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감정을 인정하는 리더의 성장

by 심지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내가 내 입으로 꺼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도, 그걸 인정하면 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리더라는 자리는 묘한 곳이다.
강해 보여야 하고, 감정을 조율해야 하며,

동시에 구성원의 불안을 흡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내 감정은 언제나 한순간 뒤로 미뤄졌다.
회의실의 공기, 팀원의 표정, 전달받은 수치들, 클라이언트의 피드백...
모든 것을 먼저 헤아리고 나서야 비로소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감정은 눌린 만큼 쌓였고, 쌓인 만큼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역할은 나 자신을 지우는 자리여야만 할까?’
리더라는 자리는 나를 버리는 자리가 아니라,
내 안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억울함, 두려움, 초조함, 안도, 기쁨.
단순히 참거나 흘려보내지 않고, 감정 하나하나에 머물며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이,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구성원과의 대화에서, 프로젝트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에,
예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판단이 가능해졌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타인에게 약함을 인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더 큰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겠다는 용기이고,

그 용기로 더 넓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리더십은 강함보다 깊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일한다고, 더 많은 책임을 진다고,

더 앞에 나선다고 해서 진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리더는 자기 감정을 돌보는 사람이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실수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늘,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은 내게 큰 자유를 줬고,
그 자유가 결국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마침내, 나는 리더의 자리에 나를 지운 채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을 인정하는 리더가 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나는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기록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본다.
리더가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조직에도 진짜 변화가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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