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할아버지의 어느 새참을 엿본 날
새참
한두 번 속는 것도 아닌데 또 또 저 갈대의 날갯짓에 솔깃하다
챠라악챠라악
흩쳐주는 갈대의 하얀 부채질에 또 또 염치없는 넙덕지 자리를 찾게된다
자꾸 무거운 허리 들어 먼 산 바라보는 내가 염치없다
가볍게 불어주는 선들바람에 고운 춤을 추는 갈대꽃 옆으로
제법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당신이 옆구리에 소쿠리를 안고 뒤뚱뒤뚱 걸어온다
태양은 뜨겁고 바람은 선선하고 누런 이삭은 수줍어 고개를 숙이고
논둑 붉은 여귀는 한자리 꿰차고 앉아 몸을 흔드는 것이
당신의 젊은 날이 자꾸만 스쳐 지나가는 것은 고생만 시킨 나의 여러움일 터
소쿠리 속 익어가는 열무지는 눈요기로도 에소시롭고
냇가에 담가 놓아 물소리까지 훌려 담은 막걸리를 들고 오는 당신이 고맙네
내올 것이 없습디다 익은 열무지에 국수 잠 삶아 왔는디
자셔보시오잉 소쿠리 상포를 여는 당신의 손이 더 미안하고
보세나 시커멓고 주름진 내 손만 무참시럽네
뭔 소리다요 세월 이기는 장사 있다요 그 손이 있었응게 우리 안 살았소
뚝허니 던지는 한마디가 나를 든든허니 허고 좋은 막걸리는 속을 든든허니 허네
바람이 실어 오는 갈대꽃의 살콤한 속삭임 바람결에 흔들리는 아내의 흰 머리칼
기우는 술잔 우로 살며시 던져오는 여귀의 눈웃음 절로 위로가 되고
한잔 두잔 기울어지는 막걸리에 이만한 기쁨이 또 있겠는가
탁배기 한잔에 내 무릉도원을 다녀왔으니 이제그만 피나 잡으러 감세
황금빛 들녘 행복이 익어 갈 때면
늘 찾아오는 붉은 여귀도 은빛 갈대도 내 평생의 벗이로세
저무는 석양에 내 세월도 물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