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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 Nov 12. 2023

중2, 미에 눈을 뜨다(feat. 짝사랑으로부터 시작)

K장녀의 반항

언제부터 용돈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중학교 때는 용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배고프면 뭐 사 먹으라고, 급하게 필요한 책이 있으면 사라고, 그러라고 주신 용돈이었다. 요즘도 가장 무섭다는 중2. 나도 그 중2가 되었다. 그리고 사춘기가 '안녕~!'하고 찾아왔다. 당연히 '중2병'도 함께.





점심만 먹으면 할 것도 없는데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가기 싫다는 친구까지 억지로 끌고서는 말이다. 그리고 산책하는 척하면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래, 맞다. 사춘기와 중2병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짝사랑도 더불어 찾아와버렸다. 더구나 1살 어린 연하였다. 그러고 보니, 참 시대를 앞서갔었네. 항상 그 애가 점심시간엔 나와서 친구들과 운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 애를 보려고 꿋꿋이 운동장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나의 액세서리와 화장품 사랑은.


그 애한테 잘 보이고 싶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잘 보이는 방법은 예쁘게 꾸미는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뭘 해도 예쁘기 힘든 귀밑 3cm까지의 똑단발 머리에 참 이것저것 많이 해봤던 거 같다. 매일 하굣길에 액세서리 가게를 들렀다. 매일 핀을 샀고, 작은 립글로스를 샀다. 나의 용돈은 그렇게 쓰임이 변질되어 갔다.


그러다 하루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귀걸이에 꽂혀버렸다. 당시 난 귀를 뚫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너무 뚫고 싶어졌다. 뚫고 귀걸이를 하고 그 애 앞에 서보고 싶었다.


엄마... 있잖아... 나 귀 뚫으면 안 돼?


학창 시절 어머닌 엄격하시기 그지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실 줄 말이다. 그래도 말이나마 꺼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말을 꺼내고 보니, 점점 더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중2의 욕구를 누가 말리리오. 난 결국 엄마 몰래 귀를 뚫고 들어왔다. 일단 뚫고 들어오면, '설마 돈 주고 뚫은 걸 다시 막게 하시진 않을 거야.'라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혼나기야 엄청 혼났지만 이미 뚫은 걸 더 이상 뭐라 하시진 않았다.


아싸! 이젠 귀걸이를 할 수 있어!


귀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나서부터 예쁜 귀걸이들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는 하고 갈 수 없으니 빼고 있다가 그 애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갈 때만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성도 참 지극했다 싶다. 이렇게 나의 소심한 첫 반항은 무언가 나도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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