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는 설계자가 아니라 감정 번역가다
한때 나는 ‘기획’이란 논리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정하고, 리소스를 배분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
누가 봐도 이해되는 구조와 흐름이면
그게 곧 ‘좋은 기획’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논리적으로 완벽해도, 내가 만든 기획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내가 기획한 것인데도
"왜 이렇게 낯설지?", "이게 정말 나의 설계인가?"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결국 그 이유는 하나였다.
감정이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해?’라는 감정의 물음에
‘이게 효율적이니까’라고 대답하는 순간,
이미 그 기획은 사람의 마음을 설득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흔히 기획자를 설계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획자는 설계자가 아니라 감정 번역가다.
기획은 숫자와 프로세스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어떤 감정을 고려했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설계되었는가,
사용자는 어디서 머뭇거릴까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층이 쌓여 있다.
내가 만든 기획이 왜 자꾸만 어긋나는지,
왜 전달할 때마다 상대가 고개를 갸웃하는지,
그 이유는 대부분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가 빠져 있어서다.
기획자는 감정의 움직임을 설계해야 한다.
말하지 않는 표정,
질문 속에 숨어 있는 불안,
잠시 머뭇거리는 공백을 읽어내야 한다.
그 공백 속에서 기획의 방향이 생긴다.
어떤 공간의 동선이 잘 짜였다고 느껴질 때,
그건 단순히 동선이 효율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의 머뭇거림과 불편함이 사전에 번역되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기획의 본질은 그 지점에 있다.
감정의 흐름을 눈치채고,
그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설계로 번역해내는 것.
이제 나는 기획을 할 때 먼저 이렇게 묻는다.
“이 기획은 누구의 감정을 안심시킬 수 있을까?”
“이 흐름 속에서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이 기획은 내 감정까지도 설득하고 있나?”
기획자는 결국 ‘논리의 설계자’가 아니라,
감정의 움직임을 읽고 말로 풀어내는 통역자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내 기획은 나에게도 편안한 구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