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가 건물의 도면과 계약서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서류 너머에 있는 진짜 일은, 종이에 적혀있지 않다. 그 일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새벽 2시, 전화벨이 울린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전화가 아니다. "옆집 사람이랑 싸웠어요. 와주세요."
이런 전화가 오면, 많은 운영자는 '내 업무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뿌리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에 있다는 것을.
벽의 소음은 기술로 막을 수 있지만, 마음의 소음은 기술로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진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의 소음이었다.
나는 수십 개의 코리빙(Co-living) 공간을 총괄한 적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문제는 공용 주방을 더럽게 쓰는 한 입주민 때문이었다. 규칙을 만들고 벌금을 붙여도 소용없었다. 문제는 '규칙'이 아니라 '관계'에 있었다.
나는 그와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규칙을 설명하는 대신, 그의 하루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지쳐 있었고, 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문제의 본질은 게으름이 아니라 '소진'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에게 작은 간식을 챙겨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의 관계가 바뀌자, 그의 행동이 바뀌었다. 주방은 저절로 깨끗해졌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공간도 얻을 수 없다.
이 일은 입주민뿐만 아니라, 건물주의 마음을 맡는 일이기도 하다. 한 건물주가 나를 찾아와 하소연했다. "밤에 잠이 안 와요. 공실이 날까 봐, 건물이 낡을까 봐 불안해서요."
그에게 필요한 것은 월별 수익 보고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고 대신 짊어져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그에게 매주 사진을 찍어 보냈다. 깨끗하게 청소된 복도, 새로 생긴 가게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입주민들이 라운지에서 웃고 있는 사진들을.
숫자가 아닌 풍경을 보여주자, 그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우리가 맡은 것은 그의 건물이 아니라, 그의 '불안'이었던 셈이다. 그 불안이 안심으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의 일이 끝난다.
사람들은 평당 가격으로 건물의 가치를 매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가치를 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가. 그곳을 소유한 사람이 평온한가.
아무리 좋은 자재로 지은 건물이라도, 그 안의 사람들이 불행하다면 그 가치는 지속될 수 없다.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공간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운영의 핵심은 하나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우리는 언젠가 그 건물을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안에 남는다. 한밤중에 걸려온 다급한 목소리,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안도하는 표정, "고맙다"는 따뜻한 한마디.
이 모든 것이 이 일의 무게이자 보람이다. 나는 오늘도 건물이 아닌 사람에게 출근한다. 결국 이 일은, 사람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편이 되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