 실려온 환자였다.
그 환자는 너무나 어린 20대 여성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암 환자였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날따라 몸이 더 안 좋아져서 응급실에 찾아왔지만, 입구도 넘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쓰러졌던 것이다.
“Hi I am 굿네이버, 사회복지사입니다”
이미 환자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기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가족들에게 찾아가 첫인사말을 건넸다.
늘 ‘Hi’라는 말을 할 때마다, 참 어처구니없는 표현이라 느껴진다.
죽어가고 있는 환자 앞에서,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Hi’라니….
이런 환자 가족을 대할 때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이 된다.
사실 그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나도 20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물론 좋은 관계로 있던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어떤 말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때론 말이 아니라 옆에 있어 주는 것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혹시, 병원 원목이나, 아니면 신부님을 불러드릴까요?”
심폐 소생실에 가득 차 있던 무겁고, 슬픈 공기를 가르며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환자의 어머니도 간신히 입을 떼며 말했다.
다시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뚜~뚜~뚜” 하며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알리는 소리만이 간혹 들리곤 했다.
그러던 중, 의식을 잃은 채 죽어가던 환자가 방 안에 가득했던 침묵을 깨고 뜻밖의 요청을 했다.
“콜라가 마시고 싶어요 “.
아니, 지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콜라라니.
누가 들으면 제정신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수술이라도 해야 할 텐데.
뭔가라도 해서 살려야 할 긴박한 상황에서 콜라라니!
마지막 순간 그녀가 택한 것은 콜라 한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하길 원하지 않았다.
수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나는 황급히 사무실로 달려와, 지갑을 챙겨 자판기로 달려갔다.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콜라가 나왔다.
내 사비를 털어 콜라 한 캔을 들고 환자에게 달려갔다.
“콜라 여기 있습니다…. “
’취~익‘, 콜라 캔 뚜껑을 따서 환자에게 건넸다.
환자는 힘겹게 콜라를 들이켠다.
힘겹게 콜라를 들이켜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흐느껴 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차마 소리 내어 울 수 없었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20대 젊디 젊은 여성 환자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날, 나의 환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 앞에서 콜라 한 캔을 선택했다.
그 콜라 한 캔은 누군가에게는 $3달러 밖에 되지 않은 하찮은 것일 수 있다.
그 콜라 한 캔은 누군가에게는 당뇨의 주범이 되는 불량 식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날, 내 환자에게 그 콜라는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자,
그녀가 선택한 최상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이었다.
Try not to add more years life,
but add more life to years
삶에 더 많은 해를 더하는 것보다,
삶에 더 많은 삶을 더하려고 노력하라
에드워드 J 스털링 from Chicago Tribune 1957
https://wellbeingways.org/99881234-2/
이 환자의 죽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죽음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그 사실을 잊고 살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언제, 어디에서 나에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 다음에서 새로운 서비스 [틈]을 시작했다. 한 주간 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브런치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음 주제는 [내일의 일]이다. 나는 어제 떠나보낸 내 환자를 생각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의 일이나 더 충실하게 잘하자!”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 어떻게 알겠어?”
갑자기 [오늘의 일]이라고 하니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내일의 일]이라는 주제를 곰곰이 생각하며, 물었다. ‘내일의 일이 뭐지?’
한국은 특히나 일 중심의 사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직장인은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들은 아이 등교 준비시키랴, 출근 준비하랴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수북이 쌓여 있는 설거지와 온갖 장난감과 남편 속옷이 거실 한 복판에 너부러져 있다.
정말 해야 할 일이 끝없이 밀려온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오늘의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긋즈긋한 일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일은 바로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것을 말한다.
‘Adding more years to life’ (삶에 수명을 더 하는 것)이 아닌
Adding more life to years (인생에 삶을 더하는 것)것을 말한다.
오늘 하루를 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사는 것,
단지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먹고살기 위해 하루를 분주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기쁘고 즐겁고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진한 커피 향이 나는 모카 한 잔을 마시며 사랑의 대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과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고, 그네를 타는 소소한 기쁨,
‘눈물의 여왕 드라마를 보며 찐한 감동을 느끼는 시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며 가족의 정을 나누는 시간,
그런 오늘의 일이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일의 일을 위해 나는 그러한 소소한 오늘의 행복을 희생해 왔다.
늘 가족은 뒷전이었고, 나를 돌보는 것도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러나 어제 떠나보낸 환자는 다시 한번 내게 ‘Adding life to years’의 중요함을 알려주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