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흐름은 숫자 밖에 있다
우리는 이제 대부분의 판단을 ‘데이터’로 한다.
수치, 클릭 수, 체류 시간, 이탈률.
기획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숫자가 말해주는 시대다.
그래서 나도 그랬다.
내가 만든 기획이 ‘성공적’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 대시보드부터 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지표가 ‘좋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나는 이상하게 그 기획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사용자 수는 늘고,
클릭률은 개선되고,
시간당 효율도 올라갔다.
그런데 왜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을까?
그 이유는 하나였다.
데이터는 ‘흐름’은 보여주지만 ‘감정’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클릭은 했지만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오래 머물렀지만 피곤함이 쌓였을지도 모른다.
반복 사용했지만 만족이 아닌 습관일 수도 있다.
데이터는 결국,
결과를 남긴 ‘행동’만 기록하지,
그 행동 이전의 ‘감정의 경로’는 기록하지 않는다.
기획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건 수치가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감정적으로 추론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무시한 채
"데이터가 이렇게 말하니까"라는 이유로
기획을 반복하고, 확신하고, 밀어붙인다.
그때부터 기획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숫자의 재현에 가까워진다.
나는 그런 기획이 싫었다.
성과는 나왔지만,
사람은 떠나 있었고,
‘효율’은 올랐지만
‘이유’는 불명확한 기획.
기획은 숫자를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반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반응은 늘 데이터 밖에 있다.
처음 본 순간의 인상,
스크롤을 멈췄던 찰나의 감정,
다시 떠올랐을 때의 잔상.
이건 로그로 남지 않는다.
하지만 기획자는 그걸 상상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숫자를 본다.
하지만 숫자만 보지 않는다.
그 숫자가 가리키는 마음의 흐름,
보이지 않는 망설임,
말하지 않는 피드백을 읽어 내려 한다.
좋은 기획은 데이터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해석하는 일이다.
기획자는 감정의 누락을 눈치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감정을 놓치면,
기획은 아무리 정확해도
어딘가 낯설고, 어딘가 불편해진다.
기획의 본질은,
숫자가 말하지 않는 그 사이를 읽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